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무안=뉴스토마토 신유미 기자] "방금도 무릎뼈가 나왔어요. 이건 캐리어 잔해고요."
기가 막힌다는 말로는 부족한, 차라리 비현실적인 광경이었습니다. 지난 7일 전남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뙤약볕 아래서 호미 한 자루를 들고 연신 땅을 파고 있었습니다.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들이었습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보물찾기를 한다고 착각할 정도였지만, 이들은 참사로부터 500일 가까이 흐른 지금까지도 희생자의 흔적을 찾고 있었던 겁니다. 정부가 한때 '99% 수습 완료'라고 발표했던 그곳에서, 유가족들은 최근 한 달 새 1383점의 유해 추정 물체를 수습했습니다. 그들은 뼈 한 조각, 플라스틱 부스러기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면서 '내 가족은 내가 집으로 데려간다'는 마음으로 유해 발굴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가족들 빨리 집으로 데려가려고" 멈출 수 없는 호미질
유해 발굴은 군인 100여명, 경찰·소방 130여명, 유가족 15여명이 함께 진행합니다. 작업은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한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이어졌습니다. 참사 당시 여객기가 활주로 끝 둔덕(로컬라이저)과 충돌해 폭발한 뒤 동체가 공항 담벼락과 부딪혔던 곳이 바로 발굴 지점입니다.
이날도 유가족은 점심 식사를 마치고 오후 1시30분부터 작업이 재개했습니다. 그늘 한 점 없는 땡볕, 유가족들은 모자를 쓰고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협의회' 글자가 적힌 하늘색 조끼를 입었습니다. 마스크와 장갑도 꼈습니다. 수색 초기만 해도 유가족들은 보호 장구의 필요성을 몰랐습니다. 기체에서 흘러온 항공유로 인해 오염된 흙을 맨손으로 만졌다가 피부병을 앓기도 했습니다. 현재 수색 지역은 토양 오염도에 따라 노란 선과 주황 선으로 구분돼있습니다.
오후 작업을 시작한 지 채 15분도 지나지 않아 유골 두 점이 발견됐습니다. "방금도 뼈가 나왔어요. 이건 옷 조각, 캐리어 잔해, 이건 비행기 잔해, 이게 유류품이에요." 유가족의 설명대로 호미질을 할 때마다 기체 잔해와 유품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유해를 처음 접하는 기자의 눈에는 생소한 물체들이었지만, 유가족들은 한눈에 그 정체를 파악하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현장에선 유가족들의 반응도 엇갈렸습니다. 한 유족이 새로운 흔적을 찾았다는 듯 "무릎이다, 또 나왔어"라고 외치자, 옆에 있던 다른 유가족은 "제발 부위는 말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땅속에 묻힌 망자가 바로 내 가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발굴의 기쁨보다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오는 듯했습니다.
지난 7일 무안공항 활주로에서 유가족들이 수색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왼쪽 아래는 이날 발견된 유해 추정 39점 중 2점. 오른쪽 아래는 각종 유류품 및 기체 잔해. (사진=뉴스토마토)
500일의 기다림, "유해 없이 장례 치르는 줄만 알았다"
목포에 거주하는 이경미(65)씨는 이제 집보다 무안공항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깁니다. 그는 "여자 친구와 여행을 다녀오던 아들을 사고로 보냈다"며 "당시엔 경황이 없어 유해나 유품도 없이 장례를 치러야 하는 줄만 알았다. 작업을 처음 할 땐 뼈와 돌도 구분 못 했지만, 이제는 보면 금방 안다"고 했습니다.
박인욱(70)씨는 "희생자는 모두 내 가족이라 생각하고 집에 모셔 가려고 시작했는데, 유해가 이렇게 많이 나올 줄은 몰랐다"며 "하루에 180점씩 발굴된 적도 있다"고 전했습니다. 박씨는 참사로 아내와 딸, 사위, 손주까지 한꺼번에 잃었습니다.
남편을 떠나보낸 박귀숙(64)씨는 매주 수·목·금요일 수색 작업에 참여합니다. 박씨는 "약을 먹으니까 그나마 버틴다"면서 "제 손으로 발굴된 분이 어느 분의 유해인지는 모르겠지만, '독수리의 눈'처럼 유해를 지나치지 않고 잘 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오후, 항공유 오염에 따른 안전성 문제로 경찰은 수색을 중단하고 철수했지만, 유가족들의 호미질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지난 14일 발견된 정강이 뼈와 15일 발견된 유류품. (사진=유가족협의회)
'99% 수습 완료'라는 거짓말…자루에서 방치된 잔해들
이날 발견된 유해 추정물체는 39점입니다. 무릎, 정강이뼈, 두개골 등도 있었습니다. 유가족이 무안공항 활주로와 둔덕 일대에서 수색 작업을 시작한 지난달 13일부터 현재까지 발견된 유해는 누적 1257점입니다.
참사 후 500일째가 되도록 유가족들이 직접 호미를 들어야 했던 이유는 정부의 부실한 수습 때문이었습니다. 지난달 30일 국무조정실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항철위)는 지난해 1월 참사 잔해물 수거 당시 유해 혼입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고, 사후 조치 계획도 없이 잔해물을 톤백마대(약 1톤 내외의 화물을 담는 대형 자루)에 담아 14개월간 방치했습니다.
지난 2월 유가족들의 요구로 시작된 재조사에선 김유진 유가족협의회 대표 아버지의 유해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이효은(54)씨도 "항철위는 당초 99% 수색을 마쳤고 유품도 불타 없다고 했지만, 실제로 땅을 파면 지금도 뼛조각과 아이 옷 등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며 "시신에 살이 붙어 있어 형체가 더 컸을 참사 초기에 수습하지 못했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울먹였습니다. 매주 교체되는 군·경 인력의 숙련도 부족 등 구조적 비효율도 수색의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공항 못 떠난 유가족들…"사회문제 눈 감았던 탓" 자책
7일 무안국제공항 2층에 유가족 셸터가 마련돼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오후 4시, 수색 작업을 마친 유가족들은 셔틀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돌아갔습니다. 공항 2층에는 유가족들이 거처로 쓰는 쉼터가 마련됐습니다. 일주일에도 몇번씩 유가족들은 그곳에서 먹고 자며 수색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공항의 위험한 둔덕 문제에 시정을 요구했더라면 우리 아이들이 무사했을 텐데. 누군가 한 명이라도 '그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더라면 이 사고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오정순(57)씨는 "그동안 사회문제에 너무 눈감고 살았던 것 같다"면서 "나 역시 아이들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자책하듯 말했습니다.
한편, 10일부터 광주광역시 YMCA엔 희생자 분향소가 설치됐습니다. 최근 수색에서 대량의 유해가 발견됨에 따라 희생자들에 대한 예우를 다하고 참사의 실상을 알리고자 마련된 겁니다.
전남 무안=신유미 기자 yumix@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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