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산업 역군)③“반도체 다음은 부품”…AI 덕분에 사라진 비수기
기존 IT 수요 따라가던 전자부품
AI 수요에 성수기·비수기 사라져
MLCC·반도체 기판 연중 ‘풀가동’
차세대 개발 속도…AI 시장 선점
2026-03-06 14:30:15 2026-03-06 15:03:23
[뉴스토마토 이명신 기자] 인공지능(AI) 산업 고도화로 반도체 초호황기(슈퍼사이클)가 도래하자 ‘넥스트 슈퍼사이클’로 전자부품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특히 ‘전자산업의 쌀’로 불리는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와 반도체의 ‘혈관’ 역할을 하는 반도체 기판이 새 국면에 들어섰다는 평가입니다. 두 전자부품이 AI 시스템 성능을 결정짓는 핵심 부품으로 거듭나면서 기존 성수기와 비수기의 구분이 사라지고 사업 구조가 재편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삼성전기의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 제품. (사진=삼성전기)
 
AI가 이끈 MLCC 성장 스토리
 
MLCC는 전자제품 내에서 전류를 저장하고 안정적으로 공급해 부품 간 전자파 간섭을 막는 부품입니다. 일종의 ‘댐’ 역할을 하는 부품으로,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 IT 기기, 전장 등 전자제품 대부분에 탑재돼 ‘전자제품의 쌀’로 불립니다.
 
기존 MLCC는 범용 제품을 중심으로 수요와 공급 변화에 따라 성수기와 비수기가 명확했던 사업이었습니다. 앞서 2018년 스마트폰 고사양화에 따른 수요 폭증과 공급부족이 맞물리면서, MLCC 시장에 슈퍼사이클이 찾아온 바 있습니다. 당시 삼성전기의 영업이익률은 2018년 2분기 기준 ‘42%’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코로나19 이후 IT 제품 수요가 감소하면서 MLCC를 생산하는 삼성전기 컴포넌트사업부의 가동률은 2022년 60%대까지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AI와 전기차·자율주행 등 전장 산업이 확대되면서 근본적인 수요 구조가 변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스마트폰 한 대에 약 1000~1300개의 MLCC 탑재된다면, AI 서버 보드 하나에는 약 2만5000개의 MLCC가 탑재됩니다. 이는 일반 서버 2000여개 대비 약 13배에 달하는 수치로, AI 서버 단위로 보면 한 대에 수십만 개 수준의 MLCC가 필요한 셈입니다.
 
하지만 AI 서버는 일반 서버 대비 연산량과 전력 소모량이 폭증해 기존 IT 기기보다 높은 성능과 신뢰도를 갖춘 MLCC가 필요합니다. 다만 서버용 MLCC는 기존 제품과 달리 가격이 비싸고 기술 난도가 높아 공급이 제한적입니다. 서버용 MLCC를 공급할 수 있는 업체는 업계 1위 일본 무라타와 삼성전기 등 소수에 불과합니다.
 
이에 고사양 MLCC를 중심으로 시장이 확대되는 모습입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글로벌 MLCC 산업은 AI 인프라 투자 확대와 구글 등 빅테크 기업의 자체 주문형반도체(ASIC) 개발로 고부가품 MLCC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삼성전기 수원사업장 전경. (사진=삼성전기)
 
MLCC 생산 ‘풀가동’…단가 인상 기대
 
MLCC 공급이 부족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고객사들의 공급망 확보도 과제로 떠오른 상황입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4일(현지시각) 모건스탠리 기술·미디어·통신 콘퍼런스에서 엔비디아가 메모리, 웨이퍼, 패키징, 케이블, MLCC 등 공급망을 확보했다고 강조했습니다. 황 CEO가 MLCC를 콕 집어 언급한 것은, MLCC가 AI 산업의 핵심 부품이라는 점을 시사한다고 업계는 보고 있습니다.
 
고부가 제품 비중 확대로 MLCC 평균판매단가(ASP)도 상승할 전망입니다. 삼성전기는 지난해 4분기 실적설명회(컨퍼런스콜)에서 “올해 1분기 MLCC ASP는 AI 서버 등 고부가가치 제품 수요 확대에 힘입어 전 분기 대비 증가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MLCC가 호실적을 이끄는 일등공신 역할을 하면서 가동률도 최대 수준으로 유지될 전망입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삼성전기 컴포턴트사업부의 평균 가동률은 99%를 기록했으며, 올해도 MLCC 생산라인 ‘풀가동’이 예상됩니다. 특히 MLCC 1위 업체 일본 무라타는 가격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해 국내 부품사들도 판가 재조정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반도체 기판도 비슷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반도체 기판은 반도체와 기판 간 전기 신호를 전달하고, 외부 충격으로부터 반도체를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칩이 두뇌라면 기판은 칩의 정보를 전달하는 ‘신경’이자 ‘혈관’인 셈입니다.
 
기존 반도체는 기판 위에 칩이 하나 올라가는 단순한 구조였습니다. 하지만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적층 기술 개발과 반도체 미세화로, 이를 감싸는 기판의 면적이 커지고, 층수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반도체 후공정에서 발열 등 시스템 성능이 결정돼 패키지 기판인 플립칩 볼그리드어레이(FC-BGA)의 중요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LG이노텍 직원이 ‘코퍼 포스트(구리 기둥)’ 기술을 적용한 무선주파수 시스템인패키지(RF-SiP) 기판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LG이노텍)
 
기판 차세대 제품도 ‘속도’
 
이에 업계는 반도체 기판 생산라인 확대를 적극 검토하고 있습니다.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은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6’에서 “FC-BGA는 올해 하반기부터 풀가동에 들어가고, 증설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문혁수 LG이노텍 사장 역시 “반도체 패키지 기판 수요가 당분간 지속 증가할 것으로 보이고, LG이노텍의 반도체 기판 가동률도 풀가동 상태로 접어들 것으로 예상된다”며 “수요 대응을 위해 패키지솔루션 캐파를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을 다각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특히 LG이노텍은 FC-BGA와 함께 통신용 반도체 기판인 무선주파수 시스템인패키지(RF-SiP) 사업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기판의 성능을 유지하면서도 크기를 20% 작게 제작 가능한 ‘코퍼 포스트(구리 기둥)’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양산 제품에 적용했습니다. 이 기술은 구리 기둥에 납땜용 구슬인 ‘솔더볼’을 작게 얹는 기술로, 기존 대비 열전도율을 7배 높여 발열로 일어나는 신호 손실 문제 등을 최소화했습니다.
 
부품업계는 생산능력을 확대하는 한편 차세대 부품 개발에도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AI 시장에서 미래 먹거리를 선점해 영향력을 키우겠다는 전략입니다. 대표적인 분야는 ‘유리기판’입니다. 기존 플라스틱 기판보다 제품 휨 현상이 적고 열팽창률이 낮아 전력 효율을 크게 개선할 수 있는 게 장점입니다. SKC는 자회사 앱솔릭스를 통해 미국에서 사업 경쟁력을 키우고 있으며, 삼성전기와 LG 이노텍도 고객사들과 협력해 유리기판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부품업계 관계자는 “AI 산업 성장으로 부품업계는 과거 호황기 때와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지고 있다”면서 “AI 서버, 전장, 로봇 등 장기적인 수요에 대비해 기존 주력 사업을 토대로 시장 선점에 나설 것”이라고 했습니다. <끝>
 
이명신 기자 si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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