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에서 기후변화는 단순한 환경적 요인을 넘어 사회와 문명의 흥망성쇠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우리네 호모 사피엔스의 선사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기후변화는 인류의 이동과 정착, 사회적 변동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해 왔다. 기후변화에 따른 사회적 변화는 인구 이동뿐만 아니라, 경제 구조의 변화와 문화의 변천도 가져왔다. 이러한 역사적 흐름은 기후위기라는 새로운 도전 과제에 직면한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17세기와 18세기의 기후변화는 유럽 사회에 거대한 사회적 격변을 일으켰다. 이 시기에 발생한 여러 기후 사건은 대규모 기근과 전염병을 초래했고, 이는 서구의 식민지 개척이라는 새로운 경향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흐름은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나며, 그 여파는 조선시대의 경신 대기근과 여러 자연재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기후변화는 역사의 큰 흐름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다.
고대 로마제국의 붕괴도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기후변화가 유목민족의 대이동을 촉발했으며, 이로 인해 제국의 경계가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유목민들이 새로운 초원으로 이동하면서 '엑소더스 도미노'를 일으켰고, 로마제국은 그 힘을 잃어갔으며, 이는 지중해 지역의 정치·경제 질서에도 큰 타격을 주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례를 통해 기후변화가 단순한 환경의 변화를 넘어 인류 전체의 삶과 문화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기후변화는 우리나라의 먹거리 확보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바다와 뭍의 먹거리 생장은 북방한계선이 러시아까지 확장되고 있으며, 이는 한국의 식량안보에 중대한 도전 과제가 되고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먹거리를 '필요하면 멀리서 가져오면 된다'는 전제 위에서 살아왔다. 물류와 저장 기술이 발전하면서 계절과 지역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기후위기는 이 전제를 흔들고 있다. 기상이변이 특정 지역이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동시에 발생하면서, 한쪽에서 부족하면 다른 곳에서 가져오는 방식 자체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장거리 운송 비용은 급등하고, 공급망은 불안정해지며, 식량 조달 기반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2025년 12월24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배추를 살펴보고 있다. 이날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5년 재배면적(확정) 및 농작물생산량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을배추 생산량은 102만4000톤으로 전년보다 12% 감소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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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변화는 이미 국내 생산 기반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실제 현장에서는 '생산 기반이 무너지는'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여름철 김치의 핵심 원료인 고랭지 배추는 더 이상 안정적으로 생산되지 못하고 있다. 해발 600미터 이상의 고지대에서도 폭염과 폭우가 반복되며 생육 환경이 무너지고, 최고기온이 25도를 넘는 날이 늘어나면서 배추의 절반이 상품성을 잃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 강원도 고랭지 배추 재배 면적은 20년 사이 절반 수준으로 줄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농가 자체가 사라지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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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역시 같은 흐름을 보이고 있다. 수온 상승으로 해조류가 사라지는 '갯녹음' 현상이 확산되면서 해양 생태계의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 해조류를 먹고 사는 소라와 전복, 각종 어패류 생산량이 급감했고, 제주 연안에서는 해조류가 거의 사라지며 '바다 사막화'가 진행 중이다. 불과 10년 사이 수온이 1도 이상 상승하면서, 해녀들조차 생계를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이제 문제는 단순한 가격 상승이나 일시적인 수급 불안이 아니다. 먹거리를 '어디선가 조달하면 된다'는 방식 자체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 이는 곧 '생산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구조적 위기'를 의미한다. 더 이상 남쪽에서는 안정적으로 먹거리를 생산할 수 없는 상황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결국 생산이 가능한 지역으로 시야를 확장하는 문제로 이어진다.
좁은 한국 땅에서 스마트 농업과 같은 혁신적인 방법을 모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더 넓은 시각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특히, 지속 가능한 농업과 수산업의 발전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러시아의 동방 지역은 인구가 600만명에 불과하지만, 그 면적은 시베리아를 포함하여 러시아 영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 지역의 개발은 한국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러시아 정부는 동방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에게 1헥타르(약 3000평)의 땅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이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제안은 안정적인 식량 생산기지를 확보했을 때, 한국의 경제 성장과 지역 내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할 수 있다.
'북극항로 활성화 민관협의회' 출범식이 열린 1월29일 부산 동구 부산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뉴시스)
더욱이 한국과 러시아 간의 협력은 동북아시아의 안정과 번영을 위한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 일본과의 역사적 갈등, 중국의 산업적 침투 등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한국은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서 러시아와의 협력을 통해 상호 이익을 도모할 수 있다. 비행기로는 2시간, 배로는 하룻밤이면 충분한 거리에 있는 두 나라는 경제적 협력의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 이러한 지리적 인근성은 한국과 러시아 간 경제 협력을 가속화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다.
특히,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주도했던 북방경제협력위원회의 '9-Bridge(9개의 다리)' 정책은 이러한 협력의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북극항로·조선·항만·가스·철도·전력·일자리·농업·수산 등 9개 분야 및 정보통신기술(ICT)·보건·의료·환경 등을 포괄하는 업무협약(MOU)까지 맺는 성과를 도출했었다.
한발 더 나아가, 한반도에서 시작하여 캄차카 반도와 야말 반도까지 이어지는 북극항로의 거점들은 한국인 식량안보의 배후 기지로서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을 제공할 것이다. 캄차카에는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명태가 산더미같이 쌓여 있고, 그들은 먹지 않는 돌미역이 방파제에 붙어 어마어마하게 서식하고 있으며, 블라디보스토크 인근 우수리스크에는 여름 배추가 한국 농민의 손으로 재배되고 있다.
또한 북극항로는 기후변화로 인해 점점 더 개방되고 있으며, 이 길을 통해 한국은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중요한 물류 허브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기후위기라는 도전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기회를 찾아야 하며, 북방 경제협력은 그 해답이 될 수 있다.
더구나 우리 민족에게는 낯선 땅이 아니다. 고구려·발해의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항일무장투쟁의 배후 기지로서 고려인의 고향으로 불리는 땅이다.
러-우 전쟁과 미국의 '쌩션(sanction)' 이슈는 존재하지만 미국의 새로운 국가안보전략(NSS) 선언은 대한민국의 국익과 일맥상통하고 있으므로 적극 집중 외교를 하면 '더없이 좋은 대전환(大轉換)'을 맞이할 것이다.
결론을 내리자면, 기후변화는 단순한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한국은 러시아와의 협력을 통해 기후위기를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이러한 협력의 추진은 미래 세대에게 보다 나은 환경과 기회를 제공하는 데 필수적이다. 우리는 이러한 협력이 단순한 경제적 이익을 넘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구축하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정재호 뉴스토마토 K-정책금융연구소장. (사진=뉴스토마토)
정재호 뉴스토마토 고문·K-정책금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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