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대통령 자신이 가장 확실한 파면 사유
2025-03-19 06:00:00 2025-03-19 06:00:00
헌법재판소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이 임박한 가운데, ‘왜 이렇게 늦어지는 거냐’며 추측이 많다. ‘탄핵안이 기각되는 건 아닌가 싶어 불안하다’는 사람도 많다. 반대쪽에서는 ‘기각이나 각하가 당연하다’며 양측 대립이 극을 치달아왔다. 모든 심리를 마치고 발표만 앞둔 그간의 헌법재판소 법정을 복기해본다. 
 
8인의 헌재 재판관 모두 애 많이 썼지만, 특히 김형두·문형배·정형식 재판관이 인상적이었다. 증인신문 과정에서 명쾌하고 예리한 질문, 중립적 재판 진행, 변호인단의 증인에 대한 압박/말자르기 등을 제어하며 재판정 권위와 질서를 유지했다. 
 
‘헌재 결정 왜 이리 늦어지나’ 추측 무성
 
김형두 재판관의 정중하고 겸손한 태도, 조곤조곤하면서도 의표를 찌르는 신문은 권위와 팩트의 중요함을 일깨웠다. 문형배 소장 권한대행은 헌재의 권위와 논리전개의 정연함을 보여줬다. 재판관으로서는 당연한 덕목이지만, 중립적 진행과 증인에 대한 배려도 돋보였다. ‘흰 눈썹’ 정형식 재판관은 일부 변호인의 증인에 대한 압박과 무리수를 꾸짖으며 재판을 칼같이 진행한 것이 백미(白眉)였다. 헌재 심리 개시 전 “윤 대통령이 추천·지명한 재판관이라서 가장 보수적일 것”이라는 언론과 정치권의 예측과 우려가 들어맞을지는 곧 드러나게 될 것이다. 다수 국민이 느끼는 상식과 팩트, 법 감정이 재판관들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재임 중 한 번도 그 같은 공손함을 본 적이 없었기에 대통령의 공손함이 눈에 들어왔다. “두 시간짜리 내란이 어디 있느냐”며 내란이 아니라고 역설했지만, 자신도 집무실에서 봤다는 계엄 당일 밤 TV 중계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어디 있나. 무슨 증거가 더 필요한가. 본인 자신이 가장 확실한 탄핵의 증거이자 사유인데…. 증거가 명백해 파면이 당연해 보이지만, 그래서 재판 기간이 길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절차를 통해 공식성을 확보하는 게 민주주의고 근대국가의 공적 법 체계다.
 
대통령은 갑자기 왜 그렇게 공손해졌을까
 
헌재 법정에서 대통령은 깍듯했는데, 그가 깍듯했어야 할 대상은 국민이었다. 어리석기 짝이 없다. 아무리 깍듯해도, 책임 떠넘기려 발버둥쳐도, 온 국민이 TV로 다 봤는데 설마 아직도 탄핵안이 기각되리라는 생각을 0.001%라도 갖고 있을까. 그렇다면, 대통령은 물론 법조인 자격도 미달이다. 아무리 현실인식이 형편없더라도 그건 아닐 것이다.
 
헌재 법정의 최고 장면으로는 수방사 1경비단장 조성현 대령의 증언을 꼽고 싶다. 계엄 그날 밤 국회에 투입된 조 대령은 “의사당에서 의원들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고, 사령관에게 재고를 요청했다”고 똑부러지게 증언했다. 당일 상황에 대해 엇갈리는 주장이 난무하는 것에 확실하게 가르마를 탔다. 그 조 대령도 내란범 처벌 대상일지 모르지만, 곧은 생각을 가진 군인이 평생 반란군 딱지를 붙이고 살아가야 한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진상과 경중을 가려 구명되기 바란다. 대통령은 국민과 조 대령 같은 군인에게 반드시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뉘우쳐야 한다. 법정에서 그는 대령만도 못한 대통령이었다. 여러 소리 할 것 없다. 행위에 대해 책임지고, 헌재 결정에 승복하면 된다. 그는 법적·정치적 책임을 지겠다고 이미 밝힌 바 있다. 그대로 하면 된다.
 
‘현대 민주주의 수립사’는 한국에 와서 공부하라
 
곧 탄핵안이 결정될 것이고, 이렇게 우리 현대사는 장구한 역사의 한 고비를 또 넘는다. 이 국난 저 국난, 별별 사태들. 목숨 던진 희생과 시위로, 온갖 고문에도 굴하지 않는 신념으로, 광주를 비롯 전국 각지 아주머니 할머니들의 주먹밥으로, 넥타이부대 함성으로, 밭 갈던 트랙터로, 기상천외한 깃발로, 촛불로, 응원봉으로, 국내·외 선결제 밀물로, 은박 비닐로 다 이겨낸다. 독재와 권위주의, 국민주권 침탈, 비민주적 악습을 이겨낸다. 강인한 국민이다. 이렇게 역사는 쓰인다. 근대 정치학 교과서는 서양에서 쓰였지만, '현대 민주주의 수립사'는 한국에 와서 공부하는 게 나을 듯하다.
 
이강윤 정치평론가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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