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5월을 기점으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인류가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미증유의 암흑기로 진입했다. 인공지능(AI) 칩을 탑재한 자율형 드론이 전면에 등장하면서부터다. 전쟁 초기만 해도 풍경은 사뭇 달랐다. 아마추어 드론 동호회원들이 급조한 배회탄약 드론으로 러시아의 거대한 기갑부대를 차단할 때만 해도 기술은 약자의 영리한 비대칭 무기처럼 보였다. 이후 우크라이나 군은 1인칭 시점(FPV) 드론을 주축으로 삼아 전술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그러나 인간의 조종간마저 떠나 AI 스스로 표적을 사냥하는 자율형 무기가 투입된 지금, 전장은 첨단기술이 완성한 거대한 살육 공장으로 전락했다. 그 결과는 참혹함을 넘어 기괴하다. 양측 사상자가 무려 200만명을 넘어선 이 전장의 가장 끔찍한 특징은 인류 전쟁사 최초로 ‘전사자 수가 부상자 수를 상회’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올해 들어와서 40만명이 넘는 사상자의 급속한 증가는 우크라이나 동부가 거대한 살육 공장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의 전쟁에서는 부상자가 전사자보다 서너 배 많은 것이 상식이었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전장에선 이 정설이 완전히 무너졌다.
우크라이나 군이 전선에 대거 투입한 ‘세이커 스카우트(Saker Scout)’나 ‘호넷(Hornet)’ 같은 AI 자율형 드론이 전술의 지형을 바꾼 주역들이다. 이 드론들은 인간의 실시간 원격조종이나 GPS 신호에 의존하지 않는다. 러시아군의 강력한 전자기전(EW) 재밍(전파방해)으로 통신이 완전히 끊겨도, 기체에 탑재된 인공지능 프로세서와 딥러닝 알고리즘이 스스로 작동한다. 컴퓨터 비전 기술을 통해 탱크, 장갑차, 심지어 위장망 속에 숨은 보병까지 최대 64개의 서로 다른 표적을 스스로 식별하고 자동 록온(Lock-on)하여 타격한다.
이 영리한 기계들이 철저하게 설정한 ‘킬존(Kill-zone)’ 안에서는 생명을 향한 일말의 자비도 허용되지 않는다. 쓰러진 러시아 부상병이 있어도 본대는 구출을 포기한다. 환자를 후송하려다 AI 드론의 연쇄적인 추적 타격으로 부대 전체가 전멸하기 때문이다. 숫자는 이 지옥의 밀도를 냉정하게 증명한다. 현재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영토 단 1제곱킬로미터를 점령하기 위해 무려 1300명의 사상자를 내고 있다. 작년과 비교해 전사자가 될 확률은 19배나 폭증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우크라이나군 1명이 전사할 때 러시아군 2~3명이 사상되는 수준이었으나, 5월 이후 그 살상 비율은 1:8이라는 경악스러운 수치로 치솟았다.
지난 5월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최전방에서 하르티아 여단 소속 병사가 러시아군 진지를 향해 드론을 띄우고 있다. (사진=뉴시스)
가장 첨단화된 전쟁이 가장 원시적이고 치명적인 소모전과 대량 살육을 낳는 이 모순의 배후에는,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권력이 도사리고 있다. 그 정점에 팔란티어(Palantir)의 CEO 알렉스 카프가 있다. 팔란티어가 제공한 핵심 서비스는 전장의 모든 데이터를 빨아들이는 거대한 인공지능 킬체인 시스템이다. 그들의 플래그십 인공지능 플랫폼인 ‘고담(Gotham)’은 상공의 드론 영상, 위성 사진, 감청된 무선 통신, 민간인의 제보 앱 데이터까지 전장의 모든 이종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흡수하고 통합한다. 여기에 지리정보 시각화 플랫폼인 ‘가이아(GAIA)’가 결합하여 전선의 사령관들에게 실시간 3D 전장 지도를 제공한다. 과거에는 적의 위치를 파악하고 타격 결정을 내리는 데 며칠이 걸렸다면, 이제는 팔란티어의 시스템을 통해 단 몇 분 만에 표적을 탐지하고 포격을 명령하는 ‘소프트웨어 기반 타격 파이프라인’이 완성된 것이다.
팔란티어의 그림자는 우크라이나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들은 이미 2년 전 가자지구 공격 때부터 이스라엘에 합동전투 모델과 정보융합 시스템인 ‘스마트 메이븐(Smart Maven)’을 제공하며 인공지능 표적 매칭의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이 시스템이 무서운 점은 정치권력과 군부에게 ‘지능형 무기로 손쉽게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환각(Hallucination)’을 선사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전장에서 생체실험을 마친 신흥 기술들이 민간 사회로 흘러 들어올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극심한 양극화와 빅테크의 독점, 그리고 완벽한 인간 통제라는 ‘전쟁터의 논리’가 우리의 일상과 민주주의 체제에 그대로 이식될 위험을, 우리는 과연 안심하고 지켜볼 수 있는가.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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