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경제의 두 얼굴…부유층 '호황' 저소득층 '고통'
'K-자형 양극화'… 소득·소비 격차, 주거비 부담까지 심화
주가는 사상 최고, 중·하위층 실질 구매력은 빠르게 위축
2025-11-17 16:00:10 2025-11-17 16:09:26
[뉴욕=뉴스토마토 김하늬 통신원] 미국 경제가 최근 사상 최고 수준의 주가와 견조한 성장률을 기록하며 겉보기에는 '완벽한 회복기'를 누리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화려한 겉모습 뒤에 'K-자형'(K-shaped) 양극화라는 경고음이 점점 선명해지고 있습니다. 경제 회복이 모든 계층에 고르게 퍼지지 않고, 부유층과 중·하위층으로 나뉜 두 개의 흐름으로 나뉘고 있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상승 곡선 위에 있는 일부 고소득층은 자산 효과를 기반으로 소비 여력을 확대하며 경기 회복의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반면 하락 곡선 아래의 중산층과 저소득층은 생활비 부담과 부채 증가로 경제적 체력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습니다. 상승 곡선의 윗부분에 있는 소수는 혜택을 누리고 있지만 하락 곡선 아래 다수는 여전히 생존을 위한 지출에 매달리고 있는 구조가 뚜렷해지고 있는 겁니다. 
 
미국 경제가 화려한 겉모습 뒤에 K자형(K-shaped) 양극화라는 경고음이 점점 선명해지고 있다. 1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밖에서 트럼프 행정부에 반대하는 시위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가면을 쓴 시위자가 상자를 들고 있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사상 최고 주가와 양극화의 그림자…'두 개의 미국' 시대
 
실제 데이터는 이러한 격차를 뒷받침합니다. 16일(현지시간)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 자료에 따르면 미국 노동자 상위 25%의 임금은 해마다 4.6%씩 상승했지만, 하위 25%의 임금 상승률은 3.6%에 그쳤습니다. 이는 2022년 하위 25% 임금 상승률(7.5%)과 비교하면 거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수치입니다. 소득 격차가 확대되면서 중하위층의 실질 구매력은 더욱 제한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 자료에서도 저소득 가구의 29%가 현재 월급을 받아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상태에 놓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비율은 2023년 27%에서 상승한 수치로, 저소득층의 재정적 압박이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 경제학자들은 "저소득층의 임금 상승률이 올해 들어 고소득층보다 낮아지고 있다"며 실질 소비 여력 약화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특히 최근 미국 증시는 기술·금융 중심으로 사상 최고치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는 연초 이후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는데요. 인공지능(AI)·반도체 중심의 메가캡 기업들이 전체 실적 상승을 이끌었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기업들의 실적 회복이 눈에 띄며, 최근 4년 만에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고 보도했습니다.
 
문제는 실적 호조·주가 상승이 자산을 많이 보유한 계층에 집중돼 소비가 일부 계층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FT는 "기업 실적 등 거시지표가 호전됨에도 불구하고 소비자 지출의 양극화가 더욱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소득 격차는 소비와 자산 구조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무디스는 팬데믹 이후 연소득 17만5000달러(약 2억5445만원) 미만 하위 80% 가구의 지출이 물가 상승률을 겨우 따라잡는 수준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즉 실질 구매력은 개선되지 않은 채 단지 인플레이션에 맞춰 지출이 유지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소득·부의 불균형은 더 심해질 것"…전문가들 경고
 
이 같은 소비 양극화는 제인 프레이저 씨티그룹 최고경영자(CEO)의 진단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그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K-자 소비자’ 패턴을 보고 있는데, 부유층 고객이 최근 몇 분기 소비 증가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며 "반면 저소득층 소비자는 훨씬 더 신중해졌고 생활비 압박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사이의 소비 패턴 차이가 경제 전반의 회복에도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K-자형 양극화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지점은 바로 '주거비'와 '부채'입니다. 모기지 금리는 팬데믹 이전 대비 두 배 이상으로 높아졌고, 주요 도시 렌트비는 매년 5~10%씩 오르고 있습니다. 집을 가진 계층은 자산가치 상승을 누리는 반면 집이 없는 계층은 지출의 절반 가까이를 렌트비로 쓰며 아래쪽 K 선으로 밀리는 구조입니다. 제인 프레이저 CEO 역시 주거비 격차를 지적하며 "저소득층은 렌트비를 내야 하는 반면 많은 중산층·상류층은 낮은 금리로 30년 고정 모기지 대출을 이미 잡아둔 상태"라며 "체감 부담이 완전히 다르다"고 꼬집었습니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러한 K-자형 회복이 지속될 경우 소비 성장 자체가 일부 계층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되고, 중하위층이 지출을 줄이면 전체 경기 충격이 급격히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또한 소득·소비 격차가 고착화하면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정치·정책적 불안정성까지 동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마크 잔디 무디스 애널리틱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경제는 이제 부유 계층의 소비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며 "만약 이들이 지출을 줄이면 경기는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헤더 롱 내비 페더럴 크레딧 유니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상위 10%와 하위 80% 간 소비·지출 양극화가 금융·주택시장 등에서 실질적인 구조적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뉴욕=김하늬 통신원 hani4879@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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