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 염료를 사용하여 염색한 다음 촬영한 ‘좀비 세포’의 모습. 파란색은 세포핵. (사진=존스홉킨스대학)
[뉴스토마토 서경주 객원기자] 우리 피부는 표피를 구성하는 각질세포(keratinocyte)와 그 아래 진피층을 형성하는 섬유아세포(fibroblast)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질세포는 생성되고 약 4주(28일) 뒤에 수명을 다하고 우리가 흔히 비듬이라고 부르는 각질로 떨어져 나갑니다. 진피층의 섬유아세포는 콜라겐과 엘라스틴 같은 단백질을 만들어 피부의 탄력과 회복력을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 섬유아세포는 수년 동안 기능을 하지만 반복적인 스트레스나 손상에 노출될 경우, 기능을 잃고 '노화 세포(senescent cell)'로 변해 좀비처럼 사멸하지 않고 살아남게 됩니다.
이러한 ‘좀비 세포’들이 피부에 존재하며, 그들은 때때로 염증을 일으키고 신체의 노화를 가속화하는 한편, 다른 경우에는 상처 치유를 돕는 등 이중적인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주드 필립(Jude Phillip) 교수 연구팀은 최근 이 '좀비 세포'들의 양면성에 대한 단서를 발견했습니다. 연구팀은 노화 세포가 모두 똑같지 않으며 모양, 생물지표(biomarker), 기능이 각각 다른 세 가지 하위 유형으로 나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 연구 결과는 향후 해로운 노화 세포만을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정밀 치료의 가능성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번 연구 결과는 25일 <사이언스 어드밴스>(Science Advances) 저널에 발표되었습니다.
노화는 같아도 길은 달라
“우리는 노화된 피부 세포가 노화된 면역 세포나 근육 세포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같은 유형 내에서는 노화 세포가 모두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피부 세포라면 그저 ‘노화됐거나, 그렇지 않거나’로만 구분되었지요”라고 연구를 이끈 주드 필립 교수는 설명했습니다. 그는 이어 “이제 우리는 피부 세포가 노화 상태, 즉 좀비처럼 변할 때 세 가지 서로 다른 경로 중 하나를 따라가며, 각각 조금씩 다른 하위 유형으로 분화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연구팀은 이를 밝혀내기 위해 단일 세포 수준에서 피부 세포를 분석했습니다. 연구에 사용된 샘플은 20세에서 90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건강한 기증자 50명으로부터 얻었으며, 이들은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지원하는 ‘볼티모어 노화 종단 연구(Baltimore Longitudinal Study of Aging)’에 참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연구팀은 기증자의 피부에서 섬유아세포를 추출했습니다. 이 섬유아세포에 인위적으로 DNA 손상을 가해 노화를 유도했는데, 이는 실제 인체에서도 나이가 들수록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과정입니다. 이렇게 실험실에서 얻어진 샘플은 건강한 섬유아세포와 노화된 섬유아세포가 섞인 상태를 재현한 것입니다.
노화 세포 유형에 따라 약물 반응도 달라져
연구팀은 이 세포들을 특수 염료를 사용해 촬영하고, 노화 세포를 나타내는 특정 생물지표를 확인한 뒤, 새롭게 개발된 알고리즘을 사용해 세포의 물리적 특성을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섬유아세포는 11가지 서로 다른 형태와 크기로 구분되었으며, 이 중 세 가지 하위 유형(C7, C10, C11)이 노화된 피부 세포에 특징적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C10 하위 유형이 고령 기증자에서 더 많이 발견되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결과입니다.
연구팀은 각 하위 유형을 실험실에서 배양한 뒤, 노화 세포를 제거하기 위해 개발된 약물에 노출시켜 반응을 관찰했습니다. 그 결과, 유형에 따라 치료제에 대한 반응성이 달랐습니다. 예를 들어, 현재 암 치료제로 임상실험이 진행 중인 다사티닙(Dasatinib)과 퀘세틴(Quercetin) 조합은 C7 하위 유형의 노화 섬유아세포를 가장 효과적으로 제거했으나, C10 하위 유형에서는 효과가 미미했습니다. 이는 약물이 노화 세포를 무작위로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하위 유형을 표적으로 삼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결과입니다.
암 치료에 응용 가능성
노화 세포에 대한 정밀 표적화는 암 치료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일부 연구자들은 암세포를 노화 상태로 전환해 종양의 성장을 멈추게 하려는 치료법을 개발 중입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남겨진 노화 세포들이 새로운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또한 기존 화학요법도 약물 부작용으로 섬유아세포를 노화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화학요법 후 환자 몸에 쌓인 노화 세포들은 면역 체계가 약해진 상황에서 염증을 유발할 위험이 높습니다.
이때 환자들은 ‘좀비 세포 빗자루(zombie cell broom)’처럼 작용하는 약물, 즉 해로운 노화 세포만 정밀하게 쓸어내고 유익한 세포는 남겨두는 약물로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연구팀은 앞으로 실험실을 넘어 실제 조직 샘플에서도 노화 하위 유형을 분석하고, 이들이 피부 질환이나 연령 관련 질병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밝힐 계획입니다. 주드 필립 교수는 “개발이 좀 더 진행된다면, 우리는 특정 질병을 일으키는 노화 세포를 제거하는 데 어떤 약물이 가장 효과적일지 예측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상 세포가 스트레스와 손상 등으로 노화 세포로 바뀌고 그 과정에서 염증을 유발하는 분자들을 분비하는 모습을 그린 이미지. (이미지=미국 NIH)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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