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민영 기자]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제도화 논의가 본격화했습니다. 사실상의 화폐 역할을 할 수 있게 입법이 추진되면서 금융시장 안정성과 통화정책 유효성에 대한 우려도 함께 제기되고 있습니다.
11일 금융권과 국회 등에 따르면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근거와 감독 체계를 담은 디지털자산기본법이 민병덕 민주당 의원의 대표발의로 전날 국회에 제출됐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은 주로 현금성 자산에 가치를 연동해 발행되는 디지털 자산으로, 법안에서는 일반 암호화폐와 달리 지급·결제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는 근거를 담았습니다. 그런 만큼 대량 환매 사태가 발생할 경우 시장의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시장 충격시 코인런 우려
스테이블코인이 지급 수단으로 자리 잡을 경우 기존 은행 예금의 대체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금융 시스템 내 자금 흐름이 바뀌고 외부 충격 시 대규모 상환 요구로 이어지는 이른바 '코인런' 발생 가능성이 지적됩니다.
최근 미국 등 해외 사례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대규모의 현금성 자산을 국채 등 안전자산에 투자하며 이로 인해 단기국채 수요가 급증하고 단기금리에 영향을 주는 사례가 확인됐습니다. 블룸버그와 로이터는 테더(USDT), USDC 등 주요 발행사가 미국 국채를 대거 편입하면서 단기금리 지표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국내에서도 향후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규모가 확대될 경우 국고채 수급과 자금시장 안정성에 미칠 수 있는 파급력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예치금이 급격히 회수되거나 대량 환매가 발생할 경우 지급준비금이 충분하더라도 환매 지연이나 유동성 경색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각에선 오히려 지급준비금 100% 확보 요건이 있는 만큼, 발행량만큼의 유통 자금이 묶이게 돼 실질적인 유동성 과잉 우려는 제한적이라는 반론도 존재합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가 국채나 현금, 예금채권 등을 확보해 보관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실물경제에 과도한 자금이 공급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설명입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자산 구성, 보관 방식, 환매 절차 등 제도적 기준이 미비할 경우 시스템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보완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많습니다.
한국은행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일종의 '화폐 대체재'로 간주하며 비은행 주도의 발행 구조에 대해 반복적으로 신중론을 제기해왔습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비은행기관이 마음대로 발행하면 통화정책의 유효성이 저해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습니다.
한은은 스테이블코인의 유통이 통화당국의 정책 집행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으며 시스템 외부에서 유통되는 지급수단의 증가는 결과적으로 지급결제 인프라 전반의 안정성을 저해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은은 관련 콘퍼런스를 준비 중이며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거시경제 및 자본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포괄적으로 분석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할 예정입니다.
한은 관계자는 "스테이블코인이 지급수단으로 사용될 경우 평상시엔 문제가 없더라도 외부 충격에 따른 대량 환매가 발생하면 국채시장이나 금융시장 전체의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다만 윤민섭 디지털소비자연구원 박사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려면 지급준비금을 100% 확보해야 하므로 발행된 만큼의 통화량이 늘어나는 구조는 아니다"라며 "코인런에 대비해 예금채권과 현금을 보유하고 일부는 국채로 운용하면 충분히 유동성을 관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결제 시장 흔들 "통제 어려울 것"
이번에 발의된 디지털자산기본법은 자본금 5억원 이상의 국내 법인이 금융위원회의 인가를 받아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발행 요건이 50억원 이상이 될 것이란 예상이 우세했으나, 실제 입법안에서는 자본금 규제가 예상보다 대폭 완화된 셈입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진입장벽은 낮춘 반면 스테이블코인의 실사용 범위는 사실상 지급결제 전반으로 넓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유동성과 금융안정 관리 측면의 공백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특히 카드업계를 비롯한 기존 지급결제 사업자들은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일반 소비자의 결제 수단으로 자리잡을 경우 기존의 밴(VAN)사, 카드사, 금융결제원 등 전통 결제망의 중개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산업 지형 전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카드업계 한 관계자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실질적인 현금 대체 수단으로 자리잡을 경우 카드사가 보유한 결제망이나 수수료 구조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수 있다"며 "결제 흐름을 통제하는 주체가 민간 플랫폼으로 이동하게 되면 산업 생태계 전반의 구조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도 스테이블코인이 지급결제 수단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될 경우 한국은행의 유동성 조절 기능과 통화정책의 실효성이 약화될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강태수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초빙교수는 "스테이블 코인이 결제 효율성은 있지만 통제가 어렵다"며 "중앙은행의 통화·외환정책을 약화시킬 수 있는 불확실성이 크다"고 지적했습니다.
민병덕 민주당 의원(맨 오른쪽)과 디지털자산 관련 참석자들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디지털자산기본법 대표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민영 기자 min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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