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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토마토 김규리 기자]
삼성전자(005930)가 지난해 원-달러 환율 상승에도 불구하고 외환 파생상품 거래에서 순이익을 달성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해 국내 수출기업 대부분은 급격한 환율 상승을 예상하지 못하고 통상적인 수준에서 통화선도 계약을 맺었다가 실제 환율이 계약 환율을 크게 웃돌면서 대규모 평가 손실을 입었다. 반면 삼성전자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한 유연한 헷지 전략으로 리스크 관리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평가다. 다만 증가한 계약 건수와 복잡해진 운용 구조는 향후 관리해야 할 과제로 지목된다.
(사진=연합뉴스)
5000건 넘는 외환 파생상품 통화선도 계약…전년대비 2배 이상 폭증
2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통화선도 계약에서 평가 순이익 2116억원(이익 9116억원, 손실 7000억원)을 기록했다. 삼성전자가 통화선도 거래에서 평가 순이익을 기록한 것은 2020년 이후 4년 만이다.
통화선도 거래란 정해진 환율에 따라 미래 시점에 외화를 매매하는 계약이다. 통상적으로 환율 변동성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한 가장 보편적인 파생상품으로 기업이 외환 리스크를 분산하는 데 효과적인 수단으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2000여건 수준에 머물던 통화선도 계약을 2배 이상 확대하면서 환헷지에 성공한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통화선도 계약은 총 5862건으로 전년대비 112.6% 증가했다. 과거 5개년 평균과 비교해도 역대 최고 수준이다. 이로 인해 환율이 폭등하더라도 손실을 최소화하거나 오히려 이익을 낼 수 있는 포지션을 구축했다는 평가다.
특히 2023년 1조원에 달했던 손실 규모를 지난해 7000억원으로 줄이면서 손실률을 30%가량 줄였다. 단일통화 최대 노출도 미국 달러(USD), 유로화(EUR)를 포함해 기존 35건에서 32건으로 축소하는 등 ‘선택과 집중’ 전략이 통했다는 분석이다.
이는 지난해 국내 상장사들이 대부분 손실을 기록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지난해 4분기 갑작스러운 환율 급등 여파로 인해
LS(006260)(2216억원 손실),
HD현대일렉트릭(267260)(392억원 손실),
LIG넥스원(079550)(703억원 손실) 등 이날 기준 상장사 31곳(코스피 8곳·코스닥 23곳)이 올해 통화선도거래에 따른 파생상품거래손실을 공시했다. 특히 같은 삼성그룹 계열사인 삼성중공업의 경우 자기자본 대비 18.32%에 해당하는 -7439억원 평가손실을 기록해 이들 중 가장 많은 규모를 공시했다.
이들의 성패가 갈린 것은 계약 당시 설정한 약정 환율 수준에서 비롯된다. 대부분 국내 기업들이 금융기관과의 계약에서 원-달러 환율이 1200원대 이하로 설정된 매도 계약을 체결했던 것과 달리, 삼성전자는 해외 법인을 중심으로 국가별 시장 상황에 맞춰 폭넓은 환율 구간과 다양한 통화로 계약을 체결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시장 변동성 확대에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었던 셈이다.
다만 파생상품 거래 손익은 장부상 기록되는 것으로, 실제 현금 흐름이나 재무구조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평가손익은 계약 만기 시점에 실제 손실로 확정될 경우 영업 외 비용으로 반영되어 순이익을 감소시킬 수 있는 만큼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삼성전자는 사업보고서를 통해 “통화별 자산과 부채규모를 일치하는 수준으로 유지하여 환율변동 영향을 최소화하는데 주력하고 있다”면서 “현지 해외법인을 중심으로 국가별 시장상황에 맞게 상품 계약을 조절한 것으로 확인된다"라고 설명했다.
복잡해진 운용 구조와 유동성 관리도 지켜봐야
업계 일각에서는 삼성전자의 통화선도 계약 급증이 관리 복잡성과 유동성 리스크 측면에서 완전히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5000건이 넘는 방대한 계약을 관리하는 것은 운용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고, 글로벌 금융 환경의 변동성이 확대될 경우 추가적인 유동성 확보가 필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도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통화선도 계약이 많았다는 것은 그만큼 외환거래가 많았다는 이야기로 이번에 삼성전자는 환율 변동성 위기 속에서 방향성을 잘 잡은 것"이라면서 "파생상품 손익이 당장 장부상 손익으로 반영되지는 않지만, 환헷지 효과 측면에서는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정 교수는 "통화선도 계약으로 얻은 이익이 영속적이지 않고, 특정 시점의 환율 환경에 의해 일시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면서 "환율이 반대로 움직이면 미래에 손실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어 지속적인 평가가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김규리 기자 kkr@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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