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덕훈 기자]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 중심의 글로벌 경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한국의 고급 인재 유출이 심각하다는 분석이 제기됐습니다. 내수 기반을 다지고 경제가 다시 성장하기 위해서 고급 인재 유출을 막고 인재 순환을 촉진하는 정책 마련이 중요하다는 조언이 나옵니다.
지난 4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월드IT쇼에서 관람객들이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가 17일 발표한 ‘한국의 고급인력 해외유출 현상의 경제적 영향과 대응방안’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한국의 인구 1만명당 AI 인재 순유출입 수는 -0.36명으로 OECD 38개국 중 35위의 최하위 수준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룩셈부르크 8.92명, 독일 2.13명, 미국 1.07명 등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 뚜렷하게 대조됩니다.
전문 인력의 순유출도 증가세입니다. SGI가 법무부와 미국 국립 과학재단(NSF), 한인과학기술자네트워크(KOSEN) 등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2019년 국내 전문 인력의 해외 유출은 12만5000명에서 2021년 12만9000명으로 4000명 증가했습니다. 반면, 해외 전문 인력의 국내 유입은 같은 기간 4만7000명에서 4만5000명으로 감소했습니다.
또한 보고서는 과학 학술 연구자의 국경 간 이동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국이 순유출국이라고 지적했습니다. SGI는 “국내 과학자의 해외 이직률(2.85%)이 외국 과학자의 국내 유입률(2.64%)보다 0.21%포인트 높아 전반적인 순유출 상태로, 순위는 조사 대상 43개국 중 33위로 하위권에 해당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차이(-0.21%p)는 독일(0.35%p), 중국(0.24%p), 미국(0%p), 일본(-0.14%p) 등 주요국과 비교하더라도 뒤처진 수준입니다.
보고서는 인재 유출의 원인으로 ‘단기 실적 중심의 평가 체계’, ‘연공서열식 보상 시스템’, ‘부족한 연구 인프라’, ‘국제 협력 기회의 부족’ 등을 지목했습니다. SGI는 “상위 성과자일수록 해외 이주 비중이 높아 ‘유능할수록 떠나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고 짚었습니다.
김천구 대한상의 SGI 연구위원은 “AI, 반도체, 바이오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인재 유출이 심화되며 기업은 인력난과 인건비 부담에 직면하고 있다”며 “대학과 연구기관은 연구 역량 저하로 산·학·연 기반의 기술 혁신 역량이 위축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특히 보고서는 전문 인력의 유출은 유년기를 한국에서 보내고 성인이 돼 외국 납세자가 되는 구조로 결과적으로 한국 납세자들이 선진국의 인적자원 형성에 간접적으로 기여하게 되는 셈이라고 꼬집었습니다. SGI 분석 결과 국내 대졸자의 평생 공교육비는 약 2억1483만원에 이르는데 이들이 해외에서 경제활동을 할 경우 발생하는 세수 손실은 1인당 약 3억4067만원에 달합니다.
보고서는 이러한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고급 인력 유출을 막고 인재 순환을 촉진하기 위한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성과 중심 보상 체계 전환’, ‘연구 행정 부담 완화 및 인프라 혁신’, ‘귀국 인재의 정착 지원’, ‘해외 인재 풀 관리 및 전략적 유치’, ‘국제 네트워크 확대 및 협력 강화’ 등입니다.
보고서는 “정부가 추진하는 ‘AI 세계 3대 강국’ 도약과 ABCDEF(AI, 바이오·헬스케어, 콘텐츠·문화, 방위산업·우주항공, 에너지, 제조업) 분야의 글로벌 기업 육성을 통한 경제 강국 실현을 위해서는 젊은 혁신 인재의 유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단순히 인재 유출을 억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브레인 게인’(Brain Gain) 전략으로 정책 방향을 전환해 인재가 다시 유입되고 순환되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배덕훈 기자 paladin7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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