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2와 0.041 사이…그라스울 패널 ‘단열 등급’의 함정
그라스울 샌드위치패널 논란, ‘단열 등급 둔갑’인가 ‘시험 잣대 충돌’인가
2026-09-18 08:48:49 2026-09-18 08:48:49
그라스울패널 생산 공정(사진=유튜브 디에스TV 화면 캡처)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0.009. 소수점 셋째 자리의 차이일 뿐입니다. 그러나 건축용 단열재 시장에서 이 숫자는 ‘가’와 ‘다’ 등급을 가릅니다. 대구경북녹색연합이 공개한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 성적서에서 그라스울 보온판의 열전도율은 평균 0.032W/(m·K), 이를 잘라 세운 패널 심재는 0.041W/(m·K)로 측정됐습니다. 열전도율은 낮을수록 단열성능이 좋습니다. 패널 심재의 수치는 28.1% 높습니다.
 
그라스울 샌드위치패널은 공장과 창고 등의 벽·지붕에 널리 쓰입니다. 유리섬유 사이에 공기를 가둔 단열재 양면에 철판을 붙인 복합제품입니다. 패널을 만들 때 넓은 보온판을 좁게 잘라 90도 돌려 세운 뒤 여러 조각을 이어 붙입니다. 이렇게 하면 압축과 전단에 견디는 힘은 커지지만, 열이 섬유와 공극을 통과하는 방향도 달라집니다.
 
KCL 성적서와 국가기술표준원 답변이 말하는 것
 
재료의 물성이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현상을 ‘이방성’이라고 합니다. 해외 연구에 따르면 그라스울의 방향별 열전도율 비가 1.32까지 벌어질 수 있습니다. 이번 KCL 시험의 0.041을 0.032로 나눈 값은 1.28. 방향 변화가 열전도율 차이를 만들 수 있다는 물리적 개연성은 충분압니다.
 
수치의 의미도 정확히 읽어야 합니다. 0.041은 0.032보다 28.1% 크지만, 같은 두께에서 열저항은 약 22% 낮아집니다. 100㎜ 두께라면 심재 자체의 열저항은 3.125㎡·K/W에서 2.439㎡·K/W로 떨어집니다. 같은 열저항을 확보하려면 두께를 이론상 약 28% 늘려야 합니다. 현행 에너지절약설계기준에서 0.032는 가등급, 0.041은 다등급 구간입니다. 중부1지역에서 외기에 직접 면한 공동주택 거실 외벽은 가등급 220㎜, 다등급 295㎜로 75㎜ 차이가 납니다.
 
외벽 성능은 심재뿐 아니라 철판과 접착층, 패널 이음부, 금속 체결재와 골조의 열교, 창호, 시공 틈새와 기밀성의 영향을 함께 받습니다. 따라서 “열저항의 차이가 곧 건물 에너지 사용량이 28% 늘어나게 한다”고 해석하면 과장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실제 시공 현장에서는 단열재 두께를 30%가량 추가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입니다.
 
국가기술표준원은 지난 9월 2일 국민신문고 답변에서 보온판을 절단해 세운 패널 심재는 구조가 변경돼 동일 제품으로 보기 어렵고, 보온판 열전도율 성적서를 패널 심재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답했습니다. 이 답변은 이번 논란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입니다. 시험성적서는 단순히 숫자가 적힌 종이가 아니며, 그 숫자가 실제 설계·납품·시공된 제품을 대표해야 합니다.
 
재료 시험과 완제품 시험, 선택이 아닌 필수
 
업계는 다른 잣대를 제시합니다. 샌드위치패널은 철판과 심재, 접착제, 형상이 결합된 복합제품이므로 심재가 아니라 완제품의 열저항을 측정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그라스울 단열재는 KS L 9102, 벽·지붕용 철강제 패널은 KS F 4724와 KS F 4731의 평가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완제품의 성능을 심재 열전도율 하나만으로 확정할 수 없다는 반론에는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완제품 시험을 통과했다고 실제 심재와 다른 보온판 성적서를 설계자료에 쓰는 것이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심재의 등급과 열전도율을 표시했다면 그 값은 가공된 심재를 대표해야 합니다. 반대로 심재 시험 한 건만으로 모든 완제품이 기준 미달이라고 단정해서도 안 됩니다. 재료시험과 완제품시험은 어느 하나를 택할 문제가 아니라 두 단계에서 모두 확인할 사안입니다.
 
현재 공개자료로 확인되는 사실은 제한적입니다. KCL 시험에서 두 시료의 평균값이 0.032와 0.041로 나왔고, 국가기술표준원이 보온판 성적서의 전용에 부정적 해석을 내렸다는 데까지입니다. 물론 이 한 건만으로 국내 모든 제조사의 심재가 다등급이라거나 특정 업체가 고의로 성능을 속였다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시민단체가 주장하는 ‘원재료 그라스울 보온판의 열전도율 시험성적서를 그라스울 패널 심재에 적용하는 문제는 ’허위 시험성적서 사용‘이라는 주장에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성적서의 가치는 '실제 현장'을 대변할 때 증명된다
 
논란을 끝내려면 제조사가 제출한 성적서를 다시 보는 수준을 넘어야 합니다. 정부나 제3자가 여러 제조사와 생산 로트의 제품을 시장에서 무작위로 구매해서, 같은 로트의 보온판을 원래 방향과 90도 회전 방향으로 나눠 시험하고 실제 패널 심재도 측정해야 합니다. 밀도와 함수율, 바인더 함량을 통제하고 X선 마이크로CT 등으로 섬유 배열을 계량하면 방향·절단·압축의 영향을 분리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이음부와 체결 조건을 포함한 완제품을 열상자법으로 시험해야 합니다. 두 시험기관이 시료 정보를 모른 채 교차 측정하고 평균값뿐 아니라 측정불확도와 생산 편차도 공개할 필요가 있습니다. 설계도서의 열관류율 계산서, 시험성적서 번호, KS 인증 범위, 생산 로트, 납품서와 감리 기록을 연결하는 추적조사도 필요합니다. 그래야 시험실의 숫자가 실제 건물에 어떻게 적용됐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번 사안의 본질은 그라스울이 좋은가 나쁜가의 문제라기보다는 화재에 강한 무기질 단열재라는 장점과 별개로, 성적서가 설치 상태의 제품을 정확히 대표하느냐의 문제입니다. 0.032와 0.041은 업계 전체에 대한 판정을 담은 결정문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시장 표본조사와 문서 추적에 나서야 할 만큼 분명한 경고등입니다. 단열재 성적서의 신뢰는 소수점 자릿수가 아니라 그 숫자와 실제 제품 사이의 거리를 얼마나 좁혔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대구경북녹색연합 이재혁 대표는 “국토교통부는 이미 문제점을 다 파악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가 업계 눈치만 보며 문제를 방치한다면, 그 피해는 결국 공장과 창고, 집을 짓고 사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더 이상 책임을 미루지 말고 지금 답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국토교통부가 적극 나서서 검증을 통한 신뢰를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그라스울 제품(사진=벽산 그라스울)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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