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숨소리)독수리를 위한 안부
2025-12-22 13:40:46 2025-12-22 14:26:18
중국 내몽골의 씨우치 구르거스타이 자연보호구 목초지에서 구조한 NH4의 모습. (사진= 디옌(迪彦) 제공)
 
‘독수리’를 아시나요? 한국에서 ‘독수리’라고 하면 흔히 사냥하는 크고 강한 멋진 새를 떠올립니다. 그런데 아시나요? 독수리는 사냥을 할 줄 모릅니다. 동물을 사냥하는 사냥꾼이라기보다 사체를 먹으며 생태계 순환을 돕는 새입니다.
 
자연에서 죽은 동물은 어디로 갈까요? 누군가가 치웁니다. 많은 경우 독수리가 먹어치웁니다. 죽은 동물의 사체를 먹는다니 조금은 무섭게 들릴 수도 있지요. 하지만 독수리의 이런 섭식 행동은 동물 사체가 오래 방치되며 생길 수 있는 문제, 이를테면 부패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생 문제나 질병 확산 위협을 줄이는 데 도움을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독수리는 이름에도 그 생활사가 묻어 있습니다. ‘독수리’의 ‘독’은 대머리를 뜻하는 한자 ‘독(禿)’에서 왔습니다. 실제로 독수리는 머리와 목덜미 쪽에 깃털이 듬성듬성 있어서 피부가 드러나 보이는데, 이는 사체 속에 머리를 파묻고 살을 뜯어먹는 습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피와 체액이 묻기 쉬운 부위에 긴 깃털이 많으면 오히려 먹는 데 불리하기 때문입니다.
 
겨울철 우리가 만나는 독수리 대부분은 사실 몽골에서 자라나 한국으로 찾아오는 어린 새들입니다. 특히 한 살에서 네 살가량의 어린 독수리들이 많다고 합니다. 몽골의 번식지에서 출발한 독수리들은 국경을 넘어 한반도로 이동해 경기 파주와 강원 철원·춘천·양구·고성, 그리고 충남 서산 등 여러 지역에서 겨울을 보냅니다. 이곳에서는 많은 환경 지킴이들이 독수리들이 무사히 겨울을 나도록 돕기 위해 ‘독수리 식당’을 열어 배고픈 독수리들에게 먹이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이 독수리들이 몽골 어디서 어떻게 오는 것이며, 잘 지내고 있는지 눈으로만 확인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독수리에게 ‘윙태그’라고 하는 인식표를 달고, 경우에 따라 위치추적장치를 부착해 독수리의 이동 경로를 확인합니다. 저는 이 작업이 단지 경로를 기록하는 일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계속해서 안부를 묻는 일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 안부를 25년 넘게 묻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독수리 로드>에 나온 노영대 감독입니다.
 
겨울철마다 한국에서 먹이를 찾아 헤매는 독수리들을 바라보며, 그 길의 시작과 끝을 확인하고 싶었던 마음이 출발이었을까요. 그는 올해 여름에도 몽골에서 부화한 네 마리의 독수리에게 윙태그와 위치추적장치를 달아 이동 경로를 살피고 있었습니다. 이 연구는 경남 고성독수리탐사대와 몽골국립대 독수리연구팀이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중국 내몽골의 씨우치 구르거스타이 자연보호구 목초지에서 구조한 NH4의 모습. (사진= 디옌(迪彦) 제공)
 
그런데 올겨울, 네 마리의 신호를 지켜보는 중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어린 독수리들이 한반도 쪽으로 날아오는데, 유독 어깨 표식 NH4만 한국으로 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점과 선으로 연결되던 위치 정보가 한 점에서 멈추거나 움직임이 사라지는 것은 대개 안타까운 소식이기에, 한동안 NH4의 다음 점을 기다리며 걱정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가 아는 중국의 교수님을 통해 길 잃은 독수리 소식을 들었습니다. 12월10일, 중국 내몽골의 씨우치 구르거스타이 자연보호구의 관리자인 디옌(迪彦)씨가 어느 목초지에서 윙태그를 단 독수리 한 마리를 구조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한 점에서 움직임이 없던 NH4였습니다. 굶주린 탓에 체력이 크게 떨어져 움직이기 어려운 상태였던 것입니다. 지금은 먹이를 든든히 먹고 상태가 다소 호전되었다고 합니다. 다만 겨울철 내몽골 일대에서는 자연적으로 얻을 수 있는 먹이가 상대적으로 부족해, 겨울을 홀로 나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장 자연으로 돌려보내기보다는 내년 4월 철새들의 북상 시기에 맞춰 자연스럽게 돌려보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국에 오지 않아 걱정했던 NH4가 결국 무사히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이 소식은 위성이 보내는 신호가 아니라 사람을 통해 전해 온 말, 말 그대로 ‘안부’와도 같았습니다. 지도 위에 멈춰 있던 점이 누군가의 구조 기록과 메시지로 다시 이어졌습니다. ‘무사하다’는 단어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습니다.
 
누군가는 위험에 처한 독수리를 발견했고, 누군가는 먹이를 주고 돌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소식은 또 다른 누군가를 거쳐 제게, 그리고 노영대 감독과 한국의 연구진들에게까지 닿았습니다. 좌표 하나가 독수리와 사람을 연결하고, 사람과 사람을 잇고, 국경을 넘는 네트워크를 통해 위기에 처한 생명을 지킬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독수리의 길이 이어져 있다는 것은, 그 길 위의 사람들도 서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겠지요.
 
몽골에서 막 자라난 어린 독수리들에게 겨울은 특히 고됩니다. 먹이를 찾아 이동하는 길은 멀고, 하늘은 넓으며, 주변 환경은 해마다 달라집니다. 독수리는 국경을 모르고 날아갑니다. 그래서 위기에 처한 독수리들을 지키는 일에는 종종 국경을 넘는 협력이 필요합니다.
 
독수리 NH4의 생사를 확인하며, 한 종의 보전이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우리는 이 한 마리의 소식에 이렇게 함께 안도하고 기뻐하는 걸까요. 아마 보전이란 거창한 구호나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처럼 서로 연결된 이들이 각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 모여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다가옵니다. 한반도에 찾아온 모든 독수리들이 겨울을 잘 보내고, 지도 위 NH4의 점이 봄바람 하늘길을 따라 고향으로 무사히 이동하기를 바랍니다.
 
글·사진= 김용재 생태칼럼리스트 K-wild@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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