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주현 기자] 농지에서 경작 중인 농작물을 밭 단위로 일괄 매매하는 이른바 '밭떼기(포전매매)'에서 매매대금이 모두 지급됐더라도, 농민에겐 '수확 전까지 통상적인 관리 책임이 남는다'라는 대법원의 새로운 판단이 나왔습니다. "돈을 다 치렀으니 작물 소유권과 작황에 따른 위험은 매수인에게 넘어갔다"는 오랜 시장 관행과 달리, 실제 작물 수확·반출 전까지는 경작자(농민)가 기본적 재배 관리를 해야 한다는 새로운 거래 기준을 제시한 겁니다.
가을비가 지속된 2025년 10월16일 충북 제천시 송학면 장곡리 한 배추밭에 무름병이 번졌다. (사진=뉴시스)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지난 6월25일 배추 상인 A씨가 배추 농민 B씨를 상대로 낸 계약금 반환·손해배상 소송에서 B씨의 손을 들어줬던 원고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지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앞서 A씨는 B씨가 7000평 규모의 배추밭에서 재배하던 배추 전부를 7000만원에 사기로 계약했습니다. 흔히 말하는 밭떼기 거래입니다. A씨는 계약 당일 B씨에게 매매대금 7000만원을 전액 지급했습니다. 다만 당시 두 사람 사이에 농작물 관리 의무를 별도로 규정한 약정은 없었습니다.
문제는 A씨가 배추를 수확한 뒤 발생했습니다. 배추에 하자가 많아 상품성이 크게 떨어진 겁니다. 이에 A씨는 B씨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이에 대해 B씨는 "밭떼기 거래 특성상 매매대금이 모두 지급된 뒤에는 배추 작황이나 상품성 하락에 따른 위험을 매수인인 A씨가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원심은 B씨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밭떼기 거래에선 매매대금이 완납된 이후 상품에 대한 책임이나 위험 부담은 매수인에게 넘어가는 걸로 간주하는 게 일반적 관행이라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습니다. 대법원은 "(원심이) 포전매매 계약상 농작물 관리 의무에 관한 법리를 오해했다"며 "대금 완납만으로 경작자의 책임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봤습니다.
또 "천재지변이나 통상 관리를 크게 넘는 병충해 등 양측 모두에게 책임 없는 손실은 매수인이 부담하지만 이와 별개로 매도인의 관리 의무는 남는다"고 했습니다. 특별한 약정이 없더라도 매도인은 반출 약정일까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농작물을 관리해야 한다는 겁니다.
대법원은 관리 의무 범위에 관해선 "용수, 시비, 방제, 제초 등 해당 농작물 재배에 통상적으로 요구되는 수준의 관리가 포함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상하지 못한 사정으로 과도한 비용이 발생할 경우, 매수인이 농약 살포나 비료 추가 투입 등 조치를 할지 결정할 수 있도록 상황을 알려야 하는 통지 의무도 인정했습니다.
특히 대법원은 이번 사건에서 B씨의 관리 의무 위반으로 인해 A씨에게 손해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습니다. A씨가 확보한 최종 수익금은 판매대금에서 수확·출하 비용을 제외하고 단 547만여원에 불과했는데, 이는 총 매매대금 7000만원의 약 7.8% 수준입니다.
재판부는 아울러 A씨가 매입한 배추는 전반적으로 상태가 매우 나빴던 반면, B씨가 소유한 인근의 다른 밭 배추들은 별다른 이상 없었다는 점도 경작자의 관리 부실을 의심하는 근거로 삼았습니다.
정주현 기자 givehyu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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