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규하 기자] 중동발 위기가 한국 경제 전반을 압박하는 가운데 고용시장의 연쇄적 타격을 막을 선제적 방어막에도 '전쟁 대응형 재정'을 투입하기로 했습니다. 노동 공급 감소라는 구조적 결함에 중동발 공급망 쇼크가 더해지면서 경제의 '기초 체력' 자체가 급격히 약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자리가 흔들리면 민생의 모든 기반이 무너지는 만큼, 4월 내 신속한 추가경정예산(추경) 처리와 현장 집행 속도가 최대 관건이 될 전망입니다.
지난 2월23일 서울 중구 서울역에서 직장인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잠재성장률 1.8%↓…고용 악재 '긴급 처방'
31일 정부가 국무회의를 통해 의결한 추경안 26조2000억원 중 고용노동부 소관은 5386억원 규모입니다. 이는 지난 2월 발발한 중동 전쟁의 여파가 에너지·물가를 넘어 우리 경제의 근간인 '일자리'까지 위협하자, 정부가 마련한 긴급 처방전인 셈입니다.
중동 전쟁 발발 전인 2월 산업활동지표를 보면, 전산업 생산이 전월 대비 2.5% 증가하는 등 5년8개월 만에 최대 상승률을 기록한 바 있습니다. 전산업 생산 중 '반도체 업종'의 생산만 전년 동월보다 157.9% 급증하는 등 '불황형 호황'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산업체계의 전반적인 구조 개혁이 요구되고 있는 시점이나 원재료의 중동 의존도가 높은 제조업과 건설업 등은 고유가·고환율 쇼크로 이미 한계 상황에 직면한 상황입니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잠재성장률 하락입니다. 국회예산정책처(NABO)의 분석을 보면, 올해 잠재성장률은 기존 1.9%에서 1.8%로 하향 조정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노동 공급 감소라는 구조적 결함 등 경제 기초체력 약화에 대한 경고등이 커지고 있는 겁니다.
문제는 중동 전쟁·호르무즈 해협 봉쇄 장기화 위기가 가중되면서 고유가·고환율 등 대외 불확실성이 더 끌어내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실업률은 2024년 11월 2.2%에서 지난해 12월 4.1%까지 가파르게 상승한 바 있습니다.
올해 2월 기준으로 실업자는 전년 동월 대비 5.7% 증가한 99만3000명입니다. 실업자 규모가 2021년 2월(135만3000명) 이후 가장 많은 데다, 실업률이 2022년 2월(3.4%) 이후 4년 만에 최고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15~29세 실업률은 7.7%로 2021년 2월(10.1%) 이후 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취업 문턱이 전년보다 0.3%포인트 상승에 그친 데다, 실업률까지 높은 추세입니다.
노동시장 위축 등 고용 체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중동발 충격까지 K-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이 고갈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정부의 이번 추경은 정밀 타격을 통한 선제 방어격으로 읽힙니다. 이번 고용부 추경 중 72%에 달하는 3866억원이 청년 취업 지원에 집중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지난 18일 서울 중구 을지로입구역 인근 횡단보도에서 직장인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청년 인적자본 훼손' 막는 게 핵심
최근 청년 고용률은 22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으며 구직활동조차 하지 않는 '쉬었음' 청년이 44만명에 육박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에 따라 쉬었음 청년을 노동시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K-뉴딜 아카데미(1000억원)' 등 맞춤형 훈련이 강화됩니다. 비수도권 중견기업까지 채용 장려금 대상도 확대키로 했습니다.
'청년일자리도약장려금' 사업에는 258억원 추가 편성했습니다. 이는 비수도권 소재 기업이 청년을 정규직으로 채용 후 6개월 이상 고용을 유지하면 기업과 청년에 각각 720만원을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청년들에게 직무 경험을 제공하는 '청년일경험 지원사업'에도 265억원을 추가 편성했습니다. 청년이 선호하는 문화·환경·디지털·돌봄 등 사회적기업 일 경험 신설과 청년들의 산업·기술 전환 준비를 위한 'K-디지털 트레이닝' 훈련 확대, 정책을 운영·홍보하는 '청년지원센터 또래지원단' 운영에도 편성했습니다.
일자리 지키기에도 집중합니다. 고유가로 경영난을 겪는 기업이 감원을 선택하지 않도록 고용유지지원금 예산을 기존 702억원에서 888억원으로 186억원 증액했습니다.
이번 조치로 노동자 1만명이 추가로 혜택을 받게 됩니다. 지역 경제 붕괴를 막기 위한 '지역산업 맞춤형 일자리 지원(버팀이음 프로젝트)' 예산도 120억원 확대했습니다. 고용 위기 우려 지역은 4개소 추가 지정합니다.
생활안정지원에는 1215억원을 추가 투입합니다. 체불 근로자의 신속한 권리 구제를 위해 체불 청산 의지가 있는 사업주에게 융자를 제공하는 '체불청산지원융자'에는 899억원을 편성했습니다. 지원 규모는 2만3000명으로 늘어납니다.
저소득 노동자나 특수고용직(특고)·1인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 생활안정지원에는 90억원을 확대했습니다. 대출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취약 노동자에 대해서는 신용보증 등 대위변제 지원에 226억원을 추가 편성했습니다.
31일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열린 2026년 중견기업 일자리 박람회에서 한 구직자가 취업 상담을 받으며 메모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내달 10일 예고…'집행 속도'에 달려
전문가들은 지표상의 수치보다 현장의 체감온도가 훨씬 낮은 관계로 '집행 속도'에 달렸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습니다. 추경안이 국회 문턱에 있는 사이 기업 감원을 결정하거나 소상공인이 폐업한다면 재정 투입의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앞서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대외 변수로 인한 고용 악화 가능성을 지적하며 고용 위기 선제 대응, 지역 및 특별 고용 지원 업종 지정 등 적극적인 대응의 필요성이 지적된 바 있습니다.
특히 청년 신규 일자리 감소 우려를 지목하는 등 중단된 청년고용촉진특별위원회의 재가동·정비 촉구와 비수도권 중견기업에 대한 청년 일자리 지원 확대, 세액공제 제도 개선의 필요성도 주문했습니다.
김영훈 고용부 장관은 청년 지원을 위한 기업 지원 확대와 향후 도입 예정인 청년 미래적금 등 관계부처와 협의해 검토하겠다는 방침입니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은 "자영업과 노동시장에 미칠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소상공인 정책자금 약 3000억원을 추가로 공급하고 고용유지지원금과 체불임금 청산 대출 지원도 각각 약 1만명 이상 확대한다"며 "어려운 때일수록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청년들의 취업과 창업을 뒷받침하기 위한 노력도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강조했습니다.
한편, 여야는 내달 10일 이른바 '전쟁 추경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한 상태입니다.
지난 26일 부산 부산진구 부산상공회의소에서 구직자들이 이력서, 구직 신청서 등을 작성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세종=이규하 기자 judi@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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