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명품판결문, 판사 개인 양심에만 맡겨선 안 돼…사법개혁이 해법"
이주민·국가폭력 피해자 대리해 온 변호사 최정규 인터뷰
"소송 진 사람도 '납득'할 치열한 논증 담은 게 명품판결문"
"법원, 판결 대상 따라 잣대 달라져…법률가 불신으로 확산"
"시민 위해 사법개혁 필요, 재판지연·판결문 개선부터 해야"
2026-08-31 06:00:00 2026-08-31 06:00:00
[뉴스토마토 강예슬 기자] 법원은 국민이 기댈 '최후의 보루'지만, 막상 법정에 서면 이런 기대는 무너지기 일쑤입니다. 재판이 하염없이 길어져도 이유를 알기 어렵고, 수년을 기다려 받은 판결문엔 충분한 설명이 담기지 않아 패소를 납득하지 못하는 일도 부지기수입니다. 반면 정치·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은 속전속결로 처리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믿음은 무너지고 사법을 불신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변호사 겸 활동가로서 이주민, 장애인, 국가폭력 피해자 등을 변호해 온 최정규 법무법인 원곡 변호사는 최근 이런 고민을 담아 『명품 판결문은 어디에서 오는가』를 출간했습니다. 2021년 책 『불량 판결문』을 통해 비상식적인 판결 문제를 고발한 지 5년 만입니다.
 
최 변호사는 지난 28일 경기도 과천시의 한 카페에서 <뉴스토마토>와 만나 "판사의 치열한 논증이 담긴 게 명품 판결문"이라며 "명품 판결문은 판사 개인의 양심에서 시작될 수 있지만, 개인의 양심에만 맡겨져선 안 된다. 시스템을 바꾸는 사법개혁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어 그는 "판결문의 질을 높이기 위해선 사건 배당, 법관 증원, 재판 보조 인력 확충, 평가 방식 함께 개선하는 종합적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최정규 법무법인 원곡 변호사가 28일 경기도 과천에서 뉴스토마토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다음은 최정규 변호사와 일문일답.
 
최근 『명품 판결문은 어디에서 오는가』를 출간했습니다. 출간 배경이 궁금합니다.
 
현실을 비판하고 문제를 폭로하는 것만으로는 세상이 달라지지 않더라고요. 『불량 판결문』 출간 이후 2022년 수원고등법원에서 '바람직한 법정 언행'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해달라는 제안을 받은 적 있습니다. 신랄한 비판을 전하기보다, 20년 넘는 변호사 생활 중 기억에 남는 법정 장면 다섯 가지를 골라 강의를 했어요. 수많은 법정을 다녔지만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판사의 태도와 판결문이야말로 '명품 판결문'의 조건을 갖춘 것이라 생각했고, 그 내용들을 이번 책에 담았습니다.
 
책에 실린 사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명품 판결문 하나를 소개하신다면요.
 
법조 초년생 시절 국선 변호를 맡으며 만났던 노행남 판사님이 가장 인상 깊습니다. 형사재판의 법정 분위기는 민사보다 엄중해서 판사가 아무리 친절하더라도 위압감이 들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노 판사님은 법대(法臺) 아래로 내려와 피고인과 증인에게 수사 기록을 제시하며 직접 질문을 하더라고요.
 
당시는 보이스피싱 가담자에 대한 엄벌주의에 휩쓸려 보이스피싱 행동책에게 중형을 선고했던 분위기가 강했습니다. 하지만 노 판사님은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하게 된 외국인 유학생에게도 엄격한 증명의 원칙을 적용해 판단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런 경험들을 통해서 정의하는 '명품 판결문'이란 무엇인가요. 
 
소송 당사자 입장에선 이기면 명품이고, 지면 불량 판결이라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소송에서 진 사람조차 납득할 수 있는 치열한 논증이 담긴 판결문이 진짜 명품 판결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판결문엔 '오죽했으면 이 사건이 최후의 보루인 법원까지 왔을까' 하는 마음으로 사건을 진정성 있게 대하고 고민한 흔적, 치열한 논증이 담겼습니다. 
 
