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밸류업 1년, 그리고 대선
2025-05-26 15:20:07 2025-05-26 15:48:24
"우리 주식시장을 사람으로 비유하면요. 열이 나요. 그래서 해열제를 먹였더니 열은 내려가죠. 그런데 약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열이 또 나는 거예요. 사실은 몸속에 암 같은 질병이 있었던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 계속 해열제만 먹으면 병이 나을까요? 암 같은 근본적 병의 원인을 진단하고 제대로 된 처방을 해야 하는 게 맞죠." 
 
최근에 만난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윤석열정부가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증시 부양책으로 추진했던 기업가치 제고 계획(밸류업)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코리아디스카운트는 밸류업(해열제)이라는 단기 처방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체질 개선을 위한 근본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내 증시의 저평가 원인이 △기업 후진적 지배구조 △낮은 주주환원율 등으로 꼽히는데도, 이는 도외시한 변죽만 울리는 처방으로 1~2년을 허비했다고 이 관계자는 아쉬워했다. 
 
이 정부는 지난해 2월 밸류업 정책을 발표하며 기업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는 계획을 공시하게 하고, 주주환원 잘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했다. 1년여가 지난 현재 밸류업 공시 참여 기업은 전체 상장사의 6%에 불과하며 '코리아 밸류업 지수'는 정체되고 있다.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9 정도로 1년 전에 비해 오히려 뒷걸음질쳤다. 
 
민주당은 조기 대선 국면에서 윤석열정부의 증시 밸류업 정책을 '부자 감세'라 비판하며 밸류업을 뛰어넘을 '코리아 부스터 프로젝트'를 제시했다. 코리아 부스터 프로젝트는 △이사회 충실 의무 대상을 전체 주주로 확대 △독립이사 선임 의무화 △감사·이사 분리 선출 확대 △집중투표제 확대 △소액주주 의결권 행사 확대 등을 골자로 한다. 재벌 회장이 대기업 집단의 주인처럼 행세하는 현재의 경영 행태 개혁이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27일 한국거래소는 밸류업 1주년 기념 세미나를 개최한다. 거래소는 밸류업 우수기업 10개사를 선정해 표창하고, 다음 달에는 밸류업 지수 구성 종목에 대한 첫 정기 리밸런싱(재조정)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거래소는 밸류업 시행 이후 자기 주식 취득과 소각과 현금 배당이 늘었으며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지며 주주가치 존중 문화가 정착되고 있다고 자평한다. 그럼에도 전 정부가 추진했던 밸류업은 이미 동력을 잃었다는 평가가 다수다. 
 
공교롭게도 일주일 뒤 대선이다. 현재 여론조사 추이대로라면 국민의힘이 아닌 다른 당의 정권이 들어설 가능성이 높다. 언론에 밸류업과 함께 거론됐던 금융당국 수장들의 이름들은 하나둘 바뀌게 될 것이고 밸류업도 역대 정부의 수많은 정책 중 하나로 남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주주 충실 의무를 도입하는 상법 개정안이 도입돼, 소수 주주의 이익도 기업 의사결정과 이사회에 반영되는 투명한 지배구조가 자리 잡게 될 경우 비로소 '제2의' 밸류업 프로그램은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밸류업 자체를 폄하하고 부정하기보다 이를 재평가하고, 유용하게 꺼내들 날을 기대해본다. 몸속 나쁜 세포 덩어리를 제거하고 치유하는 과정에서 열이 나면 해열제가 필요할 때도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보라 증권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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