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떨어졌는데…은행들, 중기대출 여전히 소극적
2025-06-12 06:00:00 2025-06-12 06:00:00
 
[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주요 은행들이 자본 건전성 관리에 숨통이 트이고 있지만 여전히 중소·기술기업 대출에 소극적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원·달러 환율이 안정 국면에 접어들고 위험 가중치가 떨어지자 대출을 내줄 여력이 생겼는데요. 우량한 대기업 대출을 공격적으로 늘리면서 기업대출 관련 규제 완화를 추가로 요구하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중기대출 증가폭 3년래 최소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지난달 기업대출 중 대기업 대출 잔액은 171조4183억원으로 전달보다 5조740억원(3.4%)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 중기 대출 잔액은 666조7411억원으로 전월보다 1조8064억원(0.2%) 증가하는 데 그쳤습니다. 
 
월 단위로 보면 중기 대출도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시계열을 올해로 넓히면 1~4월 증가 폭은 최근 3년 새 가장 적습니다. 한국은행의 4월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은행의 중기 대출 1~4월 증감액은 11조1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7조8000억원보다 40% 가까이 줄었습니다. 2023년 15조7000억원와 비교해도 증가액이 미미합니다. 
 
5대 은행은 성장 잠재력을 가진 기술기업에 대한 신용 공급도 줄였습니다. 은행연합회 기술금융 종합상황판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기준 5대 은행의 기술신용대출 잔액은 154조7903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지난해 4월 171조7589억원과 비교해 16조9686억원(10%) 줄어든 수치입니다. 국책·지방은행을 포함한 은행권 전체 기술신용대출잔액도 같은 기간 308조2780억원에서 305조955억원으로 줄었습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트럼프 관세정책 불확실성이 여전히 걷히지 않았다"며 "현재 비우호적인 경제 환경에서 기업대출을 늘리려면 재무 여력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중기대출 감소에 대해선 "경영 환경이 악화하면서 사업 확장을 위해 돈을 빌려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는 기업이 줄어든 영향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문제는 은행이 원·달러 환율 안정화로 늘어난 재무 여력을 중기 대출 등에 쓰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올 들어 원·달러 환율은 100원 이상 하락했습니다. 환율 하락은 달러로 표시된 은행의 위험가중자산(RWA)이 줄어드는 효과를 일으키고 보통주자본비율(CET1)을 개선시킵니다. 시중은행들은 CET1 개선 폭이 최대 0.2%p에 달하는데 기업대출을 내줄 여력이 더 생긴 것입니다. 
 
은행들은 원·달러 환율 하락으로 자본 여력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 대출에는 소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은행 대출창구 모습. (사진=뉴시스)
 
추가 규제완화 요구 '눈살'
 
은행들은 그간 고환율 때문에 리스크 관리를 위해 중기 대출을 늘리기 어렵다고 항변해왔습니다. 같은 액수의 대출이라도 기업대출은 가계대출보다 위험 가중치가 높아 CET1을 낮추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은행들이 자본비율 관리에 힘쓰는 다른 이유는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정책 때문입니다. 은행권 금융지주사들은 CET1비율을 높여 총주주환원율을 확대하는 밸류업 계획을 발표한 상태입니다. CET1비율이 악화하면 밸류업 계획에도 차질이 생기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위험가중자산 관리가 가장 중요합니다. 
 
금융당국이 고환율 국면에서 위험 가중치를 조정해줬지만, 은행들이 중기대출을 외면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금융안정·실물경제 지원 역량 강화를 위한 선제적 조치'를 발표하며 자본비율 방어 조치를 마련했습니다. 해외법인 출자금 등 비거래적 성격의 외환 포지션 등 환율 변동에 따른 리스크를 위험가중자산 산출에서 제외토록 한 것입니다. 실제 당국 조치로 금융지주의 자본비율이 0.1~0.2%p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은행들은 올 하반기 도입 예정인 스트레스완충자본 규제 유예 필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은행권이 요구하는 스트레스완충자본은 은행에 위기 상황을 대비한 추가 자본 적립 의무를 부과해 손실 흡수 능력을 강화하는 규제입니다. 위기 상황 분석(스트레스테스트)에 따른 보통주자본비율 하락 수준에 따라 최대 2.5%p의 추가자본 적립 의무를 부과합니다. 
 
은행권은 관세 유예 기간이 생겼지만 안심할 단계는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 유예 기간이 더 짧아질 수도, 길어질 수도 있는 것"이라며 "관세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이 여전한 데다 기본 관세 10% 적용은 바뀌지 않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을 유지하는 것이 더 안 좋을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당국은 지난해 급격하게 환율이 높아지면서 자기자본비율 하락을 우려해 규제 도입을 올해 상반기에서 하반기로 연기한 바 있습니다. 스트레스완충자본 도입으로 CET1 등 자산 건전성 수치를 더 크게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트레스완충자본 도입을 내년 상반기 이후로 미루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다만 은행들이 위험 가중치 규제 완화로 재무 여력을 확보하더라도 중소기업 대출을 적극적으로 늘릴 것인지도 불투명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금융위 관계자는 "아직까지 시행 일정이나 적용 기한 등을 정해두고 논의를 진행 중인 것은 아니다"라며 "관세 유예 기간이 만료되는 만큼 대외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원·달러 환율이 안정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은행들이 중소기업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화와 원화를 정리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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