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차철우 기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코앞에서 북한이 무력시위를 감행했습니다. 북·미 대화 가능성이 거론되는 가운데 군사도발을 한 건데요. 북한이 비핵화 불가 입장을 재차 드러냄과 동시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핵보유국으로 인정 시 북·미 대화가 가능하다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해석됩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이재명정부 첫 도발…국제사회에 존재감 각인
북한은 22일 오전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을 발사했습니다. 윤석열정부 당시인 지난 5월8일 이후 167일 만입니다. 이재명정부 들어선 첫 군사도발입니다. 대통령실은 즉각 관련 사안을 보고받고 긴급 안보상황점검회의를 열어 대응 상황을 점검했습니다. 앞서 이재명정부는 출범 이후 북한 측 도발을 유도하지 않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유화적 조치를 단행했습니다. 대북 확성기 송출 중단 등 조치가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북한은 우리 정부의 조치에도 무응답으로 일관, 호응하지 않았습니다. 북한이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무력시위를 감행한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겨냥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여러 외교·정치적 계산이 깔린 건데요.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APEC 계기 29~30일 이재명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입니다. 이 자리에선 한반도 안보 관련 사안이 논의될 가능성이 큽니다.
북한의 이번 도발은 단순한 군사 시위가 아니라, 북·미 협상에서 비핵화 조건을 선점하고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행보로 해석됩니다. 자신이 여전히 한반도 안보의 핵심 변수임을 국제사회에 각인시키려는 전략인 겁니다.
앞서 미국은 북한에 연일 대화 손짓을 내밀었습니다. <CNN>은 지난 18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아시아를 방문하면서 김 위원장을 만나는 문제를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들이 비공개로 논의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대통령과 지난 8월 정상회담 당시엔 "올해 김 위원장을 만나고 싶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김 위원장도 지난달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미국이 비핵화 집념을 버리고 현실을 인정한 데 기초해 우리와 진정한 평화 공존을 바란다면 미국과 마주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북한은 이날 무력도발을 통해 비핵화를 전제로 하지 않는 대화만 가능하다는 입장을 재차 드러냈습니다. 김 위원장은 그동안 미국 등 국제사회에 북한의 '핵보유국 인정'을 요구해왔습니다. 이 같은 요구는 단순한 위협이 아니라, 비핵화 논의를 더 이상 협상 테이블에 올리지 말라는 선언적 의미로도 해석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접촉 의지를 연일 내비친 상황에서도 북한은 이번 군사적 행동을 통해 핵포기 불가를 선언한 셈입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3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열린 '중국 인민 항일 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전승절)' 80주년 기념 열병식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대미 협상 주도권' 확보 위한 전략적 의도"
동시에 북한은 핵보유국으로서 지위를 강화, 한반도 평화 체제 논의에서 존재감을 과시해왔습니다. 지난 2019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된 북·미 담판은 '노딜'로 끝났습니다. 이후 미국과 북한 대화는 단절됐는데요. 이번 도발은 북·미 협상 개최 조건으로 북한 측이 의제를 선점, 협상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의도로 해석됩니다.
최근 북한과 밀접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핵보유를 사실상 용인했습니다. 이 때문에 향후 북·미 담판 개최 시 북한은 중·러 지지를 바탕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대화 제의에 핵보유국 간 핵군축 협상을 전제 조건으로 제시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 정부는 이번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3단계 비핵화 END(교류·관계 정상화·비핵화) 이니셔티브(주도권)를 국제사회에 다시 제시할 것으로 보입니다. END이니셔티브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 과정을 함께 진전시켜 나가고 비핵화 평화 체제 구상에 대한 국제사회의 이유와 협조를 구한다는 구상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북한 미사일 발사가 미사일 능력을 과시하고, 정치적·외교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계획적이고 전략적인 행보라고 분석했습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는 "이번 미사일은 단거리탄도미사일로, 약 4.5톤(t)급 초대형 탄두를 장착해 한미 지하 지휘소까지 타격 가능한 성능을 갖추고 있다"며 "핵보유국 인정, 한·미 군사훈련 중단 요구, 비핵화 협상은 제한된다는 등 메시지가 담겨 있으며,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국제사회에 북한 입장을 강조하려는 의도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이번 북한 미사일 발사는 정세 변화와 무관하게 핵무력 고도화를 계속하겠다는 메시지"라고 평가했습니다. 이어 "신형 여부와 상관없이 기술적 진보를 과시하며 협상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며 "5개월 만의 발사로 계획적·정치적 의도를 분명히 드러냈다"고 강조했습니다.
차철우 기자 chamato@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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