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연대' 4세대 K-주주행동주의 본격화
2026-07-27 15:10:57 2026-07-27 16:35:44
[뉴스토마토 신수정 기자] 국내 소액주주들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결집하는 수준을 넘어 해외 행동주의 펀드와 직접 손잡는 새로운 주주행동주의 국면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가치 제고를 목표로 국내 주주가 글로벌 투자자에게 먼저 협력을 제안하는 사례가 등장하면서 한국형 행동주의가 '국내 표 대결'을 넘어 국제 공조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한화생명 소액주주연대, 사프켓센티넬에 연대 제안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한화생명 소액주주연대가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 사프켓센티넬(Safkhet Sentinel)에 투자 서한을 보냈습니다. 소액주주연대는 "이번 서한에서는 한화생명의 낮은 주가 등 구조적 상황을 설명하고 재무적 투자 제안도 했다"면서 "주주연대를 통해 함께 주주권 행사를 강력히 진행하자는 내용도 담았다"고 밝혔습니다. 국내 소액주주가 판을 짜고 해외 펀드에 선제적으로 연대를 제안한 자본시장 역사상 최초의 상향식(Bottom-up) 글로벌 연대 사례가 될지 관심이 쏠립니다. 
 
앞서 한화생명 소액주주는 한화생명의 낮은 주가와 저평가된 기업가치를 지적하며 지난달부터 한국거래소, 감사원, 금융감독원 등에 민원과 고발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사프켓센티넬은 지난 10년간 뉴욕 월가에서 문제 기업을 저격해 온 파미 콰디르 창립자 겸 최고투자책임자(CIO)가 이끌고 있습니다. 파미 콰디르는 미국의 헤지펀드 매니저이자 공매도 전문 투자자로, 글로벌 제약사 밸리언트, 독일 핀테크 와이어카드 등 여러 문제 기업을 공매도로 습격하며 '월가의 암살자(The Assassin)'라는 별명을 얻은 인물입니다. 지난 2017년부터 공매도 전문 헤지펀드 사프켓캐피탈(Safkhet Capital)을 설립해 운영해 오다 올해부터 행동주의 투자 플랫폼 사프켓센티널을 출범시켰습니다.
 
콰디르 CIO는 한국 자본시장 개혁 속에서 기업가치 재평가 가능성이 높은 우량기업들에 주목했습니다. 기존의 공매도 방식 대신 롱 포지션(매수) 행동주의를 적용하기로 하고, 지난 3월 방한해 국내 법률가 및 행동주의 투자자들과 접촉했습니다. 사프켓 특유의 심층 리서치 노하우를 행동주의 전술에 접목해 최적의 주주가치 제고안을 제시하겠다는 구상입니다.
 
박판서 한화생명 소액주주연대 대표는 "헤지펀드가 회사를 적대적 인수합병(M&A) 하겠다는 게 아니고, 따지고 보면 기업이 우량하고 좋으니까 여기에 재무적 투자를 한다는 것"이라며 "그래서 한화생명에 투자해 같이 정상 주가를 올리기 위해 주주 행동을 같이 해보자고 제안하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글로벌 공조 시도로 '4세대 행동주의' 신호탄
 
주주행동주의 1세대는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소수주주 권리 보호를 요구했던 시기였습니다. 이후 2000년대에는 소버린, 칼 아이칸, 엘리엇 등 해외 행동주의 펀드가 국내 기업을 상대로 경영 참여에 나서며 2세대를 형성했습니다. 당시에는 적대적 M&A와 단기 차익 실현 논란이 이어지며 이른바 '먹튀' 비판도 적지 않았습니다.
 
2010년대 후반부터는 KCGI와 얼라인파트너스 등 국내 사모펀드(PEF)가 주도하는 3세대 행동주의가 확산됐습니다. 기업가치 제고를 앞세워 소액주주들의 의결권 위임을 확보하고 주주총회 표 대결을 벌이는 방식이 대표적입니다.
 
이번 한화생명 사례는 기존과 결이 다릅니다. 국내 소액주주가 직접 행동주의의 주체가 돼 해외 투자자에게 협력을 제안하고 국제적 공조를 모색했다는 점에서 '4세대 행동주의'의 시작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국내 자본시장에서도 소액주주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상장사 200곳을 분석한 결과 소액주주 지분율(47.8%)은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율(37.8%)보다 10%p 높았습니다. 기업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액주주와 행동주의 세력이 핵심 이해관계자로 자리 잡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시장에서는 행동주의가 폐쇄적인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 비효율 자산 정리 등 주주환원 정책을 촉진하는 긍정적 역할을 한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장기간 이어진 '코리아 디스카운트(주식 저평가)' 해소에도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옵니다.
 
다만 단기 수익 중심의 행동주의가 기업의 장기 경쟁력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주주행동주의펀드 역할 확대에 따른 시장영향' 보고서에서 "행동주의 펀드는 제한된 투자기간 내 수익을 실현해야 하는 특성상 단기 주가 상승에 집중할 유인이 존재한다"며 "높은 배당과 자사주 소각, 자산 매각 등을 과도하게 요구하거나 경영권 방어 과정에서 기업의 불필요한 비용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 자본시장연구원의 누적초과수익률(CAR) 분석에서도 주주제안 공시 직후에는 긍정적인 주가 반응이 나타났지만, 주주총회 이후 20~40거래일이 지나면 효과가 약화되거나 마이너스로 전환되는 경향이 확인됐습니다.
 
전문가들은 행동주의가 장기적인 기업가치 제고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제도적 보완도 병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황 연구위원은 "주주제안 공시 체계 개선과 자사주 보유·처분 기준 정비 등 제도적 안전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언했습니다.
 
이상민 한양대학교 사회학과 부교수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뿐 아니라 주주의 비례적 이익까지 확대하는 상법 개정이 병행돼야 소수주주 보호의 실효성이 높아질 수 있다"며 "경영진과 기관투자자, 소액주주가 지속적으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공식·비공식 소통 채널을 제도화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해외 헤지펀드 사프켓센티넬(왼쪽) 로고와 한화 사옥. (사진=사프켓센티넬, 한화그룹, ChatGPT 합성)
 
신수정 기자 newcrystal@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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