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가계부채 관리 정책의 오락가락 행보가 이어지면서 금융정책을 총괄하는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 신뢰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국정 공백 상황에서 정치권 요구에 밀려 대출 규제에 예외를 허용해 금융정책의 불투명성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장담했던 시장 금리 인하도 기대만큼 내려가지 않아 차주들의 애간장만 태우고 있습니다.
지방 DSR 완화에 일관성 훼손
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의 지방 DSR 완화 방침에 대해 정치 논리가 작용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앞서 김 위원장은 지난 7일 3단계 스트레스 DSR과 관련해 "지방과 수도권은 조금 차이를 두고 진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스트레스 DSR은 차주의 DSR을 산정할 때 금융사 대출 금리에 금융위가 미래 금리 변동 위험을 반영하기 위해 정한 일정 수준의 스트레스 금리(가산금리)를 가산하는 제도입니다. 현재 은행권에서는 차주의 DSR이 40%를, 저축은행에서는 50%를 넘지 않는 한도 안에서만 대출을 받을 수 있는데, 스트레스 금리 탓에 실제 한도는 더욱 줄어듭니다.
지난해 2월 1단계로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에 0.38%p의 스트레스 금리가 가산됐고, 지난해 9월에는 2단계로 은행권 주담대·신용대출과 2금융권 주담대에 수도권 1.2%p, 비수도권 0.75%p의 스트레스 금리가 가산됐습니다. 오는 7월부터 시행 예정인 3단계는 은행권·2금융권의 주담대와 신용대출, 기타대출 금리에 스트레스금리 100%(하한)인 1.5%p를 적용하는 것이 계획이었습니다.
금융위는 이 계획을 수정해 수도권에는 당초 계획대로 1.5%p를 적용하고 비수도권에는 보다 완화된 금리를 적용할 전망입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에 차등 적용으로 비수도권에 대해서는 원래 계획보다 대출 문턱을 낮추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초 금융위는 비수도권 지역에 대한 DSR 규제 완화에 부정적이었습니다. 국민의힘이 지난 2월 초 당정협의에서 비수도권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에 대한 해결책으로 DSR 한시 완화를 당국에 요구한 바 있는데요. 김 위원장은 당시 "실효성 측면에서 과연 지방 미분양 아파트를 DSR 규제 때문에 못 사고 있느냐"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김 위원장은 DSR 규제의 예외를 둘 경우 정책 신뢰성 문제가 생긴다고 우려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석달여 만에 기존 입장을 뒤집은 것입니다. 김 위원장은 DSR 차등 적용에 대해 "수도권과 지방에 차등을 두겠다는 취지는 (규제) 강화 속도에 차이를 두겠다는 것"이라며 "기존에 가져온 (정책) 일관성을 훼손하는 정도까지는 아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예고돼 온 대출 규제 강화 기조 속에서 정치권과 건설업계 요구에 따라 또 다시 예외를 두겠다는 것"이라며 "정책 예측성이 떨어지는 데다 규제의 차이가 어떤 쏠림 현상을 불러올지 모른다"고 우려했습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오는 7월 도입되는 3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에 대해 "수도권과 지방에 차이를 두고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김 위원장이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대출 쏠림' 부작용 우려
지난해에도 금융위의 스트레스 DSR 2단계 규제 시점을 7월에서 9월로 돌연 연기하면서 대출 수요가 폭증한 바 있습니다. 한도가 줄어들기 전 막차 수요가 일시에 몰리면서 월간 증가폭이 6월 5조3415억원, 7월 7조1660억원에 이어 8월 역대 최고 수준인 9조6259억원까지 치솟았습니다. 이 기간 주담대는 6월 5조8467억원, 7월 7조5975억원에 이어 8월 사상 최대치인 8조9115억원 급증했습니다.
금융위의 오락가락 정책에 대출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옵니다. 금리 인하기 대출 증가세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은행에 대한 당국의 대출 관리 압박이 거세집니다. 예대마진 확대의 명분이 생긴 은행들은 대출금리를 올리거나 심사를 까다롭게 하는 방식으로 관리에 나섭니다.
금융당국은 올 들어 시중은행들의 금리 인하를 독려하고 있지만 대출금리는요지부동입니다. 기준금리와 시장금리가 모두 낮아지고 있지만, 은행 대출금리는 여전히 4%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KB·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지난 3월(신규 취급) 주담대 평균금리는 연 4.304%로 집계됐습니다. 기준금리가 떨어지기 시작한 지난해 10월(4.346%)에서 0.042%p 하락하는 데 그쳤습니다.
기준금리 인하 이후 시장금리는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3월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는 전달 보다 0.13%p 낮은 2.84%로 집계됐습니다. 지난해 12월(3.22%)와 비교하면 석 달여 만에 0.38%p나 빠졌습니다. 주담대 고정금리 수준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는 5년물 은행채(AAA) 금리 역시 지난달 30일 기준 2.685%로 나타났습니다. 5년물 은행채가 2% 중반대를 보이는 것은 2022년 3월 이후 3년 2개월 만에 처음입니다.
기준금리와 시장금리 하락에도 불구하고 은행 대출금리는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시내 시중은행에 대출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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