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험은 개인과 가족의 경제적 안전망 역할을 한다. 예상치 못한 사고로부터 재정적 손실을 보상하고 공적 복지제도를 보완한다. 갈수록 종류도 다양해지고 시장도 커지는 추세다. 사람마다 매달 보험료로 적게는 몇천원에서 많게는 백만원 이상을 지불한다.
그런데 보험 상품의 구매 과정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특히 보험료에 포함된 판매 수수료에 대한 정보는 공개되지 않는다. 그래서 소비자들은 보험료가 합리적으로 책정되는지 알 길이 없다.
최근 설계사가 보험 판매 시 수수료를 공개토록 추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수수료는 보험료의 주요 구성 요소 중 하나다. 수수료 수준에 따라 보험료가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한다. 실제 과도한 수수료 지급으로 인한 보험료 인상분이 작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손해보험사들이 작년 법인보험대리점(GA)에 지급한 판매 수수료만 5조원에 달한다. 이른바 ‘1200% 룰’이 생긴 것만 봐도 보험료에서 수수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함을 알 수 있다. 1200% 룰은 설계사에게 지급되는 초년도 수수료가 월 보험료의 12배를 넘지 못하게 하는 제도다.
이런 상황에서 보험 판매 수수료 공개는 보험료 상승을 억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보험 보장과 관계없는 비용으로 인식되는 수수료가 비싸면 시장의 외면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다. 요즘 소비가 늘어난 배달 음식만 봐도 그렇다. 같은 메뉴라면 배달비가 없거나 적은 플랫폼을 선택하는 게 보통이다. 배달비가 싸다고 해서 음식이 달라지진 않으니까.
보험 판매 수수료 공개 제도는 해외에서도 이미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호주는 보험 상품 판매 시 고객에게 수수료 정보를 공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투자연계보험 등 일부 상품에는 아예 수수료 수취를 금지했다. 독일도 소비자 권리 보호와 시장의 공정성 차원에서 수수료 공개를 법제화했다. 미국은 연방 차원의 수수료 공개 의무는 없지만, 뉴욕과 캘리포니아 등 주 차원에서 수수료 정보 제공을 강제한다.
영국은 아예 보험사로부터 판매 수수료를 받지 못하게 하고, 대신 고객에게 자문료를 청구할 수 있게 했다. 자문료는 많지 않고 선택의 영역이기 때문에 합리적 소비가 가능하다. 싱가포르도 영국과 비슷한 제도를 운용 중이다. 고객의 니즈에 따라 수수료를 내다 보니 국내 GA처럼 ‘답정너’ 선택을 강요받지도 않는다.
물론 국내 보험 판매 수수료 공개의 성공적 시행에 도전 과제가 없는 건 아니다. 당장 GA에선 설계사 수입이 줄어든다며 반발하고 있다. 수수료가 싼 상품은 소비자를 상대로 권유 대상에서 제외하는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다. 이는 보험 상품 품질 저하로 이어진다.
따라서 금융당국의 세심한 정책 설계와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센티브를 통해 수수료 인하 경쟁을 촉진하는 대신 고지 사항은 강화해 부실 판매를 막아야 한다. 동시에 소비자 교육 확대로 올바른 상품 선택을 돕는다면 수수료 공개 제도의 부작용은 상당 부분 덜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김의중 금융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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