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상장사들의 '자사주 알박기'로 지목됐던 사모 교환사채(EB)가 주가 하락이라는 암초를 만났습니다. 특히 상법 개정 직전 대규모 EB를 발행해 자사주를 피신시켰던 업체들이 주가가 교환가액을 밑돌면서 풋옵션(조기상환청구권) 압박에 직면했습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쿠쿠홀딩스는 자사주 강제 소각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 논의가 한창이던 2025년 9월, 902억원(발행주식 총수의 6.5%) 규모의 사모 EB를 발행했습니다. 당시 이는 소각 의무를 피하기 위해 자사주를 EB에 묶은 알박기 사례로 지목됐습니다.
현재 쿠쿠홀딩스는 당장의 소각 의무를 피한 채 자사주를 한국예탁결제원에 묶어두고 있습니다. 사채권자가 발행일로부터 2년 뒤인 2027년 9월부터 풋옵션을 청구할 수 있도록 설정한 덕분입니다.
하지만 이날 쿠쿠홀딩스 주가는 2만5000원대로 시작했습니다. EB 교환가액 3만9050원에 한참 못 미칩니다. 이에 풋옵션 청구 기간이 도래하는 내년 9월 원금 상환 청구가 쏟아질 것이 예측되고 있습니다. 주가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투자자들은 주식 교환 대신 100% 원금 상환을 요구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회사는 현금 유출은 물론, 환입된 6.5%의 막대한 자사주를 법적 유예기간 내에 소각해야 하는 의무를 집니다.
쿠쿠홀딩스 관계자는 "교환사채 관련 현재 기준 구체적인 대응 계획이 마련된 바는 없다"며 "다만 조기상환청구 기간은 2027년 7월24일 이후로 당해년도에 풋옵션이 행사될 가능성은 없다"고 했습니다.
쿠쿠홀딩스가 풋옵션 유예기간 내 시간을 벌고 있는 사이, 이미 풋옵션 청구 기일이 도래해 의무 소각 압박에 처한 업체들이 부각됩니다. 선익시스템과 서울옥션은 최근 만기가 도래하지 않은 자사주 EB를 자체 자금으로 조기 취득해 전액 소각 처리했습니다. 서울옥션은 지난 6일 125억원 규모의 1회차 EB를, 선익시스템은 지난달 22일 2억9330만원 규모의 2회차 EB를 각각 장외 매수 방식으로 털어냈습니다. 두 건 모두 주가가 교환가액을 밑돌자 투자자들이 조기에 원금 상환을 요구한 결과입니다.
이 밖에도 휴맥스홀딩스는 전날 사채권자와의 별도 합의를 통해 11회차 교환사채(EB)를 장외에서 조기 취득하며 교환 대상 주식 10만3286주를 자사주로 환입했습니다. 회사는 이를 즉각 소각하는 대신, 현재 추진 중인 합병 절차와 연계해 실질적인 소각 효과를 누릴 것으로 관측됩니다. 합병 시 회사가 자체 보유한 자사주에는 합병신주를 배정하지 않아 자연스럽게 소멸됩니다.
지난 3월 전격 시행된 제3차 개정 상법과 자본시장법 시행령에 따르면, 자사주를 활용한 EB 발행은 전면 금지되었고 기보유 자사주는 유예기간 내에 의무적으로 소각해야 합니다. 기존에 발행된 EB의 경우 계약 관계상 강제 소각의 소급 적용을 잠시 피할 수 있었지만, 풋옵션 행사로 사채 계약이 종료되고 자사주가 회사로 환입되는 즉시 상황은 달라집니다. 환입된 자사주는 즉각 의무 소각 대상인 '기보유 자기주식'으로 간주되어 소급 적용을 받기 때문입니다.
자본시장 전문가들은 상장사들이 자사주를 이자 비용 없는 자금 조달의 수단이나 지배구조 방어막으로 활용하던 관행이 한계에 달했다고 지적합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주가 하락에 EB를 상환하고 자사주 법적 소각 의무를 짊어지게 된 선례들이 나온 만큼, 아직 알박기 물량을 쥐고 있는 기업들의 압박감은 상당할 것"이라며 "투자자들은 아직 터지지 않은 풋옵션 일정을 추적하고 환입된 자사주가 실제 소각으로 이어지는지 주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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