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국제 지정학 구도의 '변곡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 후 강화된 대중국 견제와, 한·미·일 협력의 반작용으로 북·중·러 밀착이 새 국면을 맞은 건데요. 9월3일(현지시간) 중국의 전승절(항일전쟁 및 반 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 대회) 열병식이 분수령이 될 전망입니다. 다만 사상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이는 북·중·러 '스트롱맨 3인방'의 셈법은 각기 다르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제공한 사진에 김정은(가운데)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평양의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조국해방전쟁 승리 70돌 경축 열병식에 세르게이 쇼이구(왼쪽) 러시아 국방장관, 리훙중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과 함께 주석단에 올라 참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신냉전 '변곡점'…한·미·일 협력 '여진'
31일 외교가에 따르면 9월3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중국 전승절 행사를 계기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입니다. 러시아 크렘린궁의 발표에 따르면 북·중·러 정상은 천안문 망루에 나란히 설 예정입니다. 시 주석이 가운데 자리하면, 김 위원장이 왼쪽 푸틴 대통령이 오른쪽에 앉게 됩니다.
이들의 참석 여부는 이재명 대통령의 방일·방미 일정에 따라 한·미·일 협력 강화된 이후 발표됐습니다. 자연스럽게 냉전 시대의 한·미·일 대 북·중·러(당시 소련) 구도가 신냉전 시대로 재연됐습니다.
주목할 점은 중국의 입장 변화입니다. 중국은 지난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집권 당시만 해도 북한과 러시아의 결속에 거리를 두는 듯한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이와 관련해 국내 전문가들은 중국이 거리를 두는 상황에서 한·미·일 대 북·중·러 라는 신냉전 구도가 고착화됐다는 평가는 섣부른 예단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관세를 고리로 한 미·중 패권 경쟁은 더욱 가속화됐습니다. 결국 중국 역시 이번 열병식을 계기로 북·러와 결속을 강화하고 반서방 우방국들의 세를 결집시킬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북·중·러의 결속이 급물살을 타게 되면, 이에 따른 한·미·일 차원의 대응도 수위가 높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한·미 정상회담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북·미 대화 가능성도 낮아지게 되는 셈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북·중·러, 이해관계 '상충'…3자 회담 주목
이번 전승절이 주목되는 건 그간 느슨했던 북·중·러의 결속이 어떻게 발전하느냐에 있습니다. '혈맹 관계'였던 북·중 관계는 김 위원장의 '친중파' 제거에 따라 소원해졌고, 중국 역시 대북 제재에 동참하는 모양새를 보여왔습니다. 그런데 북·중·러가 한자리에 모이게 되는 건 각각의 셈법에 따른 이해관계가 맞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김 위원장의 경우 6년 만의 중국 방문이자 첫 다자 외교 무대 진출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와 '신밀월'을 이어왔는데요. 2024년 6월 체결한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강화 조약'이 대표적입니다. 북한은 러시아 파병을 통해 경제적·군사적 성장을 거둔 것으로 관측됩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마무리되고 나면, 북·러 관계 역시 다소 주춤할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 경제 의존도의 96%가 중국인 상황에서, 결국에는 향후 경제협력을 북·중 관계 개선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다자외교 무대 데뷔를 통해 정상국가의 이미지를 확보하고, 국제 사회 내에 '핵보유국' 정당성을 얻으려 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대화를 언급한 상황에서 중국과의 밀착은, 김 위원장이 몸값을 높일 수 있는 전략이기도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북·미 대화에 앞서 김 위원장이 중국을 찾았던 점을 고려하면 7년 전의 '해빙' 상황이 재연될 수도 있습니다.
시 주석은 미국의 압박이 거센 상황에서 '반서방 연대'의 상징성을 이번 열병식을 통해 과시할 것으로 보입니다. 또 러시아와는 전통적 군사동맹은 아니지만 실리 외교를 기반으로 '전략적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또 북·중·러 연대를 통해 한·미·일 협력에 대응할 수 있는데요. 북·미 대화를 앞두고 한반도 내 영향력을 과시하려는 포석으로도 읽힙니다.
다만 시 주석이 북·러와 협력을 강화할 경우, 한·미·일의 거리를 좁히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반서방 블록'의 건재함을 드러내면서도 북·러와 전략적 거리를 유지하는 유연성을 보일 것이라는 관측도 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9일(현지시간) 중국 관영 <신화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와 중국은 세계 무역에서 '차별적인' 제재에 공동으로 반대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러시아는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의 경제적 제재로 경제적 타격을 받아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우크라이나와 평화협상을 필두로 추가 제재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푸틴 대통령은 이번 방중을 통해 서방 중심의 '일극체제'가 아닌 '다자주의' 세계 질서를 통한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에 방점을 둘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더불어 중국과의 연대 강화를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요구할 전망입니다. 북·중·러 3국은 이번 열병식을 계기로 양자 정상회담과 3자 정상회담을 진행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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