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돌이킬 수 없는 수렁에 빠지느냐, 평화로 가느냐'의 갈림길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던진 '도박수'가 통했습니다. 벙커버스터 등을 활용한 이란 핵시설 타격이라는 최대 도박이 중동 정세의 분수령으로 작동한 건데요. 이스라엘에 대한 대응의 한계를 느낀 이란의 군사적 상황도 휴전의 배경으로 작용했습니다. 다만 중동의 안정을 위해서는 당장의 휴전을 넘어 장기적 관점의 여파를 지켜봐야 한다는 제언이 나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 시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미군의 이란 핵 시설 공습에 관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힘에 의한 평화' 적중…이란 '백기투항'
23일(현지시간) <CNN>은 이스라엘·이란의 휴전 합의와 관련해 "백악관은 이 합의가 이란의 핵시설 3곳에 대한 미국의 공습 덕분에 가능했다고 강조했다"고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12일 동안 진행된 이스라엘·이란 전쟁의 최대 분수령이 이번 대규모 공습에 따른 것이라는 겁니다.
이스라엘과 이란은 중동의 최대 앙숙으로, 전쟁 종식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이란 전쟁의 '직접 개입'이라는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미국 내부에서도 직접 개입에 대한 우려는 컸습니다. 이는 사실상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에서 경험한 안 좋은 기억으로, '대규모 테러'라는 위험이 존재했습니다. 미국의 직접 개입에 따라 중동의 혼란이 가중되면 미국을 겨냥한 테러가 다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핵심 지지층에서조차 미국의 직접 개입을 반대했습니다. 여기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미국이 군사 개입을 한다면 이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초래할 것"이라는 경고까지 내놓은 바 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에 '2주간의 협상 시한'을 부여한 지 이틀 만에 기습 공격에 나섰습니다.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임기 5개월 만에 최대 외교 노림수를 던진 겁니다. 미국의 공격 이후, 이란은 대규모 반격 대신 '약속 대련'과 함께 휴전을 택했습니다.
이란이 대규모 반격에 나서지 않은 건 몇 가지 배경이 있습니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뉴스토마토>와 통화에서 "휴전의 배경에는 이란이 마땅히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는 것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며 "탄도미사일의 재고도 떨어지고 있고, 피해 규모도 이스라엘보다 크게 나타나다보니 이란으로서도 출구 전략을 찾아야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실상 이란이 '백기투항'한 건데요. 이란은 이미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모하마드 바게리 이란군 참모총장과 호세인 살라미 혁명수비대 총사령관 등 군 수뇌부와 주요 핵 과학자 다수를 잃었습니다. 군 수뇌부 전멸과 방공망의 붕괴 그리고 미사일 고갈 등으로 더 이상의 전쟁이 불가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정권 교체'를 언급하며 하메네이에 대한 암살 가능성을 내비친 만큼 체제 전복을 우려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힘에 의한 평화'가 성공한 셈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란은 미국에 사전 통보한 뒤 카타르 내 미 공군 기지를 향한 '체면 살리기용' 미사일 공격에 나섰습니다. 미사일도 14발에 불과했고, 미 공군 기지의 피해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당초 예고했던 보복의 수위보다 낮은 수준의 공격을 진행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협상의 명분을 제공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장기적 평화 '글쎄'…"각자도생의 길 열려"
외교·안보 전문가들과 현지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도박수'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합니다. 인 교수는 이번 휴전 합의가 단순히 핵시설 3곳에 대한 공습만의 성과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공습 전에도 미국과 이란의 대화 채널은 유지되고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장기적 관점에서의 평화 복원이냐는 것에는 의문 부호가 붙습니다. 인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적 성과라는 평가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면서 "이스라엘과도 소통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다. 그렇다면 지난 12일의 전쟁은 왜 싸웠느냐, 외교의 승리라고 볼 수 있을 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AP통신>은 "(중동)지역과 전 세계에 환영할 만한 소식일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중동의 상황은 여전히 불안정하게 남아 있고 장기적으로 어떻게 영향을 받을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 소장은 "트럼프의 빛나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미국에 대한 신뢰도는 오히려 추락했다"고 꼬집었습니다.
김 소장은 "트럼프의 일시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 불안정성으로 인해 서구는 이제 각자도생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중국과 러시아는 전략적 협력을 더 강화하고, 러시아와 이란의 관계도 강화될 텐데 이란이 러시아의 방공망 지원을 추후에 얻게 되면 대이란 작전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짚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란의 핵개발 명분도 더 커질 것이라는 게 김 소장의 설명입니다.
마영삼 전 이스라엘 대사는 <YTN>라디오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주도권이 훨씬 더 강화될 것"이라면서 "미국과 이란 간의 핵 협상이 다시 재개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란으로서는 핵무기 개발하는 것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냐,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며 "이란으로서는 꼭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는, 그 꿈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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