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명신 기자] 호황기를 이어가는 K-방산(방위산업)이 ‘국가전략산업’의 위상을 갖추게 되면서, 대선 후보들의 관련 공약도 잇따라 발표되고 있습니다. 수주잔고 100조원을 노리는 K-방산은 가성비, 빠른 납기를 강점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각광받고 있습니다. 여야 후보들이 K-방산 수출 확대에 한 목소리를 내는 이유입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정부주도형 육성 정책을 제시했고,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국가안보 차원에서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방산 공약을 제시하지 않은 채 국제 방산 개발 프로젝트 확대를 내세웠습니다. 전문가들은 방산 육성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은 환영하면서도, 모두 선언적 차원에 그치는 등 구체성은 떨어진다는 총평을 내놓고 있습니다.
21대 대선 핵심 후보들의 방산 분야 공약. (그래픽=뉴스토마토).
이재명 "수출 컨트롤타워 신설"
<뉴스토마토>가 21대 대선후보들의 방산 관련 공약을 점검한 결과, 공약 대부분이 △국방인공지능(AI) 등 무인무기체계 구축 △무기체계 연구개발(R&D) 확대 △해외 수출 협력 강화 등과 같은 방산업계의 핵심 이슈들을 요약한 수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가령 국방AI 구축을 위해선 첨단 기술의 방산 분야 진출과 함께 데이터 확보가 관건인데, 기술 접근성을 강화하는 세부적인 지원 방안 등은 빠져있다는 것입니다.
각 후보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10대 공약집을 보면, 방위산업을 바라보는 접근 방식에서 각 후보별 차이가 드러납니다. 먼저 이재명 후보는 ‘정부주도형’ 모델을 중심에 두고 △K-방산 수출 증대를 위한 컨트롤타워 신설 △방위사업청 역량 강화 △국방 AI 등 R&D 분야에 대한 국가 투자 확대 등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을 내놔 후보들 가운데 가장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담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 후보는 지난달 페이스북에 “(방산은) 우리 경제의 저성장 위기를 돌파할 신성장 동력이자 국차”라고 규정하며 “K-방산을 국가산업의 최전선으로 이끌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김문수 후보는 ‘국가안보’ 차원에서 방산 지원 공약을 내놨습니다. ‘방산 4대 강국’ 달성을 위한 법적·제도적·금융적 지원을 확대하고, ‘10대 국방첨단기술’을 선정해 집중 육성으로 선진 강군을 구현한다는 방침입니다. 이외에도 AI 기반 유·무인 복합전투체계를 도입해 병력자원 부족 문제 해결, 핵추진 잠수함 개발 등을 공언했습니다. 김 후보는 지난 14일 경남 사천 우주항공청을 찾아 “우주항공 부문은 K-방산 중에서도 반드시 구축돼야 할 미래 방향”이라며 신산업 육성 의지도 내비쳤습니다. 방산 지원을 통한 안보 강화에 방점이 찍혀있다는 점에서 이 후보의 공약과 차이를 보입니다.
지난 20일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가 각각 경기 고양과 서울, 광주 등에서 유세를 벌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문수 "핵추진 잠수함 개발"
이준석 후보는 10대 공약집에서 구체적인 방산 공약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지난달 외신기자클럽 기자간담회에서 “방위산업의 선진화를 통해 대한민국의 효율적이고 정밀한 무기체계가 세계 평화와 안정을 촉진하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방산 수출 및 국제 공동 개발 프로젝트를 확대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준석 후보의 방산 공약은 다음주 나올 공약집에 수록될 것으로 보입니다. 개혁신당 정책본부 관계자는 “다음 주 초쯤에 외교·안보와 방산 분야를 합쳐 공약을 낼 계획”이라고 전했습니다.
21대 대선 후보들의 방산 공약은 과거와는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과거에는 방산 비리 등에 영향을 받은 부정적 인식이 적지 않아 방위산업이 적극적인 육성 대상이 되기 어려웠습니다. 실제로 19대 대선 당시 후보들은 대부분 ‘국방비리 척결’에 초점을 맞춘 공약을 내세웠습니다. 문재인 후보는 방산비리를 ‘4대 안보 적폐’로 규정했고, 홍준표 후보는 무기중개상의 부품값 부풀리기 등 내부 비리를 강력 처벌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안철수 후보는 ‘국방청렴법’ 제정을 통해 비리를 제도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반면 이번 대선에선 방산을 수출 산업이자 신성장동력으로 보는 인식 전환이 뚜렷해졌습니다. 이같은 흐름에 업계는 정책적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여야 후보들이 모두 방산 지원 정책을 내세운 것은 환영할 일”이라며 “방위산업은 국내 산업 생태계 전반에 긍정적 영향을 줄 뿐 아니라, 무기 수출은 국제 외교의 전략적 수단으로도 활용될 수 있는 만큼, 업계도 정부와 긴밀히 협력해 경쟁력 확보에 나서야 한다”고 했습니다.
지난 20일부터 24일까지 말레이시아 랑카위에서 열린 ‘랑카위 국제 해양 및 항공 전시회(LIMA2025)’에서 강구영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장이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에게 전시물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KAI).
후보간 공약 차이 크지 않아
다만 전문가들은 세부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방산 공약이 피상적인 수준에 그칠뿐더러 후보들의 공약도 유사한 지점이 적지 않다는 겁니다. 송방원 건국대 방위사업학과 겸임교수는 “대략적인 언급만 있어 실질적인 평가가 어렵고, AI 개발 등 후보간 공약도 크게 다르지 않다”며 “향후 세부 공약을 통해 이를 보완할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후보들의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선 해결할 과제들이 쌓여있는데, 이행 방안은 언급이 없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대선후보들이 공약으로 내세운 ‘국방AI’의 경우 구체적으로 어떤 무기에 적용하는지, 국방AI를 활용한 무기체계 개발에 국방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각론이 없는 것입니다. 또 기술 개발을 위해선 미국의 국방혁신단(DIU)처럼 민간업체가 방산 생태계에 진입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하는데, 구체적인 안이 없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입니다.
장원준 전북대 방위산업융합과정 교수는 “방위산업 4대 강국으로 실질적으로 도약하려면 첨단 기술이 국방 분야에 진입하거나 데이터 제공을 위한 보안 규제 등이 완화돼야 하는데, 이런 내용 없이 국방AI를 개발한다는 것은 사상누각”이라며 “K-방산이 지속가능성을 확보한 국가 주력 산업이 되려면 방산 생태계 조성과 신속 획득 플랫폼 구축, 민간 규제 완화 등 세부적인 내용을 제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명신 기자 si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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