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한국에서 ‘배운 사람’이란?
2025-06-27 06:00:00 2025-06-27 06:00:00
우리나라에선 ‘배운 사람’이란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예의가 바르거나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는 올바른 행동을 하면 '배운 사람은 다르다'며 칭찬합니다. 반대로 예의를 지키지 않고 남에게 피해를 주면 '배운 사람이 그러면 되느냐'고 지적합니다. 사회 지도층이 부동산 투기를 하거나 부정부패로 적발되면 '배운 사람들이 더하다'는 말로 비난합니다. 
 
외국인에게 이런 표현은 생소하게 들립니다. 한국에선 배운 사람 행동이 특별하냐고 물어봅니다. 맞습니다. 우린 많이 배운 사람은 예의 바르고 도덕적이라 여깁니다. 한국인 사고에 배운 사람은 ‘모범생’이고 ‘모범 시민’이라는 전제가 깔립니다. 
 
배움과 인격을 연결하는 한국적 문화는 유교 전통에 뿌리를 둡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공자가 체계화한 유교는 인간관계에서의 윤리 도덕 기반 ‘예’(禮)를 탐구하는 사상입니다. 유교는 학문 수련을 통해 자신을 갈고닦아 다른 사람을 다스린단 ‘수기치인’(修己治人)을 성취한 도덕군자를 숭상합니다. 평생 배움을 강조한 유교 이념에 따라 제사에 사용하는 ‘지방’(紙榜)에도 고인 직위를 ‘학생’이라 적습니다. 조선시대 500년 역사를 지배한 유교적 가치관은 오늘날에도 깊게 남아 배운 사람이 특별하다 봅니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배운 사람은 대학 졸업자를 말합니다. 과거엔 대학생이 귀했습니다. 학교에서 공부 잘하고 집안 부유한 학생만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1980년대까지 대학 진학률은 10%대에 그쳤습니다. 대학생이면 많이 배운 사람 축에 속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대학이 늘고 인구 감소로 웬만하면 다 대학에 갑니다. 현재 대학 진학률은 80%를 넘습니다. 주변에 대학 안 나온 사람 찾아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그런데 참 희한합니다. 우린 대학 입시 때까지 죽기 살기로 열심히 공부하다 그 이후엔 일절 공부하지 않습니다. 한국인 학습 단절률은 매우 심각합니다. 2000년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세계 2위를 차지했던 1985년생은 그들이 30대 후반이 된 2022년 조사에서 OECD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하위권으로 추락했습니다. 학생 시절 똑똑했지만, 어른이 돼선 학습하지 않아 멍청해진 겁니다. 
 
독서율도 매우 낮아 선진국 중 꼴찌 수준입니다. 한국인 ‘연간 종합 독서율’(종이책, 전자책, 오디오북 포함)은 2013년 72%에서 지속 감소해 2023년 43%까지 하락했습니다. 종이책 기준 2023년 독서율은 32%로 국내 성인 3명 중 2명은 1년에 종이책 1권도 읽지 않습니다. 
 
한국인이 지식을 습득하는 주요 원천은 책보다 신문 방송 인터넷 유튜브 등입니다. 단편적 정보만 주워들을 뿐 깊이 있는 분석이나 체계적 논리를 학습하지 못합니다. 보고 들은 건 많아도 제대로 아는 게 하나 없습니다. 일반적 상식은 풍부하지만 논리적 사고는 빈약합니다. 무식한 놈이 용감하다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 의견만 옳다고 떠듭니다. 대표적 예가 정치 노선에 관한 논쟁입니다. 진보와 보수에 관한 책 한 권 읽지 않고 찬반 토론을 벌입니다. 역사적 배경과 정치적 철학은 전혀 모릅니다. 시사적 사건과 편향적 사례를 들어 일방적 주장만 합니다. 그러다 말싸움에서 밀리면 진영 논리와 인신공격을 무기로 맞대응합니다. 그러니 정치인이건 일반 국민이건 논쟁을 벌이면 서로 딴소리하고 평행선을 달리다 막판에 감정 싸움으로 기분만 상하고 끝납니다. 
 
한국의 정치와 사회를 주름잡는 ‘배운 사람’들은 공부 잘하는 1% 수재만 들어가는 일류 대학교 출신들입니다. 그 중 고시 합격자 자부심은 대단합니다. 마치 조선시대 과거급제 선비격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 대부분이 학교 졸업 후 사회에 나간 다음 학습을 단절합니다. 몇십 년 전 공부 이력만 갖고 평생 우려먹는 사람이 많습니다. 
 
명문 법대 나와 사법고시 합격한 권력자들이 무속인 말만 믿고 국가 대사 그르치는 걸 보면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러니 ‘배운 사람이 왜 저런 바보짓 할까’란 말을 하게 됩니다. 이전에 어느 정치인이 대통령과 국회의원 후보 대상 자격 시험을 보잔 제안을 한 적이 있죠. 학교 졸업 후에도 평생 배운 사람이 많아져야 우리 사회와 정치가 발전할 수 있습니다. 학생으로서만 ‘배웠던 사람’이 아닌 사회인이 돼서도 계속 공부하는 사람에게 배운 사람이란 표현을 사용하는 게 올바를 겁니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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