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 관세협상에서 한덕수가 해야 할 일
(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트럼프가 대일 협상 시작도 전에 "큰 진전" 말한 까닭은
2025-04-17 15:46:29 2025-04-21 14:21:58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사진=뉴시스)
 
"빠른 시일 내 협상단 방미 추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 세계 관세전쟁에 대응하기 위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지난 14일 '경제안보전략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주재한 뒤 총리실이 낸 보도자료 제목이다. 민간이 아닌 정부부처가 제목에 느낌표를 붙여 보도자료를 낸 건 이례적이다. 한 권한대행은 이 회의에서 "양국 간 협상을 위해 산업부 장관을 중심으로 협상단을 구성하고 빠른 시일 내에 방미를 추진하여 본격적인 협상에 착수하겠다"고 협상 기조를 밝혔다. 그는 지난 8일 <CNN>과 한 인터뷰에서 '한국이 일본, 중국 등과 연합해 미국 관세에 맞설 가능성이 있냐'는 질문에 "우리는 그 길을 가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두 달짜리 권한대행이 이 중대한 문제에 정부 차원의 대응 기조를 정한 것이다. 설령 이 방향이 맞다 해도 이건 새로운 대통령이 결정해야 할 사안이다.
 
미 "가장 먼저 협상 타결이 최고 합의" 재촉
 
정부 TF와 비슷한 시각, 트럼프 행정부에서 관세 협상을 이끄는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다음 주에 한국과 협상이 진행될 것이라고 예고하면서 "보통 가장 먼저 협상을 타결하는 사람이 최고의 합의를 하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각 나라가 뭘 들고 왔는지 보고 협상을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90일간의 상호관세 유예 기간 동안 한국, 일본, 영국, 호주, 인도 5개국을 최우선 협상 대상으로 설정했는데, 인도를 제외하면 대표적 동맹국들이다. 특히 이번 주 가장 먼저 협상을 시작하는 일본, 그리고 다음 차례인 한국은 독일에 이어 해외 미군 주둔 규모 세계 2∼3위로, 미국에 대한 안보 의존도가 큰 대표적인 국가들이다. '관세전쟁'이 뜻대로 진행되지 않는 상황에서 트럼프가 시범타로 삼을 수 있는 대상이라는 얘기다. "각 나라가 뭘 들고 왔는지 보겠다"는 말로 이런 기대감을 한껏 드러낸 것이다. 
 
대서양에서 미국의 최대 동맹이 영국이라면 일본은 태평양에서 미국의 최대 동맹이다. 그런 일본은 트럼프의 기대를 충족시켜줄 것인가. 현재까지는 그렇지 않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15일 "미국 정부에 상호관세 재검토를 강력히 요구하는 동시에 국내 산업에 영향 최소화를 위해 필요한 지원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했다. '상호관세' 부당성부터 지적하겠다는 얘기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지난 2월 미·일 정상회담에서 주문 제작한 '황금 사무라이 투구'를 트럼프에게 선물하면서 "신이 택한 남자"라는 극강의 아부까지 했던 그로서는 배신감이 클 수밖에 없다. 트럼프의 24% 관세 부과를 '국난'이라고 규정한 그는 "서두르면 일을 망친다"며 "협상이 원활하지 않으면 (관세 조처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대응 지침을 천명했다. 강경 대응도 불사하겠다는 얘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카자와 료세이 일본 경제재생상. (사진=연합뉴스)
 
"서두르면 망친다"…일, WTO 제소도 언급
 
지난 8일 통화에서 트럼프에게 "대선에 출마할 건가"라는 황송한 질문을 받은 탓인지, 대미 협상을 서두르고 있는 한덕수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그래서일까. 트럼프는 16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서 미국과 일본 협상단이 만나자마자, 즉 본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일본 무역 대표단과 막 만나서 큰 영광"이라며 "큰 진전(big progress)"이라고 설레발을 쳤다. 다급한 마음을 드러낸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9일 시행한 상호관세는 애초 경제학적 근거 자체가 부실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2024년 해당국의 대미 무역흑자를 대미 교역액으로 나눠 백분율을 만들고, 임의대로 그 반을 뚝 잘라서 상호관세율을 매겼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상호관세율 산정의 근거로 제시한 논문의 저자, 브렌트 니먼 시카고대 경영대학원(MBA) 교수가 직접 나서 정부가 자신의 연구 결과를 잘못 해석했다고 반박할 정도였다.
 
트럼프의 관세전쟁이 전 세계를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발도 전 세계적이다. 급기야 트럼프는 '90일간 상호관세 유예'(중국 제외)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스마트폰, 노트북 등을 상호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했다가 전자제품 관세 예외는 없고 다른 방식으로 바꾸는 것일 뿐이라고 하더니 다시 자동차 부품 관세 면제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오락가락을 반복하고 있다.
 
결정적 장애물은 역시 중국이다. 미국의 145% 관세 부과에 84% 보복 관세로 맞대응하고 나섰다. 미국이 245%까지 관세율을 올렸으나 관세가 100%를 넘어가면 사실상 무역이 중단된다는 점에서 별 의미가 없다. 트럼프 1기 때 미·중 무역전쟁을 거치면서 어느 정도 현재 상황을 예측해온 중국은 사전 대비를 하면서 대미 의존도를 줄여왔다. 그 결과 미국이 중국 외에는 구할 수 없는 품목이 30%가 넘는 데 비해 그 반대는 10% 정도에 불과하다.
 
그 핵심에 희토류가 있다.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생산의 약 70%, 정제·가공의 90%를 차지한다. 사실상 글로벌 공급망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의 상호관세에 맞서 중국이 4일 수출 통제 조치에 들어간 6개 중희토류(가돌리늄, 테르븀, 디스프로슘, 루테튬, 스칸듐, 이트륨)도 사실상 중국에서만 정제된다. 전기 모터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자석의 핵심 재료로 전투기와 전함, 미사일, 탱크, 레이저에 필수적이다. 미국이 자랑하는 최신예 F-35전투기도 중국의 희토류 없이는 날지 못한다.
 
트럼프가 '관세 90일 유예'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 이유는 미국 국채금리 급등 때문이었다. 2월 현재 중국의 미국 국채 보유량은 7843억달러로 1위 일본(1조1300억달러)에 이어 세계 2위다. 세계적 경제학자로 꼽히는 장하준 교수가 미·중 경제 관계를 '샴쌍둥이'라고 표현하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관세 협상, 새 정부가 하는 게 순리"국내 여론도 통일
 
한덕수 대행 체제가 트럼프 행정부와 관세 협상을 해야 하는 현재의 국제 경제 상황이 이렇다. 다음 주에 워싱턴에서 베선트와 만나야 하는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6일 국회에서 "미국과의 관세 협상은 절대로 서두르지 않겠다며 "최종적인 결정은 새 정부에서 하면 된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흔들리고 있는 데다, 불과 48일 후면 새 정부가 출범한다는 점에서 지극히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대행 체제 약점을 파고들기 위해 안보 문제를 포함해 온갖 압박을 다할 것이 분명한 '매버릭' 트럼프를 한덕수가 견뎌낼 수 있을지 믿음이 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스스로 이 문제를 "마지막 소명"이라 한 것처럼 버텨내야 한다. 
 
"관세 협상 최종 결정은 새 정부가 하는 게 순리"(<조선일보>) "빨라진 관세 협상, 최종 결정은 차기 정부가 내려야"(<한겨레>) 등에서 보듯 이 문제에 대해서는 여론도 모아진 상태다. 실제로 대행 체제라는 것만큼 좋은 명분이 또 있겠나.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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