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태의 경제편편)재벌 자신을 위한 경영감시
2020-12-23 06:00:00 2020-12-23 06:00:00
올 들어 닥친 코로나19 사태는 한국의 항공사에 가혹한 시련을 안겨줬다. 사실상 모든 항공사가 집단부도 위기에 내몰렸다.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기로 했던 현대산업개발은 발을 빼고 말았다. 두산 등 일부 재벌도 유동성 부족 위기에 직면했다. 대기업의 위기는 심각한 신용경색과 환율 불안으로 이어졌다.
 
이에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대한항공에 지난 4월 1조2000억원을 긴급지원해 발등의 불을 껐다. 아시아나항공에는 기간산업안정자금을 지원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언제 끝날지 예측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위기는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을 계기로 간신히 탈출구를 찾았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에는 산업은행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두 항공사의 인수합병 절차를 마치면 산업은행이 한진칼 지분 10.6%를 확보한다. 대항항공은 지난 4월 1조2000억원을 지원받을 때도 3000억원을 영구채 형식으로 조달했다.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가 붙여진 채권이다. 이 지분까지 더해지면 산업은행 지분은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적지 않은 지분을 가진 국민연금과 '강성부펀드(KCGI)'도 노려보고 있다.
 
조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한 금융지원을 받는 대신에 보유하고 있는 대한항공과 지주회사 한진칼 지분을 담보로 내놓기로 했다. 뿐만 아니라 윤리경영위원회가 설치돼 조 회장을 비롯한 총수 일가와 대한항공 경영진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요컨대 조원태 회장은 이제 전례없이 엄격한 감시를 받으며 경영해야 한다. 최악의 경우 경영권을 상실할 수도 있다.
 
지난해 매각대상으로 넘어간 아시아나항공도 사실은 회계감시를 요리조리 회피하다가 한꺼번에 대가를 치른 셈이다. 창업자 3~4세들에 의해 주도되던 두산그룹의 경우도 지금까지 제대로 경영감시를 받았다면 그토록 큰 어려움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뒤늦게나마 적극적인 구조조정과 대주주들의 협조 결단에 힘입어 회생의 발판을 마련했으니 다행이라 하겠다.
 
사실 한국의 재벌기업은 지금까지 온전한 의미의 경영 감시를 받은 적이 없다. 그런 가운데도 한때 명성을 날리기도 했다. 반면 적폐도 쌓여갔다. 지난날 많은 재벌기업이 누적된 적폐를 견디지 못하고 비운을 당했다. 따라서 재벌에 대한 좀더 확실하고 올곧은 경영감시가 오랜 숙제였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공정거래 3법'은 결국 그런 숙제를 풀기 위한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감사위원을 선출할 때 최대 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합산해 3%로 제한하려던 상법 개정안의 '3%규정'이다.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다중대표소송제도'도 같은 필요성에 기인한 것이다. 공정거래법도 40년 만에 전면개정되면서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재벌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규제도 두터워졌다.
 
그렇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법안은 상당히 완화됐다. 3%규정은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합산하지 않고 따로따로 적용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담합사건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독점고발권도 살아남았다. 재계의 주장이 상당히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럼에도 비판과 불만이 여전하다. 기업경영을 심각하게 옥죈다는 주장이다. 어느 정도는 이해된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동굴 속에서만 살던 사람에게 햇빛 밝은 세상에서 살아보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지금까지 한국이 여러 차례 겪어온 경제위기나 파산 사태 또는 오너리스크 등을 잠깐만 돌아보자. 엉성한 경영감시를 더이상 그대로 둘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오히려 재벌과 국가경제 체질을 보다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는 경영감시 강화가 시급한 것이다. 그것은 재벌 자신의 이익과 발전에도 유익한 일이다.
 
다만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에 예기치 못한 파편이 튈까봐 걱정된다. 정부·여당은 지난 7월 말 임대차 관련법을 군사작전하듯이 통과시킨 전례가 있다. 이 때문에 지금 전셋값이 천정부지로 뛰고 전세 물량 구하기도 어려워졌다. 이는 다시 집값을 들썩이게 하고 있다. 이런 악순환을 정부·여당이 의도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 하지만 충분한 숙고와 의견수렴 없이 서두른 결과였다. 이런 악순환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부작용이나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공정경제3법 시행과정에서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특히 중소벤처기업의 경우 역효과를 끼치지 않도록 세밀하게 살피고 대응해야 할 것이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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