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인 한국이 무역 협정조차 없는 일본·유럽연합(EU)보다 더 높은 관세를 적용받을 수 있는 국면에 놓였습니다. '무관세'였던 한국산 자동차는 이미 고율관세(25%)를 맞은 상태고, 일본처럼 관세가 낮아지는 혜택을 받지 못할 가능성마저 제기됩니다. 미국이 최대 20%의 상호관세를 예고한 가운데, 협상 시한은 이제 하루(30일 기준) 남았습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영국 스코틀랜드 턴베리에 있는 자신의 골프 리조트에서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취재진과 질의응답하고 있다. (사진=EPA연합뉴스)
협상 테이블 끝자리 '한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8일(이하 현지시간) 아직 미국과 무역합의에 이르지 못한 국가들에 대해 15~20%의 상호관세 부과를 예고했습니다.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 발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지만, 그가 예고했던 관세 발효일을 사흘 남겨둔 시점이란 점에서 실제 부과 선언으로 풀이됩니다.
'경고'에서 '최종 통보' 국면으로 진입했다는 평가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에도 '일본의 미국산 쌀 수입 확대'을 두고 "일본은 여태껏 다른 어떤 나라에도 쌀 시장을 열어준 적이 없었다"며 성과를 과시했습니다. 한국에 대입하면, 쇠고기 시장 개방 압력으로 곧장 이어지는 대목입니다.
미국 측은 한국과의 협상에서 완전한 우위를 점한 모습입니다. 합의 순서에서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인데요. 영국→베트남→인도네시아→필리핀→일본→EU 순으로, 한국은 '마지막 중의 마지막'입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한국인들이 나와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만나기 위해, 스코틀랜드까지 비행기를 타고 왔다"며 "그들이 얼마나 진정으로 협상 타결을 원하는지를 보라"라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현대자동차, 토요타 로고. (사진=각 사)
관세 문턱 선 '자동차·반도체'
정부는 협상 테이블에 상호관세와 자동차·반도체 등 품목관세를 동시에 올려놓는다는 방침입니다. 앞서 일본과 EU도 미국과의 합의에서 상호관세율·자동차 관세율을 15%로 하향 조정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힌국의 주력 수출 품목인 자동차가 이보다 높은 관세율을 부과받게 되면, 자동차 산업을 넘어 한국 수출 전반이 휘청일 수 있습니다. 과거엔 가격 대비 성능으로 경쟁력을 확보했지만, 현재는 일본 차와의 가격 격차가 사실상 사라진 상태입니다.
일부 모델은 도요타 가격을 웃도는데, 일본보다 높은 관세가 적용되면 판매량 급감 가능성이 큽니다. 도요타에 이어 글로벌 2위인 폭스바겐그룹도 EU의 자동차 관세율이 인하로 혜택을 보게 됐습니다.
미국에 진출한 글로벌 완성차 업체 가운데, 지난해 기준으로 '미국 판매량 대비 수입차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폭스바겐(80%)이었습니다. 이어 현대차·기아(65%), 벤츠(63%) 순이었습니다. 반면 도요타는 24% 수준에 그쳤습니다.
미국이 2주 이내 반도체 관세를 발표하겠다고 밝히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포함한 국내 반도체 업계의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미국 완제품 생산업체 입장에서 한국산 반도체에 뚜렷한 대안이 없는 게 사실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반도체 관세 회피를 위해 자국 내 생산시설을 갖춘 업체로 공급망을 전환할 유인이 커지게 됩니다.
앞서 러트닉 장관은 "반도체 생산을 미국으로 다시 가져오겠다"고 했습니다. 이번 반도체 품목관세의 목적이 '외국 반도체 기업의 자국 투자'와 '반도체 공급망 구축'에 있음을 분명히 한 겁니다.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과 면담하기 위해 워싱턴 D.C.로 향하는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9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 도착해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미 투자액 '두 배' 검토…'대륙 이동 교섭'까지
정부는 대미 투자액을 기존 1000억달러의 2배 규모인 2000억달러(약 276조원) 이상을 제시하는 방안도 검토 중입니다. 일본이 미국에 약속한 대미 투자액 5500억달러(751조원)가 미국 측 기준이 된 탓입니다.
우리 정부는 일본과 비교해 한국의 경제 규모가 훨씬 작다는 점을 강조하며 미국 측 이해를 구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대미 무역흑자' 규모를 기준으로 내세우고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지난해 한국과 일본의 대미 무역흑자는 각각 660억달러(약 91조800억원), 685억달러(94조5300억원)로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무역 협상을 타결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러트닉 장관과 지난 24일 워싱턴 D.C.에서 만났고, 다음 날 그의 뉴욕 자택까지 찾아갔습니다.
이후 러트닉 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을 수행하기 위해 스코틀랜드로 떠난다는 것을 파악한 뒤 급박하게 스코틀랜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그를 따라 다시 워싱턴 D.C.로 이동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오는 31일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과의 회담을 위해 방미길에 올랐습니다. 오는 8월1일로 예정된 '25% 상호관세' 부과를 하루 앞두고 열리는 마지막 조율 성격의 담판입니다. 조현 외교부 장관도 같은 날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을 만납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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