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 본격 투자 앞두고 ‘비자’ 리스크 현실화
비자 수수료 100배 인상…트럼프의 압박
마스가 ‘원팀’된 조선…숙련공 투입 ‘발목’
“100명 투입 시 140억…투자 위축 우려”
‘노골적 자국민 고용’…비자 협상도 난항
2025-09-22 14:29:12 2025-09-22 15:35:39
[뉴스토마토 박창욱·배덕훈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HL-GA)의 대규모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에 이어 전문직 비자 수수료를 무려 100배나 인상하자 본격적 대미 투자를 앞두고 있던 한국 기업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급상승한 비자 수수료는 대미 투자 초기 전문 인력 파견에 큰 부담이 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번 조치로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 투자 이행을 위해 숙련공 등 전문 인력 파견이 불가피한 조선업계는 직격탄을 맞은 셈이 됐습니다. 또한 산업계 전반에서는 한국인 구금 사태 이후 비자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바라고 있었지만, 이번처럼 미국이 비자 문제에 대해 강경한 정책 노선을 이어갈 경우 제도 개선 논의가 난항을 겪을 것이란 우려도 나옵니다. 
 
전문직 비자 수수료 인상 포고문에 서명한 트럼프. (사진=연합뉴스)
 
22일 재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미 정부가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분야 전문 직종을 위한 H-1B 비자 수수료를 1인당 1000달러(약 140만원)에서 10만달러(약 1억4000만원)로 인상한 결정은 자국민 고용 확대를 압박하기 위한 조치로 분석됩니다. 앞서 대규모 한국인 구금 사태가 자국민 고용 확대를 요구하는 신호였다면, 이번 조치로 인해 그 압박이 본격화됐다는 지적입니다. 
 
H-1B 비자는 추첨을 통해 연간 발급 건수가 8만5000건으로 제한돼 있습니다. 미국의 전문직 외국인 인재 유입을 위한 대표적인 제도로, 심사 기준이 엄격하고 전 세계에서 매해 약 50만명이 신청하는 등 경쟁률 또한 높습니다. 싱가포르와 호주 등 일부 국가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를 통해 수천건에서 1만여건의 쿼터를 확보하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까지 이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이에 정부가 한국인 전문 인력 취업비자인 E-4 신설을 위해 미국 내 입법에 힘써왔지만 아직까지 의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조지아주 사태 이후 미국인들을 훈련할 해외 전문 인력을 불러들이겠다며 우대 제스처를 취한 바 있는데, 돌연 비자 수수료를 100배나 올리는 등 정책 혼선에 산업계 전반에 혼란만 가중되는 모습입니다. 이 같은 노골적인 미국인 고용 기조는 결국 숙련공 투입과 전문 기술 이전에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다만, 현재 한국 기업들은 미국 근무 인력 대부분에 대해 주재원 비자(L1)나 투자 비자(E2)를 발급받도록 하기 때문에 이번 조치로 인한 직접적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있습니다. 미국 국토안보부(DHS)와 미국 이민국(USCIS)이 미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4 회계연도(2023년 10월1일부터 2024년 9월30일까지)에 H-1B 비자 청원이 승인된 전문직 노동자(39만9395명) 중 한국 출신은 3983명으로 5위에 해당합니다.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주한미국대사관에서 미국 비자를 발급받으려는 시민들이 줄을 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기업들은 인력 파견 시 부분적으로 H-1B 비자를 사용하고 있고 관세 협상에 이은 대미 투자를 본격화 하는 상황에서 전문 인력의 추가 배치는 불가피한 상황으로 기업들의 금전적인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정책은 사실상 H-1B 비자를 발급하지 않겠다는 의미”라며 “미국 내 고용 창출을 겨냥한 미국 정부의 노골적인 조치”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비자 문제 해결을 위해 양국 정부가 긴밀히 협력하고 업계는 고숙련 노동자들이 미국에 체류할 수 있도록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마스가’ 앞둔 조선업계 ‘날벼락’
 
마스가 프로젝트 본격화를 위해 원팀 모드에 돌입한 조선업계는 직격탄을 맞은 셈이 됐습니다. 예년보다 빠르게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체결에 성공하면서 수주와 생산에 매진할 수 있게 됐지만, 돌연 떠오른 비자 리스크로 마스가 프로젝트에 차질을 빚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옵니다. 
 
올해 조선 3사는 노란봉투법 등 노동계 현안에도 불구하고 임단협을 예년보다 빠르게 마무리 지었습니다. 지난 21일 HD현대중공업을 마지막으로 조선 3사의 노사 교섭이 마무리 됐는데, 이는 지난해 삼성중공업(9월), 한화오션(10월), HD현대중공업(11월)에 비해 비교적 빠른 속도입니다. 추석 연휴 전 협상이 모두 마무리된 것을 두고 조선업 호황기에 더해 마스가 프로젝트라는 중대 사안을 앞두고 노사 간 원팀이 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작용한 결과라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이처럼 올해 조선 3사가 노사 간 협력으로 마스가 본격화를 위한 시동을 걸고 있지만 때 아닌 비자 리스크로 향후 계획 차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큽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숙련공 100명만 투입해도 비용이 140억에 달하고, 한국이 미국을 위해 기술이전까지 해주는데, 비자 비용까지 부담해야 한다면 협력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며 “조선업은 최소 수천명의 숙련공이 필요한 만큼 비자 발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프로젝트 지연과 투자 위축으로 마스가 추진 속도가 크게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조지아 사태 이후 착수한 한미 비자 제도 개선 논의도 난항을 겪을 것이란 우려도 나옵니다. 정부는 당초 H-1B 비자의 한국인 쿼터를 확보하는 동시에 해당 쿼터에 숙련공을 포함하는 방안을 고려했지만, 수수료 문제에 따른 전략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 됐습니다. 특히 비자 문제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민 고용 기조를 더욱 명확히 하면서 한국에 더욱 과도한 요구를 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옵니다.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화필리조선소. (사진=한화오션)
 
재계, ‘별도 비자’ 신설 요청
 
재계는 관세 협상 장기화에 따른 불확실성이 이어지고 비자 문제까지 수면 위로 떠오르자 정부에 비자 제도 개선을 요청해달라고 나섰습니다. 
 
22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초청해 진행한 ‘대한상의 국제통상위원회’에 참석한 대미 투자 기업 대표와 임원들은 여러 애로 사항을 전달했습니다. 특히 기업들은 미국 내 투자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인력·비자 문제가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한 기업 관계자는 “미국 시장에 진출 시 초기 운영 인력이 다수 필요하지만 신속 발급이 가능한 ESTA나 B1 비자는 현지 근무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H-1B는 쿼터 제한과 발급 절차로 제약이 크다”면서 “마스가 프로젝트 등 전문 인력에는 별도 비자를 신설하고 쿼터 확대와 발급 절차 단축과 같은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기업들은 전략 산업을 중심으로 관세 부담 완화 필요성과 함께 품목 관세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요청했습니다. 
 
이계인 통상위원회 위원장(포스코인터내셔널 대표이사)은 “최근 미국에서 발생한 한국 근로자 비자 관련 문제와 같이 예기치 못한 상황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것처럼 기업들은 긴장을 늦출 수 없다”며 “리스크를 기회로 바꾸는 힘은 기업들의 의지와 함께 정부의 든든한 지원에서 나오는 만큼 정부가 정책에 충실히 반영해주기를 당부드린다”고 강조했습니다. 
 
박창욱·배덕훈 기자 pbtkd@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0/300

뉴스리듬

    이 시간 주요 뉴스

      함께 볼만한 뉴스