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석유화학 리밸런싱)③'한국형 해법' 시급…정부 지원 구체화 필요
자사주 소각 의무화·상법 개정안…석유화학 구조조정 '발목'
세제·금융 인센티브 없는 구조조정 '임시방편' 전락 우려
CAPA 감축 넘어 R&D·특별법 지원까지 종합 패키지 필요
2025-09-23 06:00:00 2025-09-23 06:00:00
이 기사는 2025년 09월 18일 16:18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국내 석유화학 산업이 글로벌 공급 과잉, 중국발 저가 공세, 고유가와 환율 불안 등 복합적인 위기에 직면했다. 이 가운데 롯데케미칼과 현대케미칼의 나프타분해설비(NCC) 통합 시도가 업계 구조조정의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일본은 지난 40년간 세 차례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거치며 고부가가치와 글로벌 확장을 중심으로 산업 경쟁력을 재편해왔다. 한국 역시 이를 벤치마킹하되 우리 산업 환경에 맞는 한국형 구조조정 모델을 설계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IB토마토>는 이번 기획을 통해 국내 석유화학 구조조정의 현주소와 과제, 해외 사례 비교, 제도적 개선책을 심층적으로 짚어보고자 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권영지 기자] 국내 석유화학 산업이 구조적 공급 과잉과 글로벌 경쟁 심화로 벼랑 끝에 몰리면서, 정부와 업계가 ‘한국형 구조조정 패키지’ 마련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강조하는 ‘선 노력, 후 지원’ 기조와 국회에서 논의 중인 상법 개정안 등 제도적 제약이 구조조정 실행을 더디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업계 전문가들은 세제 감면, 규제 완화, 금융·보증 지원 등 실질적인 인센티브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연말까지 기업들이 내놓을 구조조정안은 임시방편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LG화학 여수 공장 전경. (사진=LG화학)
 
자사주 소각 의무화 논란, 사업 재편 발목 잡나
 
18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정기국회에서 처리 가능성이 높은 ‘더더 센’ 상법 개정안은 기업의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새 법안은 신규 취득 자사주는 1년 내, 기존 보유 자사주는 5년 내 소각을 의무화하는 방안이 핵심이다. 하지만 업계 안팎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포함한 상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주가 부양 효과를 오히려 약화시키고,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심각한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하고 있다.
 
석유화학 업계는 인수합병(M&A)이나 합병 과정에서 전략적 자사주 활용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의무적 소각 규제가 적용되면 자본금이 축소돼 자기자본비율과 신용등급이 동시에 악화할 수 있다. 이는 대규모 자금 조달이 필요한 구조조정 환경에서 기업의 발목을 잡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해외 주요국에서도 자사주 소각을 강제하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개정안은 기업 경쟁력 강화보다 정치적 입법 성과에 초점을 맞춘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한국 석유화학 산업의 위기는 공급 과잉이 근본 원인이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중국의 에틸렌 생산능력은 2500만톤 이상 늘었고, 앞으로도 대규모 증설이 예정돼 있다. 이로 인해 한국 석유화학 기업의 가동률은 80%대 초반으로 떨어졌고, 지난해 주요 4개사의 합산 영업이익률은 -0.3%를 기록하며 적자로 돌아섰다.
 
반면 일본은 2000년대부터 범용 제품에서 손을 떼고 정밀화학·스페셜티 제품 중심으로 전환하면서 영업이익률이 3.7%까지 상승했다. 한국은 범용 중심 포트폴리오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중국의 저가 공세와 일본의 고부가 전략 사이에 끼여 수익성 저하와 차입 부담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신용평가사들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실적 저하가 장기화되고 채무상환 능력이 떨어지면 하반기 신용등급 하향 조정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연말까지 ‘370만톤 감축’ 목표, 현실성 논란
 
정부와 업계는 지난달 석유화학산업 자율협약을 맺고 에틸렌 기준 270만~370만톤 설비 감축에 합의했다. 이는 국내 생산능력(CAPA)의 최대 25%에 해당한다. 하지만 한국신용평가 분석에 따르면 호황기 수준의 가동률 회복을 위해 필요한 감축 물량은 약 1700만톤, 즉 전체의 18% 수준이다. 이를 정유사를 제외한 순수 석화 업체 기준으로 따지면 설비 감축 필요량은 24~33%로 더 높아진다.
 
업계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정유업체들은 최신 설비를 보유해 감축 필요성이 낮은 반면, 석유화학 단일 사업자는 설비 축소 부담이 훨씬 크다”며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특히 석유화학 산업은 장기간 업황 부진으로 나프타분해설비(NCC) 자산 가치가 하락해 단순 매각도 쉽지 않고, 잠재 매수자를 찾기도 어려운 상태다. 결국 여수·울산·대산 등 산업단지 내에서 설비 통합이 불가피하지만, 기업 간 이해관계가 복잡해 합의까지 최소 1년 이상 소요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정부는 “업계 자구노력이 먼저”라는 방침을 강조하며 세제·금융 지원은 구조조정안 제출 이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업계는 이를 비현실적이라고 보고 있다. 기업 결합 시 발생하는 막대한 세금 부담, 공정거래법상 기업결합 심사, 주식매수청구권 등 제도적 장벽이 그대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노조법 개정안(노란봉투법) 시행을 앞두고 인력 조정이 어려워지면서 자율 구조조정 속도는 더욱 느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들끼리도 합작사 지분이나 시장 점유율 문제로 이해관계가 복잡한데, 여기에 상법 개정안이나 노란봉투법까지 맞물리면 선택지는 더 좁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정부와 정치권이 기업들이 구조조정에 나선 이 시점에 지원보다는 압박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여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한국형 구조조정 패키지의 핵심을 인센티브 기반 구조조정으로 꼽는다. 세제 감면, 금융·보증 패키지, 규제 한시적 완화, 현금성 인센티브 등이 뒷받침돼야 기업들이 보다 속도감 있게 설비 감축과 통폐합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범용 중심 포트폴리오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스페셜티 제품으로 전환하려면 단순한 생산능력(CAPA) 축소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제언한다. 설비 통합과 함께 연구개발, 인력 재배치, 글로벌 시장 개척까지 아우르는 종합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특별법 제정이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지금처럼 기업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상황에서는 개별 기업의 협상력이나 시장 논리만으로는 속도를 내기가 힘들다. 특별법을 통해 세제, 규제, 금융지원까지 종합적으로 패키지화해준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반가운 소식"이라면서 "석유화학은 국가 기간산업인 만큼, 단순히 기업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산업 전반의 경쟁력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권영지 기자 0zz@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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