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숨소리)한반도의 마지막 맹수 : 삵
2025-03-14 09:37:56 2025-03-14 16:50:01
삵(멸종위기종)이 경기도 연천군 임진강이 얼어붙자, 유유히 남단에서 북단으로 넘어오고 있다.
 
지난 100년 동안 한국에서 가장 크고 위엄 있는 맹수들은 사라졌어요. 호랑이는 전설과 동화 속의 먼 존재로 남아 있고, 표범과 시라소니는 이제 희미한 기억으로만 남았어요. 하지만 그들이 사라진 자리에서, 한반도의 깊은 숲과 습지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살아가는 작은 포식자가 있어요. 바로 삵(Prionailurus bengalensis, Leopard Cat)입니다. 
 
삵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호랑이나 표범처럼 크고 위엄 있는 맹수도 아니고, 고양이처럼 사람들에게 친숙하지도 않아요. ‘살쾡이’라고도 불리는 삵의 몸길이는 약 50cm입니다. 등은 누르스름하거나 검은 갈색이며, 배는 흰색입니다. 몸과 꼬리에는 검은 반점이 흩어져 있어요. 머리에는 검은 갈색 줄무늬 두 개와 흰색 무늬가 이마에서 양쪽 코로 이어집니다. 삵의 짧고 도톰한 꼬리는 끝이 둥글어 마치 솜방망이처럼 통통해 보여요. 얼핏 보면 몸집이 큰 들고양이 같지만, 외래종인 들고양이와는 달리 한반도의 숲과 습지를 터전으로 삼아온 토착종이에요. 
 
삵은 작은 덩치 덕분에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주로 들쥐, 멧비둘기, 큰기러기, 심지어 자신보다 덩치가 큰 두루미, 그리고 강의 물고기들을 먹이로 삼아요. 삵은 거의 소리를 내지 않아요. 사냥감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몸을 낮추고,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하게 움직여요. 사뿐사뿐, 갈대밭에서는 바람결에 몸을 숨기고, 얼음판 위에서는 눈밭에 낮게 엎드려 미끄러지듯 이동해요. 먹잇감이 눈치채기도 전에 뒷덜미를 낚아채는데, 얼음 위에서 자고 있던 새들이 바로 그 표적이 돼요.
 
멸종위기종 삵이 경기 파주의 얼어붙은 공릉천가를 걷고 있다
 
고양잇과 동물 대부분은 물을 꺼리지만, 삵은 예외예요. 오리나 기러기를 사냥하기 위해 주저 없이 강으로 뛰어들고, 하천을 건널 때는 능숙하게 헤엄을 쳐요. 물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이 작은 맹수는, 사냥을 위해서라면 어디든 갈 수 있어요. 삵은 한때 한반도 전역에 걸쳐 서식하던 포식자였어요. 하지만 1965년, 삵이 사냥 대상으로 지정됐고, 쥐약이 무분별하게 사용하면서 개체 수가 급격히 줄었어요. 결국 1998년, 환경부는 삵을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하고 보호에 나섰어요. 이후 곳곳에서 삵이 다시 발견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개체 수가 적고 서식지 보호가 필요한 상황이에요.
 
한반도에서 대형 맹수들은 이미 사라졌어요. 이제 삵은 한국에 남은 마지막 고양잇과 맹수예요. 삵을 만났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안도합니다. 삵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 지역의 먹이사슬이 건강하게 순환하고 있다는 증거니까요. 한반도의 마지막 포식자인 삵이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자연환경을 지키는 일은, 결국 우리가 자연과 야생동물과 맺는 관계를 다시 고민해보는 일이에요.
 
글·사진= 김용재 생태칼럼리스트 K-wild@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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