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헤게모니 노리는 금융위…디지털 생태계 활성화 발목
2026-04-08 06:00:00 2026-04-08 06:00:00
[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가상자산업을 둘러싼 제도 정비가 장기간 표류하면서 시장 전반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가상자산업권법인 '디지털자산기본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금융위원회 등 금융당국이 '헤게모니(패권)'를 쥐기 위해 규제 중심 접근 방식을 택하고 있는데요. 이 같은 관료주의적 접근이 디지털 생태계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회와 정부가 논의 중인 디지털자산기본법은 1단계 입법 이후 후속 입법으로 이어질 예정이었지만, 핵심 쟁점에서 의견이 충돌하면서 사실상 논의가 중단된 상태입니다. 여당 중심으로 추진하고 있는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에 금융당국과 통화당국 관료들이 중요한 분기점마다 어깃장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금융위, 제도권 은행 통해 가상자산 규제 혈안
 
디지털자산기본법은 가상자산의 사업자 인가·감독, 거래 행위 등을 담당하는 금융위가 가장 큰 변수로 꼽힙니다. 금융위는 표면적으로는 산업 육성을 강조하면서도 실제 정책 설계에서는 규제 중심 접근을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금융위가 스테이블코인 발행 권한을 '은행 중심(50%+1주) 컨소시엄'에 부여하자고 주장하는 것도 제도권 내 은행을 매개로 시장을 관리할 수 있는 감독 체계를 유지하려는 복안으로 풀이됩니다. 가상자산 시장을 은행을 중심으로 두면 기존 금융 규제 틀 안에서 통제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통화당국인 한은이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반대 의사를 밝히면서 금융위에서도 초기에는 경제팀 내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면 안 된다는 부담이 있었다"며 "한은이 은행 컨소시엄에 발행 권한을 주는 방안을 내놓자 금융위에서도 관련 내용을 수용하는 방안으로 급선회했다"고 전했습니다.
 
금융위가 주장하는 가상자산거래소 지분 제한의 경우 디지털자산기본법 취지에 어긋난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거래소 대주주 지분을 20%로 제한하고 법인의 경우 예외적으로 34%까지 허용하는 내용인데요. 금융위는 지배구조 투명성 강화와 이해 상충 방지 등을 위해서는 거래소 지배구조 규율이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거래소 지분 제한 규제는 디지털자산기본법이 정리되는 막판에 정부 의견으로 추가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주당 관계자는 "금융위가 청와대에서 정리한 입장이라며 거래소 지분 제한을 법 내용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요청했다"고 전했습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대주주 지분 제한에 대해 "대주주 지분율에 일정한 상한을 설정해 주식 보유 자체를 제한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헌법상 재산권 및 기업 활동의 자유 등에 관한 쟁점이 제기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에 국민의힘이 대주주 지분 제한을 반대하고 있어 당정 협의안이 마련돼도 대주주 지분 제한 조항이 유지된다면, 국회 논의는 속도가 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가상자산 업계에서도 거래소 지분 제한에 대해 재산권과 기업 활동의 자유를 침해할 여지가 있고 산업 경쟁력마저 약화시킬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5대 원화 거래소 모두 최대주주 지분율이 30%를 넘기 때문에 법안이 통과될 경우 이들 거래소의 지배구조 변화는 불가피합니다.
 
제도 마련이 지연되고 규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그 여파는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네이버파이낸셜과 두나무의 합병이 기존 계획보다 3개월 가량 연기된 것이 대표적입니다. 당국의 기업결합 심사 지연 탓도 있지만 향후 대주주 지분 제한 규제에 따라 기존 합병 계획을 재검토해야 할 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가상자산업에 포함된 수탁, 결제, 투자 등 다양한 연관 업종들도 법적 기반이 마련되지 않아 사업 심사가 지연되고 있습니다. 가상자산 업계 한 관계자는 "금융감독원이 요청하는 자격 준수에 대해 맞추더라도 금융위나 FIU에서 신규 인가 등이 2년 가까이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일부 기업은 사업 준비를 진행하면서도 제도 방향이 확정되지 않아 의사결정을 미루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카드사 등 기존 금융사들은 가상자산 서비스를 연동한 결제 사업을 준비하고 있지만 정관 개정에도 못 나서는 상황입니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법안 지연으로 정관 개정이나 사업 구조 설계 자체가 어려워지면서 협회차원에서라도 조속한 입법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달라고 요구하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이억원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은, 중앙은행 통제권 유지 급급
 
통화당국인 한국은행 역시 가장자산 관련 제도 마련에 부정적입니다. 한은은 스테이블코인 논의 초기부터 강경하게 반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정무위 한 관계자는 "디지털자산법 제정 관련 TF 회의에 참석한 한은 담당 국장이 법 제정 자체가 잘못됐다는 취지의 의견을 냈다"며 "논의 첫발부터 방향이 맞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한은은 스테이블코인 강경 반대에서 신중론으로 물러나 발행 주체를 은행 중심 컨소시엄으로 제한하는 안을 내놓았습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가 되는 컨소시엄에서 은행이 절반 넘는 지분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차기 한은 총재가 스테이블코인에 강경한 성향을 보일 수 있다는 게 변수입니다. 신현송 한은 총재 후보자는 최근 국제결제은행(BIS) 논문에서 민간 가상자산에 대해 "법정화폐의 안정성을 블록체인의 프로그래밍 기능에 접목하려는 시도"라면서도 "정작 스테이블코인이 올라가 있는 블록체인 자체가 화폐 시스템을 쪼개는 구조"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자동 결제, 투명한 원장 등은 금융 시스템을 개선할 수 있는 혁신이지만, 이를 반드시 탈중앙화 방식으로 구현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글로벌 규제 담론을 주도해 온 신 후보자의 등장으로 이창용 현 총재보다 반대 기조가 더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됩니다. 이 같은 한은 입장은 중앙은행이라는 기관 성격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합니다. 중앙은행은 통화 발행과 유통을 독점하는 중앙집권적 통화 체계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기관입니다.
 
가상자산은 탈중앙화를 전제로 설계된 만큼 민간 중심 발행 구조가 자리 잡을 경우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영향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는데요. 한은이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를 '은행 중심 50+1%' 구조로 제한하려는 것도 통화당국으로서 발행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시도로 해석됩니다.
 
업계 관계자는 "산업 육성보다 관리 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데 정책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결국 발행 주체나 감독 주도권을 누가 쥐려는 것인가 헤게모니 싸움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가 서울 중구 한화금융플라자에 차려진 인사 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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