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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4월 7일 지방자치단체장 보궐선거가 있었다. 작년에는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고 내년에는 대통령선거와 지방자치단체선거가 연거푸 있을 예정이다. 본격적인 정치시즌이다. 정치지도자를 뽑는 선거지만 사실상 각 정파가 전쟁을 하듯 싸우는 ‘정치판’이 열리는 것이다. 양극단이 갈라져 어느 한쪽을 밟고 이겨야 직성이 풀리니 전쟁이나 싸움판에 비유해도 큰 무리는 아니다. 우리나라는 사실상 양당의 2강체제이고 나머지 군소정당은 캐스팅보트(casting vote)에도 못 미쳐 겨우 명목을 유지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양당이 갈라져 있음에도 중간지대의 유권자를 흡수하기 위한 물밑 작업은 자못 치열하다. 중도적인 유권자가 많음에도 이들을 배경으로 한 정당이 탄생되지 않는 것도 아이러니다. 중간지대의 후보가 선택받기 어렵다는 것은 편향되거나 편중된 경향의 결과가 반복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상은 사회전반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출세한 사람들 상당수의 행태가 정치판에서 나타나는 ‘편 가르기’나 ‘내 편 만들기’를 서슴지 않는다. 안타까운 일이다. 크고 작은 조직에서도 이러한 모습은 흔하다. 어떤 사람의 능력보다도 연고나 친분을 내세워 세력을 형성하고 이를 자신의 이익에 반영하기도 한다.
특히 생산적인 조직인 기업에서는 이러한 내부정치가 자칫 많은 부작용을 야기한다. 기업의 경영자가 이를 용인하거나 스스로 추구한다면 인사나 노무, 영업 등에서 많은 불협화음을 가져올 수 있다. 자신의 권력이나 권한에 가까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구분한다거나 회사 내 구성원을 갈라놓거나 나아가 편향적인 인사를 하게 된다. 경영자도 사람인지라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 해도 실력과 성과를 중시해야 하는 기업에서는 지양해야 할 점이다.
최고경영자는 객관적 기준을 가지고 역량과 자질을 갖춘 인재를 중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용’의 리더십을 갖춰야 할 것이다. 즉, 사실과 이치에 맞게 의사결정을 함으로써 어느 한 개인이나 부서에 편파적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갈등이나 대립의 상황에서도 극단을 선택하지 않는 중용(中庸)을 가져야 한다.
역사에서도 중용을 견지한 인물이 찬사를 받은 경우가 많다. 조선시대 영의정을 지낸 이원익(1547~1634)은 목릉성세(목릉은 선조의 릉·이 시기에 훌륭한 인물이 많았음을 말함)라고 일컫는 선조치세에서 최고의 위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 이유는 중용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태종의 자손으로 금수저인 그는 17세에 생원시, 22세에 과거급제를 했다. 뛰어난 행정가이자 군 지휘관으로써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어려운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고 경청하며 자신의 이익을 취하지 않는 자세로 관직을 지냈다. 재물에 대한 욕심이 없고, 곧고 깨끗한 관리에게 주어지는 청백리(淸白吏)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조선 519년 217명중에서 대표적인 청백리로 평가받고 있다. 관료로써 능력이 뛰어나고 근검절약하며 효와 인의 덕목을 두루 갖추기도 했다.
이러한 이원익의 처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요인은 바로 균형적인 사고와 행동의 근원이 되었던 ‘중용의 리더십’에 있었다. 그는 편 가르기와 당파에 물들어 이순신을 죽이자고 했던 위정자들에 맞섰다. 결국 이순신을 지켜내고 임진왜란에서 큰 공로를 세우게 한 것이다. 또한 극단적인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폐할 때 이를 저지하고자 했고, 친형인 임해군을 죽이고자 할 때도 반대했다. 중종반정이후 인목대비와 인조에게 광해군을 죽이자고 주장한 일파에 맞서 기도했다. 양극단에서 서로 죽이고 죽는 상황이 반복되었지만 이원익은 어느 편에 서기보다 중용의 입장에서 상생의 방법을 제시하는 지혜로운 처세를 보였다.
세상 사람들이 서로 반대 입장에서 으르렁거리며 싸우고 내편이 아닌 자를 배척하는 게 일반적인 세태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원익은 누구의 편을 들거나 자신의 이익을 탐하기보다 중용으로써 전체의 이익과 평화를 내세웠다. 그는 이러한 장점으로 인해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선조-광해군-인조 3대에 걸쳐 6번이나 영의정을 지낸 조선최고의 인물이다. 많은 고관대작들이 특정파벌에 기대어 출세하거나 권세를 누리기도 했고, 그중에는 처형되거나 말년이 불행했던 영의정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영의정으로써 이름을 날린 인물의 상당수는 이른바 불편부당하지 않고 중용의 길을 택한 사람들이었음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현대에서도 훌륭한 경영자의 덕목인 중용의 처세를 되새겨 봐야 할 것이다. 두 귀를 열고 양쪽의 말을 듣는 그런 모습으로 말이다.
이의준 사단법인 한국키움경제포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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