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오세은 기자] 중동 전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글로벌 정유시설의 가동 차질이 이어지면서 정제 경쟁력이 국가 에너지안보의 핵심 요소로 재평가되고 있습니다. 탈탄소 기조 속 축소됐던 정제 설비 확충 논의가 다시 부상하는 가운데, 안정적으로 휘발유·경유·항공유를 공급할 수 있는 K-정유의 경쟁력에도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로고. (사진=뉴시스)
8일 업계에 따르면 호주 정부는 지난달 말 서호주 카라사 지역에 신규 정유공장 건설을 추진하기 위한 예비타당성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호주가 국내에 새로 정유공장을 짓는 건 1965년 이후 60여년 만입니다. 호주에서 가동 중인 정유공장은 2000년 8곳이었으나, 현재 2곳으로 줄었습니다. 아시아 대형 정유사들과 경쟁에서 밀린 데다 탈탄소 기조 속에 탄소 배출량이 많고, 운영비가 높은 노후 저유 시설을 정리한 영향입니다.
이 때문에 호주는 전체 연료 수요의 약 8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외부 충격에 취약한 구조입니다. 그간 정제설비를 줄여온 호주가 60년 만에 정유공장 건설을 검토하는 것은 전쟁 등으로 정제연료 시장이 크게 흔들리며,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정유 능력 확대의 중요성이 부각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업계에서는 호주 사례가 정유산업을 다시 국가 에너지안보 전략 인프라로 바라보기 시작한 상징적 사건이라는 해석도 나옵니다.
최근 글로벌 석유 정제품 공급은 주요 정유시설 가동 차질과 수출 제한으로 크게 제한된 상태입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올해 2분기(4~6월) 글로벌 정제 생산량은 중동 전쟁 이전보다 약 6%(1일 약 500만배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중동 전쟁으로 대규모 정유시설이 가동 차질을 빚은 데 이어,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핵심 정유시설 공세 수위까지 겹치면서 정제유 공급이 줄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세계 최대 정유국인 중국이 올해 들어 에너지 안보 강화를 이유로 정제유 수출을 대부분 중단하면서 글로벌 석유제품 공급난이 더욱 심화됐습니다.
특히 글로벌 경유(디젤) 시장은 세계 2위 수출국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정유시설에 대한 대대적인 드론 공격 여파로 지난달 초 경유 수출을 전면 금지하면서 빠르게 경색됐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싱가포르 경유 경제마진은 지난해 평균 배럴당 17.3달러에서 올해 7월 5주 배럴당 76달러까지 약 4.4배 치솟았습니다. 중동과 러시아의 주요 정유시설이 막대한 타격을 입으면서 당장 전쟁이 끝나도 손상된 설비 복구와 재고 정상화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이처럼 글로벌 정제품 공급 불안이 커지면서 한국 정유업계가 보유한 정제 경쟁력의 전략적 가치도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국내 정유 4사(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의 하루 원유 정제 능력은 총 330만배럴로 세계 5위 수준입니다.
특히 국내 정유사는 대규모 정제 설비의 높은 가동률과 우수한 고도화 설비를 갖춘 데다 지정학적 위험에서도 비켜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 덕분에 세계적인 수급 난항 속에서도 안정적인 공급을 유지하며 글로벌 석유제품 공급망의 중심축이자 에너지 안보의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한국석유공사 페트로넷에 따르면 국내 정유사들은 올해 상반기 2억2623만배럴 규모의 석유제품 물량을 수출했습니다. 금액으로는 약 282억달러(40조원)로, 지난해 동기 대비 36.5% 증가했습니다. 글로벌 석유제품 공급 불안이 커지는 가운데 국내 정유사들의 수출 규모가 크게 늘면서 K-정유가 국내 연료 공급을 넘어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을 뒷받침하는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오세은 기자 os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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