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 파노라마)선거 유불리에 갇힌 '성추행 의혹'…피해자는 어디에?
민주당, 장경태 터지니 손범규 주목…'성비위 맞불' 정치로 전락
지방선거 반년 앞두고 셈범만 분주…증언마저 '정치적으로 계산'
2025-12-15 06:00:00 2025-12-15 06:00:00
[뉴스토마토 김현철 기자] 12월 초 장경태 민주당 의원의 성추행 의혹이 터지자 정치권이 들썩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국민의힘에서 장 의원의 사건을 들이밀며 민주당을 공격하자 민주당에선 "너희도 성추행 있잖아"라며 손범규 전 국민의힘 대변인 건으로 맞불을 놓은 겁니다. '손범규 건'이란 지난 9월부터 <뉴스토마토>가 연속 보도하고 있는 손범규 전 대변인 성추행 의혹 사건을 가리킵니다. 
 
본지가 9월11일 <(단독)국민의힘 성비위 의혹 내부고발 '침묵'...2차 가해 방조> 기사로 손 전 대변인에 대한 의혹을 처음 보도할 당시만 해도 민주당 관계자들은 시큰둥한 반응이었습니다. 2023년 2월17일 문제의 그 성추행이 벌어졌을 때 손 전 대변인은 인천시청 홍보특보였습니다. 인천에 지역구를 둔 몇몇 민주당 의원들은 본지에 이 사건의 개요를 문의하기도 했지만, 단지 거기서 끝났습니다.  
 
하지만 이달 들어 민주당은 대변인 성명 등을 통해 손 전 대변인 사건을 비판하는 등 부쩍 이 사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바뀐 민주당의 기류가 궁금했습니다. 왜 9월~11월 무려 석 달 동안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손 전 대변인 의혹을 지금에 와서 주목하는지를요. 민주당 몇몇에 물었더니 답은 의외로 솔직했습니다. 장경태 의원의 성추행 의혹이 불거지자 손 전 대변인 건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겁니다. 즉, '손범규로 장경태를 덮자'는 심산입니다.
 
손 전 대변인과 장 의원이 공통적으로 받는 혐의는 강제추행입니다. 두 사람은 11월 모두 피소됐습니다. 그들 앞에 놓 절차는 수사기관의 수사입니다. 수사를 통해 혐의가 입증된다면 재판으로 넘겨지게 됩니다. 
 
손범규 국민의힘 최고위원 후보가 지난 8월22일 오후 충북 청주 오스코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6차 전당대회에서 비전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여당과 야당은 손 전 대변인과 장 의원에 대한 의혹을 밝히려는 노력보다 지방선거를 앞둔 셈법 계산에 분주한 모습입니다.  
 
민주당이 최근 손 전 대변인 의혹에 부쩍 관심을 갖는 건 지방선거를 앞두고 장 의원 사건이 미칠 파장을 상쇄시키겠다는 계산이 깔렸습니다. 
 
국민의힘이라고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특히 손 전 대변인이 지난 12월9일 <뉴스토마토>와 나눈 통화가 그렇습니다. 앞서 손 전 대변인은 지난 7일 대변인직을 사임한 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성추행 의혹이 불거진) 식사 자리에 참석한 7명 중 본인을 제외한 6명이 당 윤리위원회 조사에서 '부적절한 행위가 없었다'고 증언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본지가 취재한 결과 윤리위는 11월 3일 손 전 대변인과 피해자 A씨만 불러 소명을 들었을 뿐 동석자들에 대해선 조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본지가 동석자들을 직접 취재하는 과정에서도 손 전 대변인의 주장과 정반대의 증언이 나왔습니다. 동석자 B씨는 "손 전 대변인이 A씨 어깨에 손 올리고 감싸 안은 자세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정확히 봤다"며 "그걸 보고 나는 그런 꼴을 보기 싫어 먼저 나왔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본지는 9일 손 전 대변인과 통화를 하면서 '윤리위에서는 동석자를 조사하지 않았다. 동석자들이 성추행을 목격했다는 식으로 진술을 바꾸면 어떻게 하겠냐'는 취지의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손 전 대변인은 "본인의 양심에 따라 (진술)하는 건데, 지방선거가 가까워오니까 한 명 정도 변할 수도 있겠지만…"이라고 답했습니다.
  
손 전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사건이 벌어졌을 당시 동석자들이 그간 문제를 제기하지 못한 이유도 바로 선거 때문이었습니다. 손 전 대변인은 현재 인천 남동갑 당협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동석자들로선 손 전 대변인에게 불리한 발언을 했다가는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이 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B씨도 본지에 "당협 사람들은 (손 전 대변인) 눈치를 볼 수밖에 없으니 그동안 당연히 (성추행 의혹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어야 했다"라고 털어놨습니다.   
 
장경태 민주당 의원이 지난 10월 25일 오전 제주시 이도2동에 위치한 민주당 도당사에서 열린 핵심 당원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처럼 여야가 성추행 의혹을 놓고 정치적 계산기만 두드리려고 하다 보니 정작 피해자 구제와 진실 규명은 뒷전으로 밀렸습니다. 강제추행은 엄연히 형법상 범죄입니다. 그렇지만 여의도에선 정치적 유불리만 따지는 셈입니다. 피해자들의 목소리도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민주당에선 장경태 의원의 성추행 의혹의 피해자를 보호하자는 말을 꺼내는 이가 없습니다. 
   
역설적이게도 피해자 A씨가 2년간 침묵한 이유 역시 '정치' 때문이었습니다. 22대 총선을 앞두고 자칫 성추행 의혹이 불거지면 국민의힘에 해가 될까 봐 참았다는 겁니다. 국민의힘에서도 마찬가지 이유로 손 전 대변인 사건을 2년 넘게 쉬쉬했을 걸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인천 정가에선 2년 넘게, 지금 이 순간에도 피해자 A씨에 대한 2차 가해와 집단 따돌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제 용기를 내 손 전 대변인을 고소한 A씨가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귓가에 맴돕니다. "이 문제는 정치적 유불리가 아니라 우리 정치가 최소한의 기준을 지킬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김현철 기자 scoop_press@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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