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창욱 기자] 중동 정세 불안과 노후 선박 교체 수요가 맞물리면서, 유조선 시장에서 국내 조선업계가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면서 다수 유조선이 우회 항로로 이동해 선복 수요가 늘어난 데다, 2000년대 중반 대거 발주된 선박들이 교체 시기에 진입하면서 신조 발주 필요성도 함께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삼호중공업에서 건조한 원유운반선의 시운전 모습. (사진=HD한국조선해양)
11일 노르웨이 해운 전문 매체 트레이드윈즈와 글로벌 선박 데이터 업체 베셀스밸류 등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3개월간 전 세계 초대형 유조선(VLCC) 신조 계약은 총 88건으로 집계됐습니다. 총 발주액은 104억달러(약 15조3000억원)에 달합니다. VLCC 연간 발주가 100척을 넘긴 해는 1969년(110척)과 1971년(102척), 2006년(103척) 등 세 차례에 불과한데, 3개월 만에 이에 근접한 수치가 발주된 것입니다.
이번 발주 확대의 주요 배경으로 노후 선박 교체 수요를 꼽고 있습니다. 로이터에 따르면 2025년 기준 글로벌 VLCC 선대의 약 44%가 선령 15년 이상 노후 선박으로 분류됩니다. 특히 2006년 한 해에만 100척 이상이 집중 발주된 VLCC가 선령 20년에 도달하면서 퇴역 시점에 근접한 상황입니다.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도 VLCC 수요를 자극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이란 공습으로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면서 주요 해운사들은 아프리카 희망봉을 우회하는 항로를 택하고 있습니다. 항로가 길어질수록 동일 물량을 운송하는 데 더 많은 선박이 필요해져 추가 선복 수요가 발생하는 구조입니다.
중동 사태가 진정되더라도 VLCC 발주는 장기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정상화되더라도 해운사들은 당분간 우회 항로를 운항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2023년 11월 홍해 해역에서 예멘 후티 반군의 공격이 이어지면서 글로벌 선사들은 홍해 항로를 기피하기 시작했습니다. HMM을 포함한 다수 해운사 현재까지도 우회 항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환경 변화로 국내 조선업계가 반사이익을 얻을 것으로 보입니다. 중소형 유조선 시장은 중국 조선사들이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물량 대부분을 수주하고 있지만, 국내 조선사들은 고선가 선박 위주의 선별 수주 전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VLCC 등 고가 선종 발주가 확대될 경우 국내 조선사들의 수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 수주 성과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 10일 원유운반선 3척을 4001억원에 수주했습니다. HD현대는 지난 6일 아프라막스급 원유운반선 2척을 2632억원에 수주했습니다. 지난 4일에는 지난해 12월 오세아니아 선주로부터 수주한 컨테이너선 4척을 원유운반선 4척 계약으로 변경하기도 했습니다.
한화오션 역시 올해 1월 VLCC 3척을 총 5722억원 규모로 수주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이란 사태와 노후 선박 교체 주기가 맞물리면서 유조선 발주 증가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국내 조선사들은 유조선 가운데서도 고부가가치 선종인 VLCC 수주에 집중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박창욱 기자 pbtkd@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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