2020년 1월20일 광주변호사회관에서 '제1회 홍남순 인권상'을 수상한 최정규 변호사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책에선 판사가 시민들에게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고 진단하셨습니다. 
 
시민들이 윤석열씨에 대한 법원의 구속취소 결정 등 일련의 사건들을 지켜보며 법률가의 민낯을 확인했다고 생각해요. 윤씨의 구속취소를 결정한 지귀연 재판부는 구속기간을 날짜 단위로 계산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윤씨에 관해서만 시간 단위로 쪼개어 석방을 결정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조희대 대법원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원은 6개월 이내에 형사보상 청구 관련 결정을 해야 한다'는 규정은 지키지 않으면서,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해선 ‘6·3·3 원칙’(선거법 사건은 기소 후 1심은 6개월 이내, 2·3심은 각 3개월 내 선고하도록 한 규정)을 강조하며 빛의 속도로 기록을 보고 선거 전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것도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자초했고요. 법원에 대한 불신이 법조인 전체에 대한 신뢰 상실로 이어지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편집자) 형사보상은 형사재판에서 무죄를 확정받은 피고인이 구금이나 형의 집행을 받았을 때, 피고인 혹은 상속인이 국가에 보상을 청구하는 것을 뜻합니다. 형사보상법 제14조 3항은 '보상청구를 받은 법원은 6개월 이내에 보상결정을 해야 한다'고 규정하지만, 이 기한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법원에 대한 신뢰가 법조인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진다고 보는 이유는 뭔가요. 
 
사람들은 법이라는 게 굉장히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고 생각하잖아요. 그래서 누가 법을 다루든 공정하다고 기대할 겁니다. 하지만 사법부가 대상에 따라 잣대를 달리하면서 불신을 키웠고, 그런 불신이 법률가 전반으로 확산됐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법률가들이 제대로 각오하지 않으면, 국민들이 더이상 법원과 법조인을 신뢰하지 않겠구나'하는 위기의식을 느낍니다. 특히 인공지능(AI) 시대엔 더더욱 그럴 것 같아요. AI 시대에도 살아남으려면 법원이 더 치열한 논증을 거쳐, 치열한 답변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이 사건이 왜 대법원 판례에 해당하는지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판례 문구만 단순 인용하는 판결이 적지 않습니다. 
 
명품 판결문을 꾸준히 만들어내기 위해선 사법개혁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하셨는데요. 
 
핵심은 시스템입니다. 판결문의 질을 평가하지 않는 시스템, 이유 없는 판결문을 방치하는 시스템, 재판 지연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 시스템 속에선 좋은 판결문이 꾸준히 나오기 어렵습니다. 누군가는 지엽적인 문제라 여길지 몰라도, 재판을 받고 경험하는 시민들 입장에서 가장 절실한 개선됐으면 하는 건 '재판 지연'과 '설명 없는 판결문'입니다. 이 문제부터 바꾸어나가야 합니다.
 
구체적인 방안을 설명해 주신다면요.
 
먼저 재판 지연 사태를 해결하는 데 지혜를 모아봤으면 해요. 어떤 사건은 정치·사회적 파장이 크다는 이유로 속전속결로 처리되지만, 대부분 시민들은 내 사건이 왜 지연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법률이 정한 기간이 지나 판결까지 늦어지면 그 사실을 통보하고, 차후 진행 상황과 지연 이유를 의무적으로 설명하도록 법률을 정비해야 합니다. 
 
판결문 개혁은 단순한 문체 개선이 아니라 법관의 판단 방식과 설명 책임을 바로잡는 일입니다. 판결문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사건 배당 구조, 법관 증원, 재판 보조 인력 확충, 법관 평가 방식까지 종합적으로 바꾸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강예슬 기자 yea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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