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사 끊기는데 플라스틱값 내리라니…석화업계 ‘진퇴양난’
수급난에 적자 감수하며 가동 중
정부 시장 개입 예고에 업계 시름
2026-03-19 14:43:04 2026-03-19 14:48:18
[뉴스토마토 윤영혜 기자] 중동 정세 불안으로 핵심 원료인 납사(naphtha, 나프타) 수급이 막힌 가운데, 플라스틱 수요 중소기업들의 납품 단가 인하 압박까지 더해지며 석유화학 업계가 ‘샌드위치’ 신세에 놓였습니다. 중소기업계는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생존 위기를 호소하며 정부와 정치권에 시장 개입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석유화학 대기업들은 수급난 속에 막대한 적자를 떠안고 버티는 상황이어서, 정부의 전방위적인 가격 통제가 본격화할 경우 시름이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19일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유가 급등에 따른 플라스틱 수요 중소기업 대책 마련을 위한 석유화학 업계 간담회’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19일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유가 급등에 따른 플라스틱 수요 중소기업 대책 마련을 위한 석유화학 업계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간담회에는 LG화학(051910), 한화솔루션(009830), 롯데케미칼(011170), 여천NCC 등 석유화학 업계 임원진과 플라스틱 중소기업계, 산업통상부 등 주요 정부 부처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했습니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업체의 71%가 대기업으로부터 공급량 축소나 중단을 통보받았고, 공급 가격 인상 통보를 받은 곳도 92%에 달합니다. 플라스틱 산업은 제조 원가에서 합성수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83%에 달해 대기업의 원료 가격 변동에 매우 취약한 구조라는 설명입니다.
 
채정묵 한국프라스틱공업협동조합연합회 회장은 “지난 2월 말 전쟁 발발 직후 당장 3월분부터 가격 인상과 공급 물량 조정 통보를 받았고 추가 인상과 공급 중단 가능성까지 거론돼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심정”이라고 토로했습니다. 이어 대기업의 일방적인 공급가 인상을 비판하며, 중소기업의 손실 방지를 위해 원자재 인상분이 최종 납품가에 즉시 반영되는 납품단가 연동제 시행이 시급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석유화학 업계는 이전부터 이어진 업황 부진에 납사 수급 위기까지 덮쳐 한계에 다다랐다는 입장을 조심스럽게 내비쳤습니다. 불과 지난해까지만 해도 글로벌 공급 과잉에 따른 설비 재편 압박으로 구조조정에 내몰렸으나, 이제는 중소기업 상생을 위해 적자를 감수하고서라도 공장 가동률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확대해야 하는 난감한 처지에 놓였습니다.
 
정종은 LG화학 상무는 “석유화학 업계는 이전부터 어려웠고 나프타를 모두 외부에서 조달하다 보니 가격이 올라 더 어려운 상황”이라며 “국내 공급망 안정을 최우선으로 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원유나 액화천연가스는 국가 전략 물자로 인식해 정부가 저장 탱크를 확충하지만 납사는 그렇지 않다”며 “산업의 쌀인 에틸렌 생산에 필요한 납사도 정부 차원의 비축 제도가 있으면 좋겠고 기업도 거기에 맞춰 투자하면 좋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정종은 LG화학 상무(맨 오른쪽)가 19일 국회에서 열린 석유화학 업계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김동욱 한화솔루션 상무는 “호르무즈 사태 전에도 경기가 좋지 않아 가동률과 재고가 낮았고 그 여파가 단시간에 나타나고 있다”며 “우리는 납사 분해 설비가 없어 에틸렌을 받아 사용하는데 이틀 만에 곧바로 가동이 정지될 정도로 에틸렌을 구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습니다. 
 
김영번 롯데케미칼 상무는 “지난해 정부 사업 재편 1호 모델로 대산이 진행 중이며 여수에서도 재편을 준비 중”이라며 “3, 4월 합성수지는 수출 물량 계약 취소를 추진 중이고 국내 기존 공급을 45%에서 90%까지 늘리는 등 국내 화학 생태계를 위해 선제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했습니다.
 
배용재 여천NCC 전무는 “지금 최저 가동률 상태이고 가격도 전쟁 전 600달러에서 지금 1100달러 이상으로 두 배 정도 올랐다”며 “그조차 구하기 어려워 불가항력을 선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털어놨습니다. 또 “가동률 유지에 힘쓰고는 있지만 대규모 손실 리스크를 감수하고 진행하고 있는 점도 함께 고민해 주셔야 밸류체인 전체에서 합리적인 방안이 나올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다만 정치권과 정부는 중소기업 보호를 위한 시장 개입과 제도적 대안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어 석유화학 업계의 고충은 커질 것으로 관측됩니다. 김남근 의원은 “중동에서 실은 원유가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기존 재고 물량의 가격까지 오르는 것은 부당하다는 중소기업계 의견이 많다”며 “공정거래위원회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간담회에서 정부 부처들은 중소기업 지원책을 내놓았습니다. 금융위원회는 중동 상황 피해 기업을 대상으로 20조3000억원 규모의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해 신규 대출 금리와 보증료를 감면하고 기존 대출의 만기 연장과 상환 유예를 고려 중입니다. 조달청은 조달원가 재산정 등 정부 조달 가격의 조정을 검토하겠다고 밝혔고,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기업의 담합 및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조사를 강화할 방침입니다. 중소벤처기업부도 납품단가 연동제 시행 현황을 점검하고 정책 자금 지원에 나설 예정입니다.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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