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상대로 한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주의적 ‘관세 폭력’이 점입가경이다. 지난 12일(현지시간) 그는 ‘트루스 소셜’에 유럽연합(EU)과 멕시코에 다음 달 1일부터 30% 상호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EU는 10% 인상된 30%의 관세 부과를 통보받고서도 예정된 대미 보복 관세를 8월 초로 연기하겠다고 꼬리를 내렸다. 멕시코는 국경에 1만여명의 병력을 배치하고 마약 카르텔에 대한 대대적 단속에 나서는 등 미국의 요구를 충실히 따랐지만, 결국 5% 오른 30%의 관세 부과를 통보받았다. 지난 4월 상호관세 부과 대상에서 빠졌으나 하루아침에 ‘원상복구’된 것이다.

앞서 트럼프는 이재명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기도 전에 외교적 무례에도 “한국산 모든 품목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을 SNS에 미리 공개한 바 있다. 한미FTA에 따라 미국산 물품에 대해 무관세를 적용하고 있는 동맹국 한국을 얕본 처사다. 만약 한국 대통령이 이렇게 했다면 미국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중국과 대립하면서도 뒤로는 ‘빅딜’을 노리는 그는, 협상에 성실히 응했던 나라와 우방에게 되레 더 가혹한 관세 부과를 천명하는 등 만만한 나라들의 뒤통수를 치고 있다. 중국처럼 희토류 같은 전략 광물을 보유하고 있지 못한 나라들은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다. 사실 미국이 지금보다 더 강력한 ‘세계의 경찰’일 때도, 그 어떤 대통령도 트럼프처럼 막무가내식으로 행동하지 않았다. 호혜·평등이라는 국제 정치의 원리를 내세우며 힘을 감출 때 그것이 더 위협적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를 비판하는 국내 언론의 목소리가 좀처럼 들리지 않는 건 어리둥절한 일이다. 물론 초강대국 미국이 한국 보수에게 구세주인 데다 세계 최대 시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점 등을 헤아리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하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순응하는 태도가 협상에서 유리한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건 이미 트럼프가 자신의 행태로 증명했다. 트럼프는 상대의 ‘순응’을 성공으로 간주, 더 큰 압박을 가하는 스타일이다.
무엇보다 관세 폭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한국 언론의 모습은 트럼프 반대가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 된 현실과도 맞지 않는다. 무역전쟁으로 물가 상승과 제조업 혼란, 농업 피해 등이 불거지면서 미국 내 산업계와 소비자들은 ‘자해적 관세정책’이라는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미국 언론과 정책 전문가들도 ‘동맹국과의 신뢰를 해친다’고 연이어 비판하고 나섰다. 아울러 미국에 늘 굴욕적 태도를 보였던 일본마저도 격한 어조로 트럼프를 비난한 바 있고, 프랑스 등 유럽에선 대미 강경 노선으로 돌아가자는 요구가 나올 태세다. 실제 지난 11일 아세안 외교장관들은 말레이시아에서 모여 미국의 일방적인 관세 정책을 비판하는 공동성명을 채택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텍사스주 커빌의 비상운영센터에서 홍수 관련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트럼프의 일방주의가 부당하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하고, 국내 여론을 통해 ‘명분 없는 관세 폭력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목소리를 전략적으로 내야 한다. 협상 테이블에서 최소한의 주도권을 쥐려면, 트럼프의 논리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을 외교적으로도 여론으로도 분명히 해야 한다. 미국이 중요하다면, 더더욱 불공정한 관세정책에 침묵해선 안 된다. 협상을 위해서라도, 먼저 관세 폭력에 저항해야 할 때다.
오승훈 산업1부장 grantorino@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