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초동수사 미흡하면 국가배상 가능?
법원 “성폭력 정황에도 추가 수사 안 해”
‘부산 돌려차기’ 피해자에 국가배상 확정
2026-03-06 17:43:36 2026-03-06 17:43:36
[뉴스토마토 신다인 기자] 수사기관의 초동수사가 현저히 미흡했다면 국가가 피해자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습니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곧바로 ‘부실수사=국가배상’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2024년 3월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사무실에서 열린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와 함께 하는 범죄 피해자 권리 강화를 위한 국가배상 청구 기자회견에서 부산 돌려차기 사건 국가배상 대리인단 단장인 오지원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서울중앙지법 민사31단독(손승우 판사)은 지난달 13일 국가가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피해자인 김진주씨(가명)에게 1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재판부는 사건 당시 수사기관이 성폭력의 동기와 정황이 의심됨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진술·증거를 확보하지 않은 점이 “현저히 불합리하다”고 했습니다. 해당 판결은 지난 5일 법무부가 항소를 포기하며 확정됐습니다. 
 
김진주씨는 왜 국가배상 청구를 했나?
 
김씨는 지난 2022년 5월22일 부산 서면에서 일면식도 없는 30대 남성 이모씨에게 이른바 ‘돌려차기’ 방식으로 머리를 가격당한 뒤 수차례 폭행을 당했습니다. 이씨는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돼 같은 해 10월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머리를 심하게 맞아 사건에 대한 기억이 없던 김씨는 재판 과정에서야 사건 당시 성폭행이 의심되는 정황이 있었고, 수사기관이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결국 김씨가 온라인에 글을 올리고, 수차례 탄원서를 작성하며 직접 사건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DNA 재검사가 진행됐고, 김씨의 바지에서 이씨의 DNA가 검출됐습니다.
 
이에 2023년 5월 항소심에서 이씨의 죄명은 ‘살인미수’에서 ‘강간살인미수’로 변경되고 징역 역시 12년에서 20년으로 늘어납니다. 이 판결은 2023년 9월 대법원에서 확정됐습니다. 이에 김씨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는 수사기관의 초동수사가 부실했다며 2024년 3월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법원 “초동수사 현저히 불합리”
 
재판의 쟁점은 수사기관의 초동수사가 국가배상 책임이 인정될 정도로 위법했는지 여부였습니다. 국가배상법에 따르면 공무원이 직무를 수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국가가 배상 책임을 집니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에서 “수사기관이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판시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가해자의 휴대전화에서 성폭행을 의심할 만한 검색기록이 확인됐는데도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서지 않은 점 △상의가 올라가 있고 지퍼가 내려가 있었음에도 추가 진술을 확보하지 않은 채 사건을 ‘묻지마 범행’으로 단정한 점 등을 ‘불합리한 초동수사’로 규정했습니다. 
 
부실수사 국가배상 확대될까…“입증 어려워”
 
다만 이번 판결이 ‘초동수사가 미흡하면 국가배상이 가능하다’는 일반 원칙을 세운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김씨를 대리한 민변 여성위의 한주현 법무법인 LKB평산 파트너 변호사는 “부실수사로 인한 국가배상의 길이 크게 넓어졌다고 보긴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한 개인이 부실수사를 입증하긴 굉장히 어렵다”며 “이번 사건의 경우 항소심에서 죄명이 바뀌면서 부실수사였음이 재판과정에서 확인이 된 사건”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이번 판결은 피해자가 자신의 상태를 제대로 진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수사기관이 어떤 방식으로 증거를 확보하고 수사를 진행해야 하는지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한 변호사는 “피해자가 의식을 잃었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수사기관이 추가 진술과 증거를 적극적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판결”이라고 했습니다.
 
신다인 기자 shin12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0/300

뉴스리듬

    이 시간 주요 뉴스

      함께 볼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