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투자자문사 허드슨베이 누리집에 실린 ‘미란 보고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관세 부과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가운데, 그 이론적 배경이 된 이른바 '미란 보고서'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원제목 '글로벌 무역 시스템 재구성을 위한 사용자 안내서'(A User’s Guide to Restructuring the Global Trading System)는 스티븐 미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이 투자자문사 전략 담당자로 있던 지난해 11월(현지시간)에 작성했습니다.
중견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IFEA) 교수가 '미란 보고서'(이하 보고서)를 분석한 <트럼프 행정부의 '마러라고 합의' 구상: 영향과 대응>을 지난 15일 이 연구소 누리집에 실었습니다.
그는 "보고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촉발시킨 관세전쟁의 의도와 큰 그림을 파악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며 "이는 관세와 통화 조정 전략을 담은 '마러라고 합의(Mar-a-Lago Accord)' 구상으로 트럼프의 공약인 미국 제조업 부활과 무역 적자 감소와 밀접히 연관돼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미란 보고서 "관세, 제2 플라자 '마러라고 합의' 위한 협상카드"
'마러라고 합의'는 1985년에 미국, 서독, 프랑스, 영국, 일본 5개국 정상이 미국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달러 가치 평가 절하에 합의한 '플라자 합의'를, 트럼프 대통령의 플로리다 '마라라고' 별장에 붙여서 만든 표현인데요. △미국의 안보 우산(security zones)은 공공재(public good)이므로 그 우산 아래 있는 국가들은 미국 국채를 구매해야 함 △미국의 안보 우산은 자본재(capital good)로, 단기가 아닌 100년 만기 장기 채권(century bonds)으로 투자해야 함 △안보 우산에는 국채 구매 조건을 충족하지 않으면 관세 부과 대상이 될 것(tariffs will keep you out)이라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임 교수가 '마라라고 합의' 구상을 "달러 가치를 낮추기 위해 동맹국이 미국 국채를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방안도 포함하고 있다"고 한 이유입니다. 실제로 미란은 보고서에 "관세는 제2의 플라자 합의인 '마러라고 합의'를 위한 협상카드"라고 적시했습니다.
보고서의 궁극적 목표에 대해서는 "미국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면서 달러 가치를 떨어뜨려 미국의 재정적자 규모를 줄이고 미국 부채를 지속 가능한 구조로 바꾸는 것"이라고 분석했는데요. 보고서가 "달러 과대평가는 미국 수출품을 비싸게 만들고 수입품을 싸게 만들어 이들 제품들이 유입되는 바람에 미국 내 제조업 일자리 감소와 지역 경제 붕괴를 초래했다"며 "미국 달러의 지속적인 과대평가로 인해 제조업 경쟁력이 약화되고, 이는 미국의 국가 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는 겁니다.
임 교수는 또 "관세에 대한 보복을 막기 위해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 등에 방어 우산의 신뢰성을 조건으로 제시한다. 예를 들어, 유럽이 보복관세를 부과하면 NATO 방어 의무를 약화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이라며 "이는 유럽이 자체 방어 역량을 강화하게 유도하며, 미국이 중국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고 본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보고서는 안보 효과로서 중국과 같은 국가가 고율의 관세로 인해 자본 유출과 경제적 불안정에 직면하면, 미국은 안보 측면에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유럽연합(EU) 중국은 올해는 EU 본부가 있는 브뤼셀에서 해야 하는 개최 순서 관례를 깨고 오는 7월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하기로 했습니다.
임 교수는 이와 함께 "트럼프 행정부는 친구와 적을 명확하게 구분한다.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에 있는 내부 국가(친구)들은 유리한 무역 조건(관세 혜택)을 누리고, 외부 국가(적)는 높은 관세 등 불이익을 받게 된다"며 "중국이 대표적인 적대국으로 예시돼 있다. 이는 미·중 간 관세전쟁은 예고된 시나리오라는 점을 시사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주된 관심은 역시 한·미 관계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임 교수는 "(보고서의) 특히 '차등 관세'와 '보복 방지' 방안은 관세율을 안보 협력 수준에 따라 조정하고, 협력 거부 시 방어 지원 철수를 위협하는 방식을 구체화하고 있다"며 "한국에 적용된 관세와 방위비(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동시에 언급되는 점은 이 전략이 현실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관세 협상을 한 아카자와 료세이 일본 경제재생상. 트럼프 대통령 트루스소셜 계정.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와 통화하면서 "'원스톱 쇼핑'은 아름답고 효율적인 과정이라면서 관세와 방위비 문제,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개발사업, 조선 분야 협력 등 여러 사안을 묶어 일괄 타결하자고 요구했습니다. 또 지난 16일 일본과 한 장관급 관세 협상에 격을 깨고 직접 등장해 관세 문제는 물론이고 주일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과 군사 지원 비용까지 언급했습니다.
마러라고 합의' 대안은…안보 자율성-억지력 동시 확보'
임 교수는 이에 대해 "트럼프는 관세 유지 또는 추가 인상을 위협하며 한국이 방위비를 늘리지 않으면 주한미군의 역할 축소나 철수를 암시할 수도 있다"고 전망하면서 "이는 한국의 대북 억지력 의존도를 고려한 압박 전술로, 경제적 손실(관세)과 안보 불안(미군 감축)을 동시에 자극하는 방식"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러면서 "트럼프 행정부는 주한미군의 역할을 북한 억지에서 중국 견제로 재조정하려는 의도를 보여주고 있다"며 "이는 주한미군을 대만 방어 등 인도·태평양 전략에 활용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지난달 30일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 장관이 중국 견제를 미군의 최대 목표로 세우고 다른 국가들의 위협은 해당 지역에 있는 미국의 동맹들이 국방비 증액 등을 통해 자체적으로 대응하도록 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9쪽짜리 '임시 국가 방위 전략 지침'을 국방부 내부에 배포했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임 교수는 "'마러라고 합의' 구상은 단순한 관세정책이 아니라, 글로벌 무역 질서 재편, 글로벌 패권 유지, 안보 재구조화가 결합된 거대한 전략 전환으로 보인다"며 그 대안으로 "한국의 안보 자율성과 억지력을 동시에 확보하는 '이중 억지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다. '국가 전략의 전면적 구조조정'이 절실히 필요해 보인다"고 강조했습니다.
황방열 선임기자 hb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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