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5일 부산작전기지에서 청해부대 48진 왕건함이 해군작전사령부 장병들의 환송을 받으며 출항하고 있다.(사진=해군)
미국이 한국에 호르무즈해협 군사적 기여를 요구하면서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호르무즈해협은 우리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수송의 핵심 통로이고, 한·미동맹 역시 대한민국 안보의 핵심축이다. 따라서 미국의 요청을 가볍게 볼 수도, 해협 봉쇄를 남의 일로만 여길 수도 없다. 그러나 미국의 요청이 곧바로 한국군 파견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최종 판단 기준은 미국의 요구나 동맹에 대한 정치적 부담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익과 국민의 안전이어야 한다.
동맹은 어느 한 나라가 결정하고 다른 나라가 따라가는 상하관계가 아니다. 공동의 위협에 대응하고 공동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힘을 합치는 제도다. 특히 군사행동에는 목적과 위협에 대한 인식 공유, 사전 협의와 공동계획, 역할과 책임의 분담이 전제돼야 한다. 한·미동맹도 이러한 원칙 위에서 발전해 왔다. 양국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오랜 기간 연합방위계획을 발전시키고 연합훈련을 실시해 왔다. 한·미동맹이 강력한 동맹으로 평가받는 이유도 미군의 한국 주둔만이 아니라 양국이 위협을 함께 평가하고 계획하며 훈련하는 연합방위체제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미·이란 전쟁과 호르무즈해협 문제를 한반도 공동방위와 동일하게 취급하기는 어렵다. 한국은 전쟁 개시 과정이나 전략적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않았고, 미국과 공동으로 전쟁계획을 수립하지도 않았다. 미국이 독자적으로 결정하고 수행해 온 전쟁의 부담을 사후에 '동맹의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요구한다면, 그것이 한·미동맹의 본래 의무에 해당하는지부터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현재 호르무즈해협이 평시의 해상교통로가 아니라 전쟁이 진행 중인 분쟁해역이라는 사실이다. 평시에 해적을 퇴치하거나 상선을 보호하는 임무와 교전이 벌어지는 해역에 군사력을 투입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군함 한 척이나 수송기 한 대를 보내더라도 상대국은 이를 항행 안전 지원이 아니라 적대국의 전쟁 수행을 돕는 군사적 기여로 받아들일 수 있다.
'비전투 임무이기 때문에 괜찮다'는 판단도 위험하다. 전쟁 중에는 정보공유, 군수지원, 수송, 해상초계, 의료지원도 전투작전을 지속하게 하는 군사적 지원으로 평가될 수 있다. 우리가 미군 주도 작전에 병력을 보낸다면 실제 교전에 참가하지 않더라도 이란은 한국을 미국의 전쟁 수행을 돕는 국가로 인식할 가능성이 크다. ‘비전투’라는 명칭은 우리의 판단일 뿐, 상대국이 이를 비적대적 행위로 받아들인다는 보장은 없다.
그 결과 한국군과 우리 선박뿐 아니라 중동지역에 체류하는 국민과 기업, 공관과 에너지 시설까지 보복이나 위협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전쟁 이후 복원해야 할 이란과의 외교·경제 관계에도 장기적인 부담을 남길 수 있다. 전쟁 중 미국의 요청에 따라 이루어지는 파견이라면 전투병이든 비전투병이든 이란의 관점에서는 미국 편에 서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그렇다고 호르무즈해협의 안전을 외면하자는 것은 아니다. 해협의 안정과 항행의 자유는 대한민국의 중대한 국익이다. 문제는 언제, 어떤 조건과 방식으로 참여하느냐이다. 우리의 군사적 기여는 전쟁 중 미국의 작전을 지원하는 형태가 아니라 전쟁이 끝난 뒤 국제사회와 함께 평화와 항행 질서를 회복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한국군 파견을 검토할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은 미국과 이란이 완전한 종전을 선언하거나 이에 준하는 공식적인 적대행위 종료 합의를 체결하는 것이다. 일시적 휴전이나 불안정한 교전 중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무력충돌이 재개될 가능성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병력을 보내면 전후 복구 지원을 명분으로 내세우더라도 언제든 분쟁 당사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조건은 미국 단독 또는 미국 주도의 군사작전에 편입되는 방식이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의 주요국, 국제기구 등이 참여하는 다국적 틀을 갖추는 것이다. 파견 목적도 대이란 군사작전이나 봉쇄가 아니라 기뢰 제거, 항로와 항만시설 복구, 인도적 물자 수송, 의료지원, 상선 안전 확보 등 전후 복구와 해상교통로 정상화로 명확히 한정해야 한다.
이러한 조건이 충족된다면 비전투 병력과 자산을 중심으로 참여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이는 한미동맹을 존중하면서도 특정 국가를 적으로 돌리지 않고, 우리 경제의 생명선인 호르무즈해협의 안정에 책임 있게 기여하는 방법이다. 종전 후 다국적 체계 아래 전후 복구와 항행 안전에 참여하는 것은 전쟁 당사국을 지원하는 파병과 성격이 다르다.
미국으로부터 공식적인 파견 요청이 들어온다면 정부는 즉각 수용하거나 거부하기에 앞서 국가 차원의 공식 검토 절차를 밟아야 한다. 파견이 우리의 직접적인 국익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장병과 국민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지, 이란 및 중동 국가들과의 관계와 한반도 군사대비태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 작전 목적과 지휘체계, 교전규칙, 임무 종료 및 철수 조건도 명확해야 한다.
무엇보다 공식적인 적대행위 종료와 국제적 정당성이 확인돼야 한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 등 주요국이 참여하는 다국적 체계인지, 임무가 전쟁 지원이 아닌 전후 복구와 항행 안전에 한정되는지도 분명히 해야 한다. 이러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전투병은 물론 비전투 병력의 파견도 사실상 배제하는 것이 타당하다.
한·미동맹을 소중히 여기는 것과 미국의 모든 군사적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은 같은 의미가 아니다. 성숙한 동맹이라면 서로의 국익과 국내법적 절차를 존중하면서 공동행동의 범위와 한계를 협의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 역시 한국이 장병의 생명과 국가의 이해를 걸고 내리는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호르무즈해협 파견은 '미국 편이냐 아니냐'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에너지 안보, 해상교통로 보호, 한·미동맹, 대이란 관계, 중동지역 국민과 기업의 안전, 한반도 군사대비태세를 함께 고려해야 하는 국가전략의 문제다. 파견하면 동맹이고 파견하지 않으면 동맹을 저버리는 것이라는 단순한 논리는 경계해야 한다.
우리의 원칙은 명확해야 한다. 전쟁 중에는 비전투 병력도 이란으로부터 적대적 군사 지원으로 인식될 수 있으므로 파견하지 않는다. 완전한 종전 또는 이에 준하는 공식 합의가 이뤄진 뒤에는 여러 국가가 참여하는 다국적 체계 아래 전후 복구와 해상교통로 정상화를 위한 비전투 병력 파견을 검토한다. 동맹은 존중하되 결정은 자주적으로, 국제사회에 기여하되 국익과 장병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지 않는 것, 그것이 한·미동맹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대한민국의 책임과 국익을 함께 지키는 길이다.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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