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대법원의 고무줄 선고기일, 그리고 정치적 유혹
2026-08-31 06:00:00 2026-08-31 06:00:00
조희대 대법원장이 관례를 깨고 대통령에게 서면으로 대법관 후보 두 명을 임명 제청했다. 그중 한 명은 지난 3월 퇴임한 대법관의 후임이다. 반년 가까이 공석이었던 자리인데, 자초한 논란으로 언제 임명이 될지 더욱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법리적 시시비비를 떠나, 오랜 공석을 방치하다가 두 자리가 비기를 기다려 두 명을 동시에 제청했다는 점에서 대통령과의 정치적 거래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한 모양새다. 서로 협의가 되지 않아 서면 제청이라도 할 것이었다면, 일찍 했어야 했다. 그런 점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의 행위는 정치적이다.
 
조희대 대법원장 탄핵부터 대통령의 반려, 법원조직법 개정까지 서면 제청을 둘러싼 논란 어디에도 침해된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헌법 제27조 제3항은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의 대법관 임명권도, 대법원장의 제청권도 모두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 보장을 위한 도구이지, 그 자체가 목적인 권한이 아니다. 
 
대법원의 재판은 법률심으로 거의 100%가 서류로만 이루어지는데, 사법연감에 따르면 대법관 1인당 1년에 3000~4000건, 하루 평균 10건 이상의 사건을 처리한다. 재판 지연은 물리적으로 불가피한 일이고, 더 심각한 것은 판결 선고가 언제 이루어질지 도무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3개월일 수도 있고, 수년이 걸릴 수도 있다. 재판이 늦다고 따질 방법도 없고, 기준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다.
 
대법관 한 명의 공석은 단순히 계산해도 3000~4000건 이상의 사건에 반년 이상의 지연을 초래했을 것이다. 그 사건들이 쉽게 특정되지 않고, 당사자들의 항의가 없다고 해서 불필요한 재판 지연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논란을 다루는 언론도, 갈등의 당사자인 대통령과 대법원장도 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고민이 없다. 목적을 망각한 수단인 셈이다.
 
소송법에 대법원은 사건 기록을 받은 날부터 민사는 5월 이내에, 형사는 4월 이내에 선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대법원은 위 선고 기한에 관한 규정을 강제력이 없는 훈시 규정으로 해석한다. 한마디로 안 지켜도 된다는 것이다. 규정의 최종적 해석 권한은 대법원이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국회는 해당 규정을 왜 만들었을까. 
 
반면, 조희대 대법원은 공직선거 사건의 상고심은 3개월 안에 선고해야 한다는 규정을 근거로 유력한 야당의 대통령 후보에 대한 무죄 판결을 대통령 선거 직전에 전무후무한 속도로 파기환송했다. 기한에 대한 해석이 고무줄이다. 사법 역사상 최악의 판결 중 하나로 평가받을 사법부의 정치행위였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7월2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서면 제청 논란으로 촉발된 갈등을 기화로 대법원이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사건 등 정치적 사건을 총선에 즈음해 선고하거나, 선고 시점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것이라는 억측들이 있다. 유죄든, 무죄든 그 선고는 정치권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오고, 여권과 야권에 극단적인 유·불리를 주게 된다. 단순히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이러한 의혹과 억측이 횡행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얼마나 추락했는지를 보여준다. 
 
대법원은 공직선거 재판뿐만 아니라 모든 사건에 대해 선고 기일 지정에 관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을 정하고, 이를 공개해 최소한의 예측 가능성을 보장해야 한다. 불가피하게 기준을 지키지 못할 때에는 정당한 사유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이 있어야 한다. 사법부가 하루빨리 실추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혹시 모를 정치행위의 유혹을 끊어낼 제도적 발판을 마련하기를 바란다.
 
천경득 변호사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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