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정훈 기자] 인공지능(AI)과 핵심 부품인 반도체를 두고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정부가 업계에 직접 개입하는 현상도 늘기 시작했습니다. 기업 육성을 위해 천문학적 보조금을 투하하던 중국부터 자유시장 체제의 산실이던 미국까지 강대국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과연 시장의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지가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국가의 개입으로 기업의 성공 발판이 열릴 수 있지만, 오히려 족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정부가 지원하되 개입은 제한적이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오고 있습니다.
인텔. (사진=뉴시스)
최근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약 10% 상당의 인텔 지분을 취득하면서 정부의 개입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28일(현지시간) 데이비드 진스너 인텔 최고재무책임자(CFO)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인텔이 파운드리 지분을 최소 51% 이상 보유하지 않을 경우, 5%에 해당하는 주식을 20달러에 사들일 수 있는 5년 만기 신주인수권을 가져갔습니다. 최근까지 인텔은 실적 부진으로 파운드리 사업 철수를 검토한 바 있는데, 인텔의 실적을 지켜주는 대신 파운드리 사업을 매각하지 못하도록 제동장치를 건 셈입니다.
정부의 지분 매입 비용으로 재정 문제를 해소하게 됐지만, 인텔은 정부가 최대주주로 등극하면서 생길 리스크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외교 관계에 따라 해외로부터 규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인텔 매출의 29%는 중국에서 발생했는데, 미중 무역 관계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유사한 사례로 엔비디아가 있습니다. 최근 엔비디아는 미국의 수출 규제와 중국의 반도체 자립 시도가 겹치면서 매출에 타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처럼 ‘정부의 개입’은 단기적으로 재정 문제를 해소에 기여하지만, 꼭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일본의 경우 지난 2022년 정부가 도요타·키옥시아·소니 등 자국 주요 대기업 8곳과 함께 ‘라피더스’를 출범해 반도체 부활을 천명했지만, 현재까지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도 지난 4월까지 1조8000억엔(약 17조원)을 투자했지만, 2027년까지 2나노 양산에 돌입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5조엔(약 47조원)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회의론이 일고 있습니다.
중국의 경우 정부가 자국 반도체 기업을 직접 육성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만큼 개입도 과도합니다. 최근에는 중국이 미국의 제재에 맞서 반도체 자립을 시도한 결과, 중국 AI 반도체 설계 회사 캠브리콘이 전년 동기 대비 4000% 급증한 성장세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국 회사들은 정부를 위한 ‘백도어’(Backdoor·정보 유출 통로)‘로 사용된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습니다. 화웨이가 미국과 유럽 몇 국가에서 퇴출당한 것이 그 일례입니다.
캠브리콘의 AI 칩. (사진=연합뉴스)
일각에서는 정부가 지원은 하되, 적극적으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합니다. 기술적 변화 속도가 하루가 다르게 빨라지는 업계인 만큼, 의사결정도 신속해야 하는데 정부가 개입할 경우 신속한 의사결정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최근 우리나라가 추진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역시 지난 2019년부터 추진됐지만, 각종 규제와 정치권의 이견이 맞물려 2025년에야 첫 삽을 떴습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지금까지 전례를 보면, 반도체 분야에서 정부가 손을 대서 성공한 역사는 손에 꼽는다”며 “반도체 분야는 과감하게 진행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정부 개입이 들어가면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정부 개입이 좋지 않은 이유”라고 지적했습니다.
다만 이러한 정부의 직접 지원이 새로운 트렌드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정부가 지원하는 것도 WTO의 눈치를 보고, 신자유주의적 관점에서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게 룰이었다”면서도 “구소련과 미국이 우주산업 개발로 경쟁했듯, 정부가 산업을 주도하는 게 뉴노멀”이라고 했습니다.
안정훈 기자 ajh76063111@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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