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다인 기자] 임신 36주차에 제왕절개 방식으로 임신중절 수술을 의뢰한 산모가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습니다. 법원은 산모에게 미필적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판단하면서도, 낙태죄 헌법불합치 이후 이어진 입법 공백 상황을 양형에 참작했습니다.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모임넷) 활동가들이 4일 서울 서초구 법원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36주 낙태’ 산모 권모씨의 무죄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이진관)는 4일 오후 살인 혐의로 기소된 유튜버 권모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고 20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령했습니다.
먼저 재판부는 이 사건을 임신중절이 아닌 살인으로 규정했습니다. 제왕절개를 통해 모체 밖으로 배출된 태아가 생존한 이상, 임신중절이 아니라 출생한 사람을 살해한 행위라는 판단입니다. 재판부는 “낙태는 자연분만 시기에 앞서서 태아를 모체 밖으로 배출하거나 모체 안에서 사산에 이르게 하는 행위”라며 “태아가 독자적으로 생존 가능한 시점에서 모체 밖으로 배출됐다면 낙태죄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또 권씨에게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의료진이 어떤 방법으로든 살아 있는 피해자를 사망하게 할 것임을 인식하고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수술을 받았다”며 “피해자가 살해되는 위험을 용인했다고 보이므로 살인의 고의가 인정된다”고 봤습니다. 또 “피해자를 출산 후 입양을 보내는 등 다른 대안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도 했습니다.
다만 재판부는 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이후 이어지는 입법공백을 언급하며 이번 사건의 책임을 피고인들에게만 돌리기는 어렵다고도 했습니다. 재판부는 “낙태죄 폐지 이후에도 국회에서 개선 입법이 이뤄지지 않아 여성의 자기결정권 행사에 대한 공백과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참작할 여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또 "국가가 임신·출산·육아에 장애가 되는 경제적·사회적 조건을 개선하려 노력했다면 다른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라며 "무작정 비난하기는 어렵고 참작할 사정이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권씨를 변호한 김명선 국선변호사는 선고 후 기자들과 만나 “유튜브에 영상을 올린 점 때문에 본보기성 처벌이 이뤄진 것”이라며 “유사한 사건에서 산모가 기소조차 되지 않은 사례도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 2021년 대법원은 임신중절 수술을 의뢰한 산모가 ‘태아가 살아서 출산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면 영아살해의 고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
권씨의 임신중절 수술을 진행해 살인 혐의 등으로 기소된 병원장 윤모씨는 징역 6년과 벌금 150만원을, 집도의 심모씨는 징역 4년을 이날 선고받았습니다. 이들은 지난 2024년 6월 임신 34~36주차 상태인 권씨에게 제왕절개 수술을 집도해 태아를 배출한 뒤, 사각포로 덮어 냉동고에 넣어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한편 이 사건은 권씨가 ‘총 수술비용 900만원, 지옥 같던 120시간’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유튜브에 게시하면서 알려졌습니다. 영상이 논란이 되자 보건복지부는 2024년 7월 해당 유튜버와 수술에 관여한 의료진을 경찰에 수사 의뢰했습니다.
신다인 기자 shin12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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