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가 번쩍 뜨였다. “세상이 바뀌었다”는 발언을 공식적으로 날리다니. 공직사회 전반을 향한 ‘군기 잡기’라고도 해석할 수 있겠지만, ‘특정 공직’에 대한 엄중한 경고로 들렸다.
사실 공무원이 움직이지 않으면 정부는 어떤 뜻도 관철시킬 수 없었다. 이명박정부 출범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파견된 공직자가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는 푸념 섞인 자조로 질타를 받았지만, 뒤집어 보면 공직사회가 ‘쓸데없는 영혼’만 가득 차면 국가가 산으로 간다.
어떻게 보면 새 정부가 잘 토닥여 함께 가야 할 게 공직사회다. 그래서 정권을 인수해야 할 조직은 울화가 치미는 일이 있어도 웬만하면 ‘쓴소리’를 내지 않는 게 관례다.
그런데 국정기획위원회는 지난 22일 공무원들을 향해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일침을 놨다. 원래는 새로운 대통령이 뽑히면 인수위원회를 두 달가량 거친다. 새 정부의 국정 철학을 공유하고, ‘대통령의 의지’에 맞춘 정책을 펼칠 밑거름을 제시한다.
탄핵에 이은 파면으로 급작스럽게 새 대통령이 선출되고, 인수위 기간도 없이 새 정부의 국정 방향에 대한 이해도를 요구하니, 공무원들의 고충도 이해가 간다. 국정기획위원들의 답답함도 이해 못 할 바 아니다. 새 정부의 의지에 맞추려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느낄 법하다.
하지만 국정기획위의 질타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 점은 왜일까. 모든 공직자에 대한 경고도 경고지만, 특정 부처를 향한 ‘선전포고’처럼 와닿았다면 과도한 상상일까.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사진=뉴시스)
국정기획위는 18일 발족한 뒤 각 분과별로 정부 부처에 대한 업무보고를 받았다. 부처별 업무보고 마지막 날인 20일에는 검찰청, 공정거래위원회, 해양수산부, 방송통신위원회를 상대로 실시했다.
눈길이 간 부분은 ‘30분 만에 퇴짜’를 맞은 검찰청이었다. 국정기획위는 검찰의 수사·기소권 분리 등 이재명 대통령의 검찰 개혁 공약에 대한 이행 계획 보고가 부실하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내용과 형식이 모두 부실해 검찰의 업무보고를 중단시켰다는 것이다.
이재명정부는 ‘검찰 해체’ 수준의 고강도 개혁을 예고했다. 수사는 중대범죄수사청 등을 신설해 전담케 하고, 검찰은 기소권만 맡는 공소청으로 분리하겠다는 것이다. 사실상 검찰청 해체 수순이다.
그런데 국정기획위가 검찰의 업무보고를 받아서 보니 거기엔 오히려 검찰의 권한을 확대하는 방향이 담겼다는 것이다. 이에 국정기획위는 검찰을 향해 핵심 내용인 공약 이행 방안, 즉 알맹이를 빼고 보고한 것이라고 한 것이다.
검찰 입장에서는 존폐의 기로에 섰다. 그간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 모두를 갖고 형사사법 분야에서 무소불위로 군림하고 있었다. ‘양날의 검’을 잘 사용했다면 효율적인 체계로 질타 아닌 칭찬을 받았을 터이다. 그러나 정권의 입맛에 맞는 수사와 ‘원님 재판식’이라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수사로 신뢰를 잃은 것도 사실이다.
‘퇴짜’ 맞은 검찰이 2차 업무보고에서 순순히 새 정부의 개혁을 충족하는 방안을 제시할 것 같지는 않다. 검사 줄사표 등 집단 반발로 위세를 과시할지, 개혁의 물줄기에 순응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검찰의 다음 스텝, ‘온 우주’가 주시하고 있다.
오승주 공동체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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