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 10월 22일 16:57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종신보험의 사망보험금 개념이 급격히 바뀌고 있다. 피보험자가 생전에 보험금을 연금처럼 받을 수 있는 유동화 제도가 이달부터 시행되고, 사망보험금 청구권을 신탁 형태로 운용하는 사례도 빠르게 확산 중이다. 사망 후 유족에게 지급되는 정형화된 구조가 흔들리면서 보험사들은 새로운 활용 모델을 놓고 치열한 경쟁에 나서고 있다. 대형사뿐 아니라 중소형사까지 생존·사후 자금 운용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전략 마련에 분주하다. <IB토마토>는 사망보험금의 변화 흐름과 시장 전략, 제도적 쟁점, 향후 과제를 종합적으로 짚어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황양택 기자] 종신보험 사망보험금을 활용하는 또 다른 방안으로 신탁 기능이 부상하고 있다. 앞선 유동화 제도가 피보험자 ‘생전’ 사용에 관한 것이라면, 신탁은 '사후 활용'에 대한 것이다. 최근 중소형 보험사 다수가 신탁 상품을 선보이면서 시장 진출에 적극적인 모습이다. 규제상 신탁 대상이 사망보험금으로 한정되고 있다는 점은 해결이 필요한 핵심 과제로 꼽힌다.
보험금청구권 신탁 본격화…중소형사 진출도 ‘활발’
신탁은 특정한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 ‘위탁자’가 관리자인 ‘수탁자’에게 재산을 맡기고 관리를 위임하는 것이다. 수탁자는 위탁자가 미리 지정한 ‘수익자’를 위해 관리·운용 업무를 수행한다.
사망보험금 신탁은 ‘보험금청구권(금전채권)’을 기반으로 한다.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는 피보험자 권리를 신탁회사에 맡기는 것이다. 향후 보험사고 발생으로 지급되는 보험금을 신탁회사가 관리함으로써 수익자가 효율적으로 수령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는 고령화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체계적인 노후를 설계하는 데 유용하다. 이뿐만 아니라 한부모 가정이나 미성년, 장애 자녀를 둔 가정에서 생활자금을 안정적으로 마련하는 데도 효과적인 수단이다.
(사진=연합뉴스)
국내에서는 보험금청구권이 신탁 대상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법적 논란이 있었는데, 지난해 11월 금융위원회가 관련 법률 개정을 시행하면서 법적 근거가 마련된 바 있다. 이에 따라 다수 보험사가 관련 상품을 출시했으며, 최근에는 중소형 보험사도 활발하게 진출 중이다.
ABL생명은 우리금융그룹에 편입된 이후 은행과 연계할 수 있는 영역으로 신탁 시장을 꼽고 특화 상품을 이달 초 내놨다. 메트라이프생명도 신탁 서비스 확대를 위해 하나은행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대형 보험사인
한화생명(088350)은 지난달 신탁 서비스를 본격화했다.
보험사 중에서도 신탁 라이선스를 보유한 곳은 업무를 직접 영위하고, 라이선스가 없는 곳은 자사 종신보험에 대한 신탁 서비스를 다른 금융기관에 맡기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생명보험사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에 “대형 보험사는 신탁 라이선스가 있어서 업무를 직접 수행할 수 있다”라면서 “중소형 보험사는 신탁 라이선스가 없다면 고객이 다른 금융기관을 이용해야 한다. 특정 기관과의 업무제휴는 과정을 더 간소화하고 편의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망보험금에 한정된 신탁 대상…“규제 완화로 상품 다양화 필요”
보험금청구권 신탁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관련 규제 완화가 필수적이라는 의견이 많다. 현재 자본시장법 시행령에서는 신탁 요건으로 ▲3000만원 이상의 일반 사망보험금 ▲보험계약대출을 하지 않은 계약 ▲피보험자, 보험계약자, 위탁자가 모두 동일인 ▲신탁 수익자는 직계 존속·비속과 배우자 한정 등으로 제한하고 있다.
현재는 신탁 가능한 계약이 종신보험뿐이라는 점이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힌다. 다른 보장성보험이나 저축성보험 등은 신탁을 허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상품 개발 영역도 그만큼 좁다는 지적이다.
보험연구원 자료에 의하면 신탁업이 가장 발달한 곳은 미국이다. 미국에서는 신탁을 상속과 증여, 노후생활비, 요양비용 관리 등 여러 목적으로 활용한다. 이에 따라 생명보험신탁, 신탁 연계 장기요양보험, 생명보험을 이용한 특수목적신탁, 생명보험 기반의 장례신탁 등 다양한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국내처럼 신탁 대상을 사망보험금 청구권에만 한정하면 그 활용도가 상속(보험금의 후대 승계) 정도에서만 도움이 된다. 나머지 부문인 재산 증여, 고령자 본인을 위한 자산관리 등에서는 한계가 따른다.
신탁 대상뿐만 아니라 현재 계약 요건도 완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보험업계와 학계 중론이다. 3000만원이나 보험계약대출 조건을 삭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종신보험 사망보험금의 활용도를 높이는 현재 시장 수요와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노인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있는 만큼 신탁 수익자 범위도 넓혀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다.
신탁 대상을 사망보험금 청구권에 한정하고 있는 이유는 사망보험금이 금전채권 성격인 보험금 지급의 확정성을 가장 확실하게 갖추고 있어서다. 향후 보험금이 지급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 상품에 대해서만 신탁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보험연구원 한 연구위원은 <IB토마토>에 “보험금청구권이 자본시장법상 신탁 재산 범주에 포함되는지, 포함된다면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판단의 문제”라면서 “금전채권의 확정성이 가장 큰 이유로 보이는데, 일반 사망보험은 결국 누구나 죽고 보험금이 나오기 때문에 확정성이 있다고 해석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른 보험 상품에 대해서 어떻게 할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인데 계속 협의가 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일반적인 저축성보험이나 개인연금 등은 확정성 측면에서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허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라고 말했다.
황양택 기자 hyt@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