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덕훈 기자] 국내 상장사의 사외이사가 교수·전직 관료 등 특정 직군에 집중돼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경영·산업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상의회관. (사진=대한상공회의소)
대한상공회의소가 7일 발표한 ‘사외이사 활동 현황 및 제도 개선과제’를 보면 지난해 기준 국내 상장기업 사외이사 직군은 학계 36%, 공공부문 14%로 교수·전직 관료가 절반에 달합니다. 경영인 출신은 15%에 불과했습니다.
반면 미국 S&P 500과 일본 닛케이225 기업은 경영인이 각각 72%, 52%로 절반을 웃돌았고 학계는 각각 8%, 12%에 그쳤습니다.
상의는 국내 상장사의 사외이사가 교수·전직 관료 등 특정 직군에 집중된 배경에 한국에만 있는 공정거래법상 계열 편입 규제가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공정거래법상 계열 편입 규제는 사외이사의 개인회사는 대기업집단의 계열사로 원칙적으로 자동 편입되는 제도입니다.
상의는 “그동안 기업 현장에서는 공정거래법 규제 때문에 사외이사 선임을 거절하는 일이 적지 않아 경영·산업 전문가 선임에 어려움이 크다는 호소가 많았다”고 지적했습니다.
관련해 상의는 미국 애플사와 국내 대표 기업의 사외이사 직군을 비교했습니다. 애플의 경우 사외이사 7명은 모두 전·현직 CEO로 구성된 반면, 국내 대표 기업은 사외이사 6명 중 교수 3명, 전직 관료 2명, 금융·회계 분야 1명으로 경영인 출신은 부족했습니다.
상의는 “외국에는 공정거래법상 계열 편입 규제가 없어 다른 기업을 운영하거나 별도 창업 계획이 있는 경영인 출신 비중이 매우 높은 편”이라며 “경영·산업에 대한 전문성이 없는 경우 이사회 안건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만큼 전문성 부족은 사외이사의 독립성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습니다.
상의는 또 ‘사외이사=거수기’라는 비판에 대해 통계적 착시라는 반박 의견도 제시했습니다. 상의가 한국거래소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510개 상장기업 사외이사 2341명의 활동을 분석한 결과 지난 2021~2023년 이사회 참석률은 평균 95.8%로, 안건 찬성률은 99.1%에 달했습니다.
상의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사외이사 84.4%는 이사회 안건에 대해 사전 의견수렴·토론 등 사전 의견 반영 과정을 거친다고 답했고, 55.6%는 안건에 찬성한 경우에도 우려 사항이나 부작용 등을 고려해 조건부 의견을 개진한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상의는 “통계에는 실제 구체적인 이사회 운영 과정이 담기지 않는 ‘통계적 착시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 만큼 형식적인 통계 해석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로까지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과 관련해서는 사외이사 61.9%가 ‘상법 개정 대신 연성규범·자율규범으로 규율하거나 자본시장법 개정 등 핀셋 접근법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상법 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21.9%, ‘관세전쟁, 경기침체 등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으로 기업 경영에 부담이 큰 만큼 시기상 추진을 유보해야 한다’는 의견은 14.4%로 조사됐습니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미국·일본 등 주요국에 비해 한국은 사외이사의 전문성보다 독립성만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며 “최근 글로벌 시장의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미래 산업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인 만큼 사외이사의 역할을 단순한 감시자를 넘어 전략적 의사결정 파트너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배덕훈 기자 paladin7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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