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부리저어새가 무리를 이뤄 바닥을 훑으며 먹이 활동을 하고 있다.
햇살이 얼어붙었던 강물을 녹이고 논바닥의 흙내음을 깨우는 3월, 이동성 물새들에게는 이별과 만남이 교차하는 계절입니다. 한 계절 동안 익숙했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을 향해 가는 때지요. 그 중 오늘의 주인공 노랑부리저어새는 지난가을부터 한반도 곳곳의 강과 논에서 고개를 저어대다가 이제는 중국과 몽골 등 대륙의 내륙 습지를 향해 떠날 채비를 마쳤습니다.
한반도를 찾는 저어새는 일반적으로 두 종입니다. 여름철 서해안 무인도에서 번식하는 저어새(Black-faced Spoonbill, Platalea minor)와 겨울을 나는 노랑부리저어새(Eurasian Spoonbill, Platalea leucorodia)입니다. 두 종은 비슷해 보이지만, 외형과 살아가는 곳이 다릅니다. 우선 외형이 다른데, 저어새는 눈가와 부리가 모두 검정색으로 이어져 있어 영어 이름 그대로 검정 얼굴처럼 보이고 노랑부리저어새는 하얀 몸에 검정 부리, 부리 끝이 노란색이어서 노랑부리저어새라고 불립니다. 무엇보다 저어새가 염분이 있는 서해안 무인도와 갯벌을 터전으로 삼는다면, 노랑부리저어새는 담수 생태계인 강과 내륙 습지를 주무대로 살아갑니다.
노랑부리저어새는 유라시아 전역에 고루 분포하기에 영어로 유라시안 저어새라고 하는데, 한반도에서는 주로 겨울 내내 서남해안 강 하구 얕은 물가에서 머무릅니다. 국립생물자원관의 2024~2025 겨울철 조류 동시 센서스에 따르면, 677여마리의 노랑부리저어새가 겨울을 한국에서 보냈습니다. 국제습지연합(Wetlands International)은 이 새의 전 세계 개체수를 7만9000여마리에서 9만5000여마리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시각에 의존해 먹이를 찾는 여느 새들과 달리 노랑부리저어새는 저어새 종답게 부리를 물속에 담근 채 고개를 좌우로 휘휘 저으며 먹이를 찾습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가리새'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넓적한 부리가 땅을 가는 농기구 가래와 비슷해서 지어진 이름입니다. 이 부리 끝에는 미세한 진동을 감지하는 감각기관이 발달해 있어 눈으로 보지 않고도 물속의 작은 수생생물을 제법 잘 낚아챕니다. 그야말로 고도의 감각을 발휘한 사냥 방식이지요. 이렇게 먹이를 찾는 동안 주변에는 백로 같은 새들이 가까이 다가와 같은 먹이를 노리거나 때로는 먹이를 가로채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노랑부리저어새가 부리로 물속을 가래질하는 모습을 보면 농번기에 바쁜 농부들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입춘이 지나 우수에서 경칩으로 가는 요즘, 부쩍 분주해진 노랑부리저어새의 움직임에서도 긴장과 긴박이 느껴집니다. 대륙의 번식지까지 안전하게 날아가려면 충분한 에너지를 비축하며 노랑부리저어새만의 봄을 준비하는 모양이랄까요.
떠나는 노랑부리저어새들, 부디 안전한 여정이 되기를 빌어봅니다. 늦가을에 부리 끝에 노오란 희망을 달고 날아올 노랑부리저어새를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해 봅니다.
글·사진= 김용재 생태칼럼리스트 K-wil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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