
“거기 가봤자, 아무것도 없을 거요.”
50년 넘게 앙코르 문명의 뿌리를 캐낸 이 세계적 권위자가 반논왓 유적지를 직접 발굴해 놓고 ‘아무것도 없다’라고 했다. 닭 가축화의 고향을 찾겠다며 태국행 비행기를 탄 내게 뉴질랜드 오타고대의 고고학자 찰스 하이엄이 한 말이었다.
한 달 전 『치킨 행성의 비밀』이라는 책을 냈으면서 정작 이곳에는 한 번도 와본 적이 없었다. 책을 쓰고 나서야 방문한 ‘가축화의 고향’이라니. 반논왓은 프라이팬 위의 달걀처럼 뜨겁고 평평했다. 산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끝없는 논과 밭, 낟알을 주워 먹는 깡마른 소, 오아시스처럼 나타나는 저수지. 지평선에 살포시 솟아오른 동그란 숲이 있었고, 집 십여 채가 옹기종기 모인 곳이 반논왓이었다. 지방도에서 시멘트 포장도로를 한참 들어가야 나오는 곳. 이곳이 우리가 사는 시대의 깊은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는, 그 어떤 기념비도 알려주지 않았다.
2층짜리 반논왓 박물관에는 놀랍게도 아무도 없었다. 내가 찾는 닭뼈는커녕 깃털 하나 없었다. 항아리 안에 담긴 사람 뼈, 비스듬히 누운 사람 뼈, 웅크리고 누운 사람 뼈… 두 눈으로 나를 쏘아보는 듯한 무늬의 청동기 토기와 함께 다양하게 매장된 사람 뼈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밖에서는 대낮까지 늦잠을 잔 수탉이 울어댔고, 지붕 위에서는 다람쥐가 귀신처럼 쿵쿵거렸다. 교수 말이 맞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하다못해 KFC 할아버지 동상 같은 기념물이라도 있을 줄 알았다. 그 프라이드치킨의 선조가 태어난 성지 아닌가. 하지만 반논왓이 '가축화의 성지'로 인정받은 건 불과 4년 전이다. 2022년, 요리스 피터스 연구팀이 89개국 600개 유적지의 닭뼈를 재검증한 결과, 가장 오래됐다던 중국의 닭뼈가 꿩뼈로 드러나면서 이 궁벽한 마을이 최종 후보로 남았다.
기원전 1650~1250년, 쌀농사를 시작한 이곳에 야생 닭이 낟알을 주워 먹으러 숲에서 걸어 나왔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
그런데, 사람이 닭을 곁에 둔 건 먹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화려한 깃털의 수탉을 애완용으로 키우거나 싸움을 붙여 놀았다. 연중 알을 낳게 된 건 기원전 400년 무렵이고, 오늘날처럼 살찐 육계가 등장한 건 1948년이다. 3600년 전 숲에서 나온 작은 새가 고깃덩어리가 된 건 고작 70여년 전의 일이란 말이다. 지금 지구에는 닭 200억마리가 산다. 한 해에 700억마리가 죽는다. 인간이 지구를 돌이킬 수 없이 바꿔놓은 새로운 지질시대, 이른바 ‘인류세’의 표준화석 후보로 닭뼈가 거론될 정도다. 인류가 가장 많이 먹는 동물이 어디서 왔고, 어떻게 지금의 모습이 됐는지, 우리는 거의 아무것도 모른다.
약 3600년 전, 야생 닭이 가축이 된 태국 나콘랏차시마주의 반논왓에 있는 사원에 백조상이 서 있다. (사진=남종영)
‘취재는 망했군.’
허탈한 마음으로 마을에서 나오는데, 햇빛에 반사된 무언가가 눈을 찔렀다. 올 때 무심코 지나쳤던 거대한 조형물. 높이 15미터는 족히 되는 수탉이 마을을 굽어보고 있었다. 가까이 가 보니 수탉이 아니라 사원의 백조상이었다. 태국 사람들은 부처가 백조 두 마리를 보고 위대한 도시를 예언했다는 전설을 믿는다. 그래서 사원마다 높은 기둥 위에 백조를 앉혀 둔다. 이 사원은 한술 더 떠 새의 두 다리로 문을 세우고, 붉은색, 청록색 깃털을 입혀 닭처럼 만들어놨다. 프라이드치킨의 진짜 고향에서, 닭은 이미 신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마을회관에서는 아주머니들이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고 있었다. 닭의 기원을 찾아온 이방인의 좌절 따위와는 무관한, 기묘하고 흥겨운 평화가 반논완에 흘렀다. 그곳에는 닭뼈도 기념비도 없었다. 다만 15미터 높이의 거대한 새 한 마리가, 매년 수백억 마리씩 튀겨지는 자기 후손들의 세상을 말없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